두 축구 감독에게 11명의 똑같은 선수를 주더라도 감독마다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계획한다. 그런데 한 감독은 선수들을 나무막대에 묶어서 테이블 축구를 하고, 한 감독은 비디오 게임처럼 유기적으로 선수들을 움직인다. 문제는 전혀 다른 규칙과 방식의 두 게임을 하는 감독이 같은 경기장에서 승점 3점을 얻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24일(한국시각) 진행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9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경기가 4-0 이란 큰 점수 차를 기록한 이유다.

전반 30초 만에 맨체스터 시티의 페드로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페드로 주변에 있었던 맨유의 크리스 스몰링과 데일리 블린트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페드로는 우왕좌왕하는 두 수비수 사이에서 손쉽게 득점에 성공했다. 게리 케이힐이 넣은 추가 골은 두 번의 굴절이 만들어낸 우연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공에 집중한 스몰링이 자신이 막아야 할 게리 케이힐을 놓친 것이 컸다. 스몰링이 공을 걷어내기 위해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선수들이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성급한 판단이 낳은 참사였다.

축구는 분위기에 따른 상승세가 영향을 많이 미치는 스포츠다. 그렇다면 전반 1분도 되기 전에 터진 선제골과 불운하게 내준 추가 골이 맨유를 4-0 대패라는 참사로 밀어 넣은 것일까? 아니다. 분위기는 맨유를 수렁에 빠뜨린 요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첫 번째 문제는 맨유 선수들의 움직임에 있었다. 
 23일 첼시-맨유전 출전 선수들의 히트맵.

23일 첼시-맨유전 출전 선수들의 히트맵. ⓒ 후스코어드 닷컴


위 사진은 첼시와 맨유 선수들이 얼마나 움직였고 얼마나 머물렀는가를 보여주는 히트맵이다. 푸른색일수록 머무는 시간이 적고 붉은색일수록 머무는 시간이 길다.

먼저 첼시 히트맵에서 붉은색이 보이는 지역은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와 은골로 캉테가 머문 지역 정도다. 캉테는 중원에서 패스 연결고리와 수비 1차 저지선 역할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첼시는 수비상황에서 선수단 전원이 두터운 수비진을 구축하면서 맨유 선수들이 좋은 공격 기회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공 뺏기(공격), 가로채기(수비), 태클 부문에서 2선의 빅터 모제스(7/6/3)와 에당 아자르(7/2/2), 페드로(5/2/2)가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아스필리쿠에타(7/1/4)나 캉테(8/5/2)와 차이가 없는 기록을 보여준 것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활동량을 가져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수 기록 출처 - FFT Stat Zone)

반면 맨유는 뚜렷한 붉은 지역이 다섯 곳가량 존재한다. 모두 공격을 위한 중추가 될 2선 지역이었다. 맨유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포지션 변경이나 유기적인 움직임 없이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좋은 패스가 들어오거나 첼시 수비진에 공간이 생기길 기다리는 듯했다. 첼시가 수비 상황에서 거의 모든 선수들이 수비가담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좋은 공격 전개를 할 수 없는 지름길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차이에도 첼시와 맨유는 경기를 통틀어 공평하게 슈팅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맨유는 슈팅을 16회 시도해 유효슈팅을 5회 기록했고 득점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첼시는 슈팅을 14회 시도해 유효슈팅을 6회 기록했고 이 중 네 번이 득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은 것은 유효슈팅이 기록된 장소였다. 첼시는 유효 슈팅 6회 중 패널티 라인 안에서 발생한 것이 5회인데 반해서, 맨유는 유효 슈팅 5회 중 3회가 중거리 슛에 의해 이루어졌다. 페널티 라인에서 이루어진 유효슈팅 2회 가운데 하나는 골문과 무관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단순히 맨유 선수들의 활동량이 적었기 때문에 첼시에게 4-0 대패를 기록하게 된 것일까. 페드로와 케이힐의 득점이 수비 혼선과 불운이 크게 문제가 된 것이라면 아자르와 캉테의 추가 득점은 폴 포그바의 안일한 수비 가담이 문제가 되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포그바는 수비 부담이 덜했던 유벤투스의 3-5-2 체제에서 빛을 발했던 선수다. 공수가담과 활동량이 장점인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아르투로 비달의 존재가 포그바에게 날개를 달아준 전술이었다. 포그바는 이번 첼시전처럼 수비적 부담을 안고 플레이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점을 유벤투스 시절에도 보여준 바 있었다.

특히 지금 맨유가 선택한 4-2-3-1 전술은 유벤투스 시절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비가담에 대한 임무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그바는 여전히 수비에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당 아자르와 은골로 캉테의 추가 득점 과정 영상 -SPOTV

에당 아자르와 은골로 캉테의 추가 득점 과정 영상 -SPOTV ⓒ 그래픽 - 어마루


위 사진은 각각 에당 아자르와 은골로 캉테의 득점 장면에서 포그바의 수비 실수가 나온 부분이다.

세 번째 득점 장면은 아자르-캉테-마티치-아자르로 연결된 패스가 한순간에 맨유 수비진을 붕괴시키며 아자르의 침착한 마무리로 완성된 장면이었다. 도움을 기록한 네마냐 마티치는 위협적인 스루패스를 아무런 제지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맨유 선수 가운데 마티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선수는 포그바였다. 캉테에게 패스가 전개된 순간부터 마티치에게 접근해 좋은 패스를 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 자리에 있던 포그바의 응당한 임무였지만, 어정쩡한 공간에 서서 첼시의 패스 전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네 번째 득점 상황도 매한가지였다. 캉테-케이힐-페드로-캉테로 이어진 패스 전개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스몰링과 바일리가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코스타와 캉테를 견제하고 있었다. 캉테의 쇄도를 뒤늦게 알아차린 포그바는 수비 가담을 위해 뛰어가긴 했지만 그 모습은 전력질주보다는 조깅에 가까웠다. 마치 캉테가 드리블을 할 줄 모르는 선수라서 코스타에게 패스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캉테는 수비 압박이 없던 포그바 쪽 페널티 라인을 파고들었고 데 헤아가 손 쓸 수 없는 득점을 기록했다. 포그바가 캉테에게 가장 근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린 캉테가 페널티 라인 안으로 진입한 것이 적극적인 수비를 꺼리게 했을 수도 있지만, 페널티 라인 진입 이전부터 충분히 제지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그바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첼시는 맨유전 승리로 리그 4위로 올라섰고, 승점 획득에 실패한 맨유는 리그 7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맨유가 잃은 것은 비단 승점만이 아니었다. 경기 종료 후 조제 무리뉴 맨유 감독은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에게 쐐기골 이후 나온 세레머니와 관중유도에 대해 귓속말로 "그런 건(세리머니) 1-0 일 때 해야지, 4-0 일 때는 하지 말라. 그건 창피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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