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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입니다. 하지만 이 명절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분들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은 분들도 그렇고, 또 군대 보낸 아들을 창졸간에 잃은 유족에게도 명절은 '또 다른' 고통입니다.

늘 보고 싶고 그립지만, 명절이라서 더 아픈 기억. 오늘 저는 그런 분들의 사연 중에서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분들이 자신들의 단체 홈페이지 공간에 남긴 '하늘나라 편지' 몇 개를 공개하려 합니다. 이 글을 통해 더욱 많은 분들이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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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척도 이해하지 못하는 슬픔

자식과 형제를 잃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누나와 형들이 차마 가까운 친척에게도 전달하지 못하는 그 아픔을 통해 조금만 더 배려하고 함께하여 주시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이를 통해 그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 번째 사연은 군인이었던 동생을 잃은 어느 형님이 쓴 '하늘나라 편지'입니다.

"하늘에 있는 동생에게. 형이다. 너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편지는 써 봤지만, 여기에도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이 있어 다시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구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형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동생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였지만 형 눈에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는데...

형이 군대 전역하고 나서 너도 부럽다며 '전역 오버로크'치고 싶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덧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나가는 구나.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다. 동생아. 솔직히 네가 너무 괘씸하단 생각도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살아계시는데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하니? 물론 이 형이 우리 가족을 책임지겠지만 먼 훗날 부모님도 안 계시면 서로 의지해야 할 네가 먼저 세상을 떠나니 형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구나.

네가 가는 날, 형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전화했는데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일한다는 핑계로 네 전화를 오래 받아 주지도 못하고... 군대 가면 다들 겪는 일이라면서 내 동생 힘든 거 몰라 줬던, 그래서 널 보낸 것만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쓰리구나. 정말 다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당장 부대로 올라가 널 안아 줬을 텐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동생.

내 착한 동생 하늘에서는 분명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지? 내 동생 딱 한 번 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 형이 먼 훗날 네 곁에 가는 날엔 너 살아 있을 때 해주지 못한 '사랑한단 말' 해주고, 꼭 안아줄게. 형이 정말 미안하다. 내 동생. 사랑한다. 내 동생아."

군에서 아들을 잃은 어느 아버지는 친구들과 술 한잔을 마신 후 들린 노래방 이야기를 사연으로 남겼습니다. 그 아버지가 남긴 '하늘나라 편지'입니다.

"아들아. 어제는 하도 울적해서 퇴근길에 술 한 잔을 했구나.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며 데려간 노래방에서 가수 김수희의 '너무 합니다'를 부르다 그만 울어버렸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한없이 울어 버렸다. 친구는 울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친구에게 말했다. 날 위로하려거든 그날 울게 놔두라고. 그게 제일 위로가 된다고... 아들아. 너는 아빠를 보고 있겠지. 보고 싶다. 내 아들. 너에게 정말 갈 수 있을까?"

84년 좌우 가슴에 한 발씩, 그리고 다시 이마에 한 발을 쏴서 자살했다고 처리된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 님이 유가협에 게시된 아들의 영정을 보고 있다. 올해로 33년, 이 아버지의 한은 언제 풀릴까.
 84년 좌우 가슴에 한 발씩, 그리고 다시 이마에 한 발을 쏴서 자살했다고 처리된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 님이 유가협에 게시된 아들의 영정을 보고 있다. 올해로 33년, 이 아버지의 한은 언제 풀릴까.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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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또 자살한 사람 있어?' 비수가 된 그 말

가슴에 자식을 묻는 어느 어머니의 사연 역시 잊을 수 없는 아픔입니다. '아들을 보내고 수많은 날들을 지새우며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삭히지도 못한 채 화병난 것처럼 얼굴이 불덩이 같고 제정신이 아니어서 앞가림도 못하고 살았다'는 어머니는 '억울! 억울함만이 가득하다'며 토로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후 있었던 그 사건에 대해 썼습니다. 어느 날 다니던 종교에서 집으로 위로 기도를 왔다는 겁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맞이했을 때, 그중 제일 높은 직분을 가진 한 분이 하는 말이 "집안에 또 자살한 사람 있어?"라며 묻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 듣고도 제가 미치지 않고 지금껏 살아 있다는 게 신통하지요."라며 어머니는 썼습니다. 정말 남의 고통에 별생각 없이 던지는 한마디가 큰 상처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연 중에서 제 가슴에 가장 아프게 다가온 이야기는 어느 누나가 남긴 '하늘나라 편지'였습니다. 남동생을 잃고 이어 아버지까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인 그때, 가까운 일가친척 사이에서 있었던 사연을 군 의문사 피해 유족분들에게 토로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과연 내 모습은 어떠한가를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 누나의 사연입니다.

군피해 치유센터 함께
 군피해 치유센터 함께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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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답답해서 여기 부모님들께 여쭤 보고 싶습니다.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 맘 다칠까 봐 맘이 아픕니다. 군에서 동생을 잃고 몇 달 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아버지가 장남이라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입장이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남편조차 입원 중이니 저희 어머니가 무척 힘겨워하셨습니다.

보다 못한 저는 작은 엄마와 삼촌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작은 엄마는 엄마 맘을 이해하신다며 묘에나 한번 다녀오고 말자 하셨는데 삼촌은 이렇게 전화하는 저한테 "업으로 생각하라"네요. 업으로 생각하되 제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지내야 한다네요. 그러면서 시집도 안 간 계집애가 집안 대소사에 끼어든다며 언성만 높이고서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 필요 없더군요. 삼촌이고 뭐고 지 자식 아니니 업으로만 생각하라 하니, 형과 형수는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조상은 다 같은 조상인데 꼭 맏형이 제사를 지내야 복을 받을까요? 자식 보내고 병원 신세 지는 형한테 전화해서는 한다는 말이 "그래 가지고 복 받을 수 있겠냐"고 그러더랍니다.

그러고도 삼촌이고 그러고도 동생인가요? 옛말에 제사 안 지내면 집안 망한다고 한다지만, 멀쩡한 내 동생 하루아침에 데려가고 장손 하나 지켜주지 못한 조상들. 뭔 염치로 제사상 받으러 오겠냐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을 합니다. 정말 제사상이 눈앞에 있으면 발로 걷어차 버린다고.....

정말 사는 게 힘들어요. 동생하고 떨어져 있었지만 이틀, 삼일이 멀다하고 통화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도 다 이야기하면서 지냈는데 정지시켜놓은 동생 핸드폰으로 가끔 전화할 때마다 넘 맘이 아픈데.... 누나인 저도 이런데 엄마는 오죽할까요?

정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멀리 이사 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네요.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 정말 너무 원망스러워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런 우리 가족의 고통을 누가 알까요? 가까운 친척도 이해해 주지 않는 이 고통을..."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 진행보고 및 유족 신년인사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 진행보고 및 유족 신년인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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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은 우산을 씌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비를 함께 맞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까운 이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분들의 아픔에 말이 아닌 마음으로 공감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과 사인 진상규명.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이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2017년 새해. 누구에게도 이런 고통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나서겠습니다. 의무복무를 위해 입대한 아들을 잃고 울지 않는 나라, 그리고 만약 지켜주지 못했다면 그 명예만이라도 보장해 주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태그:#연극 이등병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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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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