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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져야 할 이유가 있어서 버려진 동물이 어디 있을까. 유기동물 보호소에는 늙고 아픈 강아지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펫숍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이나 몸집 작고 어린 강아지들도 어떤 사정에서인지 보호소에 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림색 털을 지닌 푸들 '크림이'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품종 중 하나인 푸들, 그중에서도 특별한 모색에 작고 얌전한 성격까지,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왜 유기견이 되었던 걸까. 크림이는 작년 여름 울산시보호소에 들어와 가혹한 더위를 견뎌내다 한 봉사자의 품으로 임시 보호를 받게 되었다.

울산시보호소에 들어왔던 유기견 크림이
 울산시보호소에 들어왔던 유기견 크림이
ⓒ lovehj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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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포기해가던 시간

울산시보호소에 들어오던 날, 크림이는 예쁘게 생긴 외모에 미용도 되어 있고 가슴줄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다들 크림이가 길을 잃은 것이라 생각해 곧 가족이 데리러 올 줄로 알았지만 공고 기간이 지날 때까지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고, 크림이는 그렇게 보호소에 남게 되었다.

"작년 여름은 덥기만 한 게 아니라 비도 정말 많이 왔어요. 태풍이 몰아친 뒤엔 보호소가 물에 잠겨 봉사자들 모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지요. 그렇게 침수되고 나면 어김없이 전염병이 돌 거든요. 크림이는 감사하게도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건강하게 버텨내 주었어요. 힘들게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을까요? 울산시보호소의 아이들을 구조해 주고 있는 '생명 공감'의 봉사자들 눈에 크림이가 들어왔고 간신히 입양공고를 위한 프로필을 찍을 수 있었어요."

봉사자들이 보기에 보호소에 들어온 유기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생을 포기하는 듯 보인다고 한다. 처음에는 잠시 낯선 곳에 놀러 온 것처럼 해맑던 아이들이 점차 깨닫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걸, 더 이상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크림이도 처음에는 눈에 띄게 예쁘고 밥도 잘 먹었는데, 점점 케이지 생활에 적응을 못하며 살이 빠지고 힘이 없어졌다. 심지어 입양공고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4.6kg였던 아이가 한두 달 만에 3.5kg가 되어 있을 정도였다. 현장 봉사자들이 그런 크림이를 지켜보다가 가정에서 임시 보호가 필요한 급한 아이로 크림이를 추천했고, 다행히 크림이는 보호소를 나와 임시보호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게 되었다. 견생역전의 한 줄기 희망이 드리워진 것이었다.

울산시보호소에 있던 유기견 크림이
 울산시보호소에 있던 유기견 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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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처에서 꽃길을 기다리며

임시 보호는 유기동물이 가족을 만나 입양을 가기 전에 가정에서 잠시 보살펴주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보호소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고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아 봉사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손길을 받기는 어렵다. 심지어 보호소에서 추위나 더위를 이기지 못하거나 전염병 등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아이들도 많다. 임시보호처가 있으면 보호소보다 훨씬 안락한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을 준비를 할 수 있다.

"임보할 때 힘든 점이라기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이든 그렇지만 책임감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임보하는 아이들이 한두 달 안에 입양을 못 갈 수도 있거든요. 예쁘고 불쌍해서 잠시 데리고 있다가 다시 보호소로 보내는 건… 따뜻한 집에 있다가 다시 보호소로 돌아가면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엄마를 찾을 때까지 보호해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데리고 있는 동안 정이 들어 보낼 때 마음은 좀 허전하지만, 가서 잘 사는 걸 보면 그것만큼 뿌듯한 게 없어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보호소에서 밥을 입에 대지 않고 말라가던 크림이는 임보처에서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그 희망이 빛을 본 것인지 크림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좋은 가족도 나타났다. 대여섯 살로 추정되는 크림이의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며, 힘든 시간을 보낸 크림이를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가족이었다.

입양자는 '울산 보호소에서 작은 이동장 가방에 담겨 줄지어 이동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어린 강아지들은 원하는 분도 많고 어느 집으로 가도 사랑받을 테니, 보호소에서 긴 시간을 보낸 크림이를 유기견 아닌 반려견으로 맞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입양 간 크림이
 입양 간 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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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말고 입양해 주세요 

임보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크림이는 입양 후에 낯도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 품을 그리워한 탓인지 늘 사랑받으려 노력하는 모습의 크림이. 보호소에서 몸이 약해진 탓인지 췌장염이 약간 있었지만,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몸도 마음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유기동물 보호소는 결코 유기동물에 대한 최종적인 답이 될 수는 없다. 보호소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어야 그 생명은 비로소 빛을 찾는다. 올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또 다른 '크림이'도 한 줄기 빛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반려동물 커뮤니티 '빈앤젤리(www.beanjel.com)에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유기견, #유기동물보호소, #강아지입양,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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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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