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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주변서 회자되는 말 중, '사람 못된 게 스님 되고, 스님 못된 게 큰 스님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영주가 그랬습니다. 어린 영주는 고집불통이었습니다. 대개의 아이들은 돈이 필요하면 다소곳이 돈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대문 앞에서 아버지 이름을 "이상언~, 이상언아" 하며 고래고래 부르기 일쑤였습니다.

어머니가 입막음을 하듯 손에 돈을 쥐어 주어야 그쳤습니다. 어릴 때만 고집불통에 못 된 게 아니었습니다. 장가를 가서는 새댁을 놔두고 훌쩍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곤 나 몰라라 했습니다. 새댁은 과부가 아님에도 졸지에 청산과부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먼 훗날 스님이 된 이영주의 딸은 어머니 삶을 '비련의 여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귀동냥으로 듣건, 책에서 읽었건, 누군가 출가를 할 때 부모가 선뜻 처자식 버리고 집 나서는 걸 허락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개의 부모들은 말리고 반대했습니다. 이영주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이영주의 아버지는 유교적 가풍이 짙은 꼿꼿한 선비였습니다. 하지만 자식인 영주는 부모봉양은 물론 처자식까지 다 내팽개치고 출가함으로 효를 최고로 치던 아버지의 입지를 옹색하게 하는 못 된 자식이었습니다.

이영주는 스님이 돼서도 못됐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며 은사 스님이 주신 발우(나무밥그릇)를 불태우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스님들 세계에서 은사 스님의 발우를 물려받는다는 건 그냥 밥그릇 하나를 선물 받는 게 아닙니다. 은사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발우를 불태운다는 것은 패륜에 버금가는 파행이며 금기를 넘어서는 못된 짓이었습니다.

젊어 공부를 할 때도 괴팍했지만, 세월이 흘러 아랫사람을 교육할 때는 툭 하면 고함을 지르고, 여차하면 몽둥이질을 하기 일쑤였으니 스님 못된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 이름을 마구 불러대던 악동, 아내에게 청상과부의 삶을 멍에 지운 못된 남편, 선비 아버지를 부끄럽게 한 불효자, 스님이 돼서도 못 된 스님이었던 '이영주'는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성철 스님의 속명(속가에서 부르던 이름)입니다.

출생에서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성철 평전>

<성철 평전> / 지은이 김택근 / 펴낸곳 모과나무 / 2017년 2월 17일 / 값 30,000원
 <성철 평전> / 지은이 김택근 / 펴낸곳 모과나무 / 2017년 2월 17일 / 값 30,000원
ⓒ 모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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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평전>(지은이 김택근, 펴낸곳 모과나무)은 성철 스님의 일생, 출생에서부터 마지막 말을 남기던 그 순간까지를 매듭처럼 매듭매듭 엮어 담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의 삶과 수행기록, 괴각이란 말 마다않고 고집스럽게 추구하며 지키려했던 구도자로서의 사상과 가치, 큰스님이라는 반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전부를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의 일생은 일제 강점기와 6.25, 불교정화 운동과 법란 등 근현대한국사에서 한국불교계가 겪은 파란만장, 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우여곡절과 궤를 같이합니다.

절망적이었던 때도 있었고 희망적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성철 스님이 일념으로 추구한 것은 구도(求道)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 그 것 뿐이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사람 노릇과 중노릇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살아생전, 한평생 하는 효도는 돌고 도는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돌고 도는 윤회를 벗어나려면 세속의 인연을 끊어야겠기에 아내에게는 비수처럼 냉정하고, 부모에게는 가슴 저미는 불효조차 피하질 않았습니다.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해 세속을 단연히 끊어버려야 한다. 부모의 깊은 은혜는 출가수도로써 보답한다. 만약 부모의 은혜에 끌리게 되면 이는 부모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부모를 길 위의 행인과 같이 대하여야 한다.' -140쪽

성철 스님하면 제일 먼저 삼천 배가 떠오릅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당신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삼천 배를 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느냐'는 반발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철 스님이 삼천 배를 고집한 건 스님 당신을 향한 절을 강요한 게 아니라 절을 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절은 실상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상像이나 그림이나 조각에 절을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비록 흙덩어리나 썩은 나무에 절을 했더라도 성심을 다했다면 그 간절한 마음이 자신을 정화시킨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로 인해 그대들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이다.' - 420쪽

고집불통의 악동, 사람 못된 이영주가 한국 불교사에 큰 획을 긋는 큰 스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람 노릇을 해야하는 인간의 도리를 저울질하게 하는 갈등입니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외길처럼 고집하며 극복하였던 나날들은 큰스님으로 가기 위해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고행이었으며 구도의 궤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커다란 고목이 겪은 봄여름가을겨울은 켜켜이 두른 나이테를 통해 읽을 수 있고, 성철 스님이 큰스님이 되기까지 맞아야 했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같은 우여곡절 속 구도의 여정은 물론 "참선 잘하라"는 말씀을 남기던 그 마지막까지는 <성철 평전>을 통해 임종을 지키듯 읽을 수 있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성철 평전> / 지은이 김택근 / 펴낸곳 모과나무 / 2017년 2월 17일 / 값 30,000원



성철 평전

김택근 지음, 원택 스님 감수, 모과나무(2017)


태그:#성철 평전, #김택근, #모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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