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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의 은어로 만든 요리는 별다른 양념 없이도 좋은 맛을 낸다.
 영덕의 은어로 만든 요리는 별다른 양념 없이도 좋은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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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윤식(81)은 은어를 두고 "존재의 시원(始原·사물이 시작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라고 했다. 소설가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란 소설집을 평하며 한 말이다. 은어는 보기 드물게 한국문학사를 대표할만한 평론가와 중견작가로부터 '상찬'을 받은 물고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은어를 높여 추켜세운 건 두 사람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깨끗한 물에서 기품 있게 헤엄치는 은어의 자태에 반해 '수중군자'(水中君子·물속에 머무는 군자) 혹은, '청류(淸流) 귀공자'라 불렀다.

게다가 몸통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큰한 수박의 향기까지 품고 있으니, 은어는 '물고기의 귀족'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품격 높은 단맛을 낸다'는 의미로 '스위트 피시'(Sweet fish)라 부르며 많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중국에선 '물고기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여 '유향어'(有香魚)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경상북도 영덕은 바로 이 은어가 헤엄치는 오십천(五十川)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십천에 서식하는 은어는 가슴지느러미에 선명한 타원형의 황금색 무늬가 있어 예로부터 '황금은어'라 불렸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은어에 비해 그 형상이 보다 유려했던 것.

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좋은 식재료와 진미는 왕이 사는 궁전에 바쳐졌다. '군자의 풍모를 갖춘' 영덕의 황금은어는 조선의 왕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때에 맞춰 은어를 진상하는 것이 영덕을 다스리던 관리들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였다.

영덕 황금은어를 재료로 만든 독특한 밥. 풍미가 그만이다.
 영덕 황금은어를 재료로 만든 독특한 밥. 풍미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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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 올리던 물고기... 사람보다 귀한 대접도

요즘처럼 냉장시설이 갖춰진 트럭이 없던 시절. 상하기 쉬운 물고기를 먼 한양까지 가져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황금은어를 제대로 진상하지 못해 벼슬에서 물러난 이들도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생겨났다.

영덕에서 은어 전문요리점을 운영하는 박재훈씨는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은어박사'다. 오랜 경험을 통해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은어의 생태를 파악했고, 이를 감안하여 햇살의 각도까지 보면서 낚싯대를 내리는 수준. 올해로 20년째 은어를 직접 잡아 식당을 운영하는 박씨에게 물었다.

"오십천 황금은어가 다른 지역의 은어와 다른 점이 뭔가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향입니다. 영덕 은어에게선 잘 익은 수박향이 납니다. 사실 전라도 섬진강과 함경도 청진에도 은어는 삽니다. 하지만, 영덕 은어의 향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왜 옛날 임금들이 유독 영덕 은어를 즐겨 먹었겠습니까? 바로 향 때문입니다."

말을 마친 박씨가 방금 잡아온 은어를 눈앞에 내밀며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은은한 수박향이 풍겨오는 듯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영덕 은어에서는 다른 지방의 은어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날까? 영덕은 토질이 좋기 때문에 송이버섯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바로 그 영양분 가득한 흙이 비가 내리면 오십천으로 흘러든다. 여기에 오십천에 쏟아지는 풍부한 일조량과 적절한 수온이 합쳐져 은어가 좋아하는 '청태'를 잘 자라게 한다. 이 청태를 먹고 자라기에 영덕 은어가 독특한 향을 지니게 된다는 것.

'황금은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영덕 은어의 지느러미 무늬 빛깔은 투명할 정도로 맑은 오십천의 깨끗한 수질에서 연유했다. 이처럼 "영덕 황금은어의 역사적 유래와 생태를 알게 되면 누구나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가 추천하는 '최고의 은어요리'는 뭘까? "간장게장에 착안·응용해 만든 은어간장절임입니다. 이걸로 명인 인증까지 받았죠." 강산이 2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을 은어와 함께 해온 사람이 가장 자신 있게 권하는 요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는 영덕 '황금은어'.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는 영덕 '황금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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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북 영덕의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

맛과 더불어 은어의 영양가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은어는 내장을 빼지 않고 회로 먹는다. 튀기거나, 굽거나, 끓인 것도 내장째 먹기 때문에 버릴 게 없는 생선인 동시에 부족한 칼슘 섭취에 좋다.

또한, 하천의 규조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내장에 다량의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편도선 관련 질환에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우리가 어릴 땐 손자·손녀가 목이 아프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은어를 말려 가루로 만든 걸 먹이곤 했다"고 부연했다.

사실 한국의 산과 강이 적잖게 오염되면서 '청정수'에서만 살 수 있는 자연산 은어의 숫자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영덕군은 황금은어 치어를 양식해 방류함으로써 황금은어가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옛날엔 임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며, 식구들이 함께 즐기는 영양가 높은 요리로도 이름을 알린 은어. '황금은어'를 만날 수 있는 영덕의 여름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태그:#영덕, #오십천, #황금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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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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