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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뇌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뇌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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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박근혜'가 5월 23일 법정에 선다. 파면당한 지 74일, 구속된 지 53일 만이다.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준비기일은 사건의 쟁점과 증거조사방법 등을 정리하는 절차다. 피고인은 출석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날 법정에는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그의 측근 최순실씨,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모두 불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나타나지 않아 법원 주변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이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한이 10월 17일 끝나며 사건기록이 방대하고 혐의만 18가지에 달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곧바로 공판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통상 사건은 준비기일을 몇 차례 더 진행하며 공소사실과 증거 인정 여부, 심리계획 등을 정한 뒤 종결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 사건은 변호인들이 의견을 정할 때까지 준비기일만 진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간 없다'는 재판부, '시간 달라'는 변호인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쪽은 방어권 행사를 내세우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어떤 기록과 증거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장님 말씀 그대로 좇아가긴 어렵다"며 "오늘로 준비기일을 종료하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최순실씨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관련자들의 다른 재판에서 부른 증인들은 가급적 다시 부르지 말자는 재판부 제안에도 "증인들이 완벽하게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모든 증인의 신문을 진행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다만 "저희가 의도적으로 기일을 연기할 생각이 없다"며 "한 번 정도 (추가준비기일을 진행)하면 따라가겠다"고 계속 말했다. 재판부 계획대로 5월 15일이나 16일에 1차 공판기일을 열면 "적절한 방어권을 도저히 행사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형사합의22부는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최씨의 재단 관련 직권남용사건과 삼성뇌물사건, 최씨 조카 장시호씨 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련 직권남용사건까지 맡고 있다. 이 재판들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과 연결돼있으며 심리가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다. 또 검찰이 제출한 증거기록만 12만 쪽가량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432명이다. 유영하 변호사는 "검토하면 이 증인들의 조서 상당수에 부동의해 신문을 진행할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공판 진행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고한 셈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더라도 피고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난감한 표정으로 법정에 걸린 달력을 한참 바라보던 김 부장판사는 배석판사들과 논의한 뒤 "5월 16일 오전 10시에 2차 준비기일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5월 23일 10시에 첫 번째 공판기일을 진행하겠다"고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5월 10일까지 증거기록 열람복사를 마친 다음 공소사실과 증거 관련 의견을 정리해 2차 준비기일에 밝히겠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 쪽에 공소사실과 관련 추가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때부터 권한이 정지됐는데 공소장에 탄핵심판 선고일인 지난 3월 10일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것처럼 기재한 이유 ▲ 최씨의 전 측근 고영태씨 등을 롯데 관련 혐의 공범으로 배제한 이유 등이었다. 검찰은 이 가운데 일부는 답변하겠지만, 증거조사에서 밝혀야 하는 내용도 있어 적절한 범위 안에서 답변하겠다고 했다.

최순실 "박 전 대통령과 같이 재판받는 건 고문"

최순실 씨가 4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최순실 씨가 4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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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순실씨는 재판부에 박 전 대통령과 분리해 심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변호인에게 보낸 진술서에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피고인은 오랜 세월 동안 존경하고 따르던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까지 서게 한 자신의 대과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 건 피고인에게는 살을 에는 고문과 마찬가지다. 검찰이 한 건의 공소장에 공동피고인으로 기소해 그나마의 실낱같은 소망도 날아갔다.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마저 외면한 점 섭섭하다."

재판부는 "의견을 존중하겠지만, 두 피고인의 삼성 관련 뇌물죄는 공소사실이 동일해 함께 심리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이날 최씨 변호인단은 접견이나 호송이 원활하지 않다며 최씨를 다시 서울구치소로 옮겨달라고도 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범 관계인만큼 같은 구치소에 수용하기가 부적절하다며 4월 6일 최씨를 서울구치소에서 남부구치소로 옮겼다.

그런데 변호인단은 남부구치소는 법원을 오고가는 데에만 3시간이 걸리는 데다 호송 차량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해서 최씨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서울구치소로 옮겨가도 박 전 대통령과 입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낮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감은 법무부 장관 처분이라 재판부 권한인지 의문스럽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변호인단이 거듭 요청하자 "검찰이 검토해달라"고 정리했다.


태그:#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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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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