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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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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규명을 위해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변 드리고 싶은 게 제 본심입니다. 그러나 변호인들의 강력한 조언에 따라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원활한 재판 진행에 도움을 못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말했다. 이날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에서 2016년 2월 15일 독대 후 1년 5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과 재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발가락 부상을 입은 박 전 대통령이 불출석하면서 뇌물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 '비선실세' 최순실씨만 마주쳤다.

"거부합니다"만 반복한 이재용의 미소

상황은 예상을 빗나갔지만, 그의 답변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는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는 같은 법정에 먼저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거부했다.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특검은 그에게 조사받은 내용이 제대로 적혔는지(진정성립 확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 전 대통령 면담 전후 19차례 문자메시지와 통화를 주고받은 게 맞는지 등을 물었다.

"거부하겠다"는 답만 반복하던 이 부회장은 살짝 미소를 띤 채 12분 만에 법정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나온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 역시 모든 질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들의 무기는 "누구든 자기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염려될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148조였다(관련기사: 삼성맨의 침묵, 권리행사인가 재판방해인가).

특검은 강하게 반발했다. 진정성립은 수사과정을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며 이미 본인 재판에서 진정성립을 인정했다면, 다른 재판에서 재확인해도 불리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특검은 또 이 부회장 등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집단 증언 거부를 하고 있는 만큼 증언거부권 행사가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검과 검찰의 질문 중 이들에게 유리한 내용은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진정성립 또한 정당한 증언 거부 대상이라고 인정했다. 이 부회장 등은 박 전 대통령과 뇌물죄 공범인데 이들의 조서가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로 쓰인다면 자신들이 유죄판결 받을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차원의 조직적 증언 거부라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고, 증인에게 유리한 질문이라 해도 "검사의 질문은 증인의 유죄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럼에도 이재용 부회장 등의 증언거부가 정당한 권리행사인지 재판 방해인지는 논란거리다. 검찰은 일종의 꼼수로 본다. 피고인이 신문 때 진실을 말하는지 여부는 재판부 판단대상이지만 형사처벌대상은 아니다. 거짓말 한 증인만 처벌받는다. 6월 19일 박상진 전 사장이 증언을 거부하자 한웅재 부장검사는 "증인일 때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면 위증죄 처벌을 받는다는 조언 때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정리하면, 삼성관계자들이 본인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없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똑같이 말했는데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뇌물혐의를 유죄로 판단한다면? 이들은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한명숙 전 총리 뇌물사건에서 검찰 조사 때 '뇌물을 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 말을 바꿨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그랬다(관련 기사 : '한명숙 재판 위증' 한만호 실형 확정).

주요 증거 날아가나... 재판부 고민도 깊어져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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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변호사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검찰 지적이 맞다"면서도 "형사소송법이 증언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어 그 행사를 문제라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증인이 출석해 증언을 거부하면 사실상 증인을 채택한 의미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등이 진술조서 진정성립마저 증언을 거부해 증거조사마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려면 원진술자가 '내가 그렇게 진술한 게 맞다'고 해야 하고, (재판부 직권으로 채택하더라도) 조사방법이 위법하다며 항소할 수 있다"며 "주요 증거라 재판부로선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도 "진정성립을 확인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공동피고인들이 증인으로 나와 똑같이 (진정성립부터) 증언거부하면 수사기관 기록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재판 기록을 어디까지 끌고 올지가 관건"이라며 "피고인 신문 등으로 공판조서에 적히는 내용은 증거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도 '증거 채택 보류' 결정으로 고민을 드러냈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나중에 의사를 번복해 다시 증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종 채택여부 결정은 재판 말미에 하고 판결 이유에 자세히 기재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의 증언거부권 행사가 정당했는지를 확인하고자 두 사람을 10일 오후 다시 부를 예정이었지만 이 부회장 등의 증언거부를 인정한 만큼 추가 신문 일정을 취소했다.


태그:#삼성, #증언거부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진정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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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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