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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없던 시절의 얼음 이야기

집집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한여름에 우리는 여러 곳에서 얼음을 만났다.

작은 가게마다 문앞에는 사각형의 빙과통이 있었다. 바깥은 스티로폼을 씌우고, 안에는 은빛을 칠한 유리병이 냉기를 샐 틈 없이 잡아두었다. 둥근 뚜껑을 열면, 거기서 잠시 하얀 냉기가 피어올랐다. 그 안에 맛있는 천국이 있었다. 우유와 설탕을 섞어 만든 게 분명한 하얀 얼음과자를 아이들은 길게 팔을 뻗어 꺼냈다. 한동안 손에 남아있는 그 기분 좋았던 냉기. 

나무 그늘 아래 리어카를 대고는 빙수 아저씨는 얼음을 갈았다. 팍! 팍! 팍! 팍! 소리도 시원하게, 대팻날에 베여 나오는 얼음 보숭이들이 대접에 담겼다. 하얀 연유를 붓고, 붉은 팥을 올리고, 색색의 젤리를 얹으면 팥빙수 완성. 앞 사람에 질세라 숟가락을 묻고 퍼먹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띵, 울리곤 했다. 분홍색 가루를 녹여 만든 얼음 오렌지 주스까지 마시고 나면 더위는 싹 가셔 있곤 했다.

수박을 사들고 아버지는 퇴근했다. 그 때마다 다른 손에는 새끼줄에 묶인 얼음 덩어리가  있었다. 엄마는 그걸 받아들곤 쟁반위에 올렸다. 바느질 바구니에서 꺼낸 바늘에는 흰색 무명실이 꿰여 있었는데, 그걸 얼음에 찍고는 무쇠 가위로 바늘귀 쪽을 친다. 얼음은 망치가 아니라 바늘에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그렇게 몇 번 '바느질'을 하고 나면 비정형으로 잘린 얼음조각들은 커다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수박을 반 쪼개어 속을 긁어내고, 거기 얼음과 사이다를 넣은 뒤, 다시 수박을 넣어 먹는 화채는 또 얼마나 푸짐한 것이었는지. 

44년 전 집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집들엔 냉장고가 없었다. 반찬들은 찬장에 담기고, 밥은 연탄불이나 석유곤로로 짓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많은 얼음들은 어디서 왔던 것들일까. 얼음 창고, 그러니까 빙고(氷庫)가 그 얼음들의 집이었다. 그 모습 거의 그대로 44여 년을 버텨온 곳이 있다. 성동구 성수동 뚝도시장내의 서울빙고가 그곳. 대표 윤구현(81) 옹을 지난 7월 13일 뙤약볕이 한창이던 때, 그의 얼음창고에서 만났다.

취재 이야기를 하자 윤구현 대표는 바로 '우아기'를 입었다. 여름 풍경에 어울리는 모습이라 처음 모습 그대로 싣는다.
▲ 44년간 얼음 팔아온 여든 하나 윤구현 대표 취재 이야기를 하자 윤구현 대표는 바로 '우아기'를 입었다. 여름 풍경에 어울리는 모습이라 처음 모습 그대로 싣는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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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창고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40여 년 전에 저기 사거리 뚝섬슈퍼 자리를 개발해서 제과점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그게 실패했죠. 찐빵 만두 자리가 제격이었는데, 선택을 잘못한 거예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때였으니까…."

- 전기가 안 들어오면, 어떻게 얼음을 보관하지요?
"아! 그때는 전기냉동고가 없었어요. 얼음방을 만듭니다. 겹으로 나무를 짜고, 그 안에 톱밥을 넣어서 열을 차단해요. 그렇게 보관하면 하루는 너끈하게 유지해요. 얼음이 회전이 빨랐으니까, 가능했어요."

-당시엔 어떤 분들이 얼음을 사가셨어요?
"집집마다 냉장고가 없으니까, 얼음을 많이 사 갔어요. 집에서도, 야외 나들이 갈 때도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어가요. 생선가게도 많이 사 갔지. 동생 정현이가 대원냉동이라고 업계에서 큰 얼음 공장을 해요. 잘 나갈 땐 4톤 트럭 다섯 대 분량까지 얼음을 팔아봤어요."

-지금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을 텐데요. 영업이 되시나요?
"아직도 우리 얼음이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훨씬 쌉니다. 그리고 큰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리는 120킬로그램짜리로 들어와요. 그걸 대개 8등분해서 팔아요. 조각얼음도 우리가 마트보다 싸요." 

윤구현옹이 뚝도시장 사거리에 창고를 두었다가 이곳으로 옮긴 때는 뚝도시장을 둘로 가르는 큰 길이 나고서다. 그의 창고는 현재 시장 안쪽 공터, 지금은 아파트 주차장으로 쓰는 빈터에 있다. 한쪽으로 겨우 차가 드나들고, 상가와 아파트가 창고를 내려다 보고 있다. 오랜 동안 퇴색한 공터엔 식물들만 담벽으로 무성하다. 대신 그가 집으로도 쓰는 창고 앞에는 석류나무가 서 있고 아담한 정원을 이뤘다.

그가 거처 겸 얼음 판매장으로 쓰고 있는 뚝도시장 서울빙고 정원. 이곳은 마치 석류가 석류알을 품고 있듯, 얼음집이 얼음을 품고 있듯, 아파트와 상가에 둘러싸여, 비밀의 정원처럼 존재한다.
▲ 석류에서부터 여주, 다알리아, 붓꽃, 모란이 자라고 있는 그의 정원 그가 거처 겸 얼음 판매장으로 쓰고 있는 뚝도시장 서울빙고 정원. 이곳은 마치 석류가 석류알을 품고 있듯, 얼음집이 얼음을 품고 있듯, 아파트와 상가에 둘러싸여, 비밀의 정원처럼 존재한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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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경주 쪽에선 석류나무를 본 일이 있습니다만, 서울에서 본 건 처음입니다.

"세 들어 살던 사람이 키우던 건데, 놓고 나갔어요. 죽일 수가 없어서 길렀어요. 겨울엔 천을 감아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그러면서 살렸어요. 석류가 화초종도 나무종도 있는데, 나무종은 종로 5가서 만오천 원 주고 산 거예요. 이제는 매해 석류가 열립니다.

- 이렇게 많은 꽃들을 키우신다니 놀랍습니다. 저희 같은 도시 사람, 젊은 사람들은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다 죽는데요. 어르신들은 녹색손가락을 갖고 계시다던데, 선생님도 그런 분이시군요. 
"유두화도 있고, 붓꽃도 있어요. 저기 넝쿨을 타고 올라간 여주도 있지요. 모란도 있고, 나팔꽃도 있고. 이제는 내가 남들한테 많이 줍니다. 겨울엔 들여놓기도 하고. 나도 공부해 가면서 키운 거예요. 보고 있으면 참 이쁩디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빙고는 아침 6시반부터 열고, 밤 아홉시 열시에나 닫는단다. 명절 때도 문을 연다니, 말은 다했다. 누군가 얼음을 찾을 때, 그는 냉동고 문을 열고 그가 원하는 대로 얼음을 준다. 예전 선비들은 얼음 하나 입에 물고(대개 임금님이 하사한) 여름을 났다고 한다. 냉동고 속, 내 키만 한 얼음을 보자 그걸 껴안고 이 여름을 나고 싶어졌다. 석류 정원의 꽃들과 함께.

마치 얼음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는 차단된 얼음집처럼, 이곳 서울빙고도 도심 속에 감춰진 듯 하다. 한가한 날, 정원의 의자에 앉아 얼음 하나를 입에 물면 여름은 멀리 사라질 것만 같다.
▲ 석류정원 속의 얼음창고. 마치 얼음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는 차단된 얼음집처럼, 이곳 서울빙고도 도심 속에 감춰진 듯 하다. 한가한 날, 정원의 의자에 앉아 얼음 하나를 입에 물면 여름은 멀리 사라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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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성동구에는 우리 구 소식을 나누는 카톡방이 있습니다. 그 카톡방에 글이 실릴 것입니다.



태그:#뚝도시장, #서울빙고, #석류정원, #얼음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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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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