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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4일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숨진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 3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이윤정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라며,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업무와 질병 간 상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대법원이 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을 사실상 산재로 인정한 셈이다.

대법원은 "이씨가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 가족력이 전혀 없었는데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퇴직한 뒤 우리나라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씨가 약 6년 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비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됐으며 주·야간 교대근무 등 기타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고 이윤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조립라인인 온양사업장에 입사해, 6년 2개월 동안 일하다 2003년 퇴사했다. 재직 당시 이씨는 반도체 칩이 담긴 보드를 고온·고압 설비에 넣으며 불량품을 거르는 작업을 했다. 그는 주로 3교대 근무를 했으며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증가할 때는 하루에 12시간 연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뇌종양 판정을 받은 이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요양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씨는 산재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진행하던 중 2012년 32세 나이로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유해화학물질과 극저주파 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 유해요소들에 지속적, 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뇌종양이 발생했으므로 질병과 업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판결 내렸으나 2심은 정반대였다.

2심 재판부는 "유해화학물질 노출 가능성은 있으나 그 정도가 낮으며 연장근무가 뇌종양을 유발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또한 퇴사 후 7년이 지나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점 등에 비춰 업무와 발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결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이 "뇌종양의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한 이후에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뇌종양이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반올림은 "뇌종양은 백혈병 다음으로 반도체 직업병 피해 제보가 많은 질병이다. 산재 신청과 소송을 고민하는 뇌종양 피해자들이 많다"라며 "이번 판결이 다른 반도체 뇌종양 사건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태그:#삼성반도체, #뇌종양, #반올림, #직업병,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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