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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5일 백석당 성당에서 열린 사형제도폐지기원 '평화를 말하다 생명을 노래하다'콘서트. 완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금태섭의원, 공지영 작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지난 12월15일 백석당 성당에서 열린 사형제도폐지기원 '평화를 말하다 생명을 노래하다'콘서트. 완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금태섭의원, 공지영 작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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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예외 없이 참혹한 범죄들이 뉴스를 장식했고 우리 사회를 절망과 분노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범죄로 생명을 잃거나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 남기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마주할 때면 15년 넘게 인권활동가로 살아온 필자도 쉽게 울분을 가라앉힐 수 없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잔혹한 범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또 이런 범죄로부터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엄격한 법의 심판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근거 없는 주장을 펴며, 사형 집행 재개를 요구하거나 사형 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또 한 번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참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형벌 강화나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회 전반에 폭력적인 문화를 확산시키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를 만들게 될 뿐입니다.

형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참혹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점검하는 일이며,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와 장치를 만드는 일입니다. 사회안전망 점검과 개선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피해자들의 사회 복귀와 안정된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가장 쉬운 형벌 강화만을 주장하는 것은 범죄의 사회적 책임을 잊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더불어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며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주장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도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형제 폐지는 국제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미 유엔이 전 세계 사형폐지를 선포한 지 오래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법률상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04개국이며, 대한민국처럼 사실상 사형을 페지한 국가는 37개국입니다. 법률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전 세계 198개국 3분의 2가 훨씬 넘는 141개국에 이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인 미국 역시 사형을 폐지 한 주(州)가 계속 증가하여 현재 19개 주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유럽평의회 범죄인 인도협약>에 가입하면서 국내에 송환되는 범죄인에 대하여 사형이 선고되더라도 집행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고, 국회는 이를 비준했습니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우리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아래와 같이 밝히며 한국의 사형폐지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사형에 찬성하는 유럽인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폐지는 근본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론 조사로 그 방향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형은 범죄를 감소시키지 못하고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거나 정의를 구현하는 해법이 아닙니다. 사형 폐지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 가치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대한민국에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였고 우리 정부 역시 그동안 사형 집행이 없다는 것을 유엔과 국제사회에 자랑스럽게 보고했습니다. 정부 주도로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정도입니다. 스스로도 사형폐지론자이고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도 사형제 폐지 의견을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러한 입장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을 겁니다. 더 나아가 아시아 사형 폐지 운동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지난 19대 국회까지 회기마다 '사형제도폐지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특히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는 재적 국회의원 수 절반을 훨씬 넘는 국회의원들이 공동발의 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단 한 차례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순탄치 않은 상황이지만,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맞아 20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마음 모아 사형제도폐지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반가운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실질적 사형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폐지국'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사형처럼 강력한 복수의 방법으로 행해져서는 안 됩니다. 참혹한 범죄에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진정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범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범사회적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으로 경제적, 심리적 소외감 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대책 마련해야 합니다. 사형제의 완전한 폐지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확정자 64명의 생명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국가라는 존재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범죄를 당한 이들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고 양심의 울림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게 하는 건 절대 저질러선 안 되는 범죄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역시 용인해선 안 됩니다.

오는 2017년 12월 30일이면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지 꼭 20년이 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지난 2007년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지만 사형집행 재개의 위협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때마다 생명과 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종교·인권·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사형 집행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형 집행 중단 20년을 계기로 국회 입법을 통해 사형을 완전히 폐지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져도, 그래도 사형은 폐지해야 합니다.

"희망의 표징은 비록 사회를 지키려는 수단이라 여기더라도 사형을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엄청나게 중대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사형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형은 불가침성의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비로운 심판에 반하는 것이며 죄에 대한 공정한 결말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희생자에 대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 복수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백한 이들뿐만 아니라 죄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범죄자도 하느님의 선물인 생명의 불가침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교종 프란치스코 2016, 세계사형폐지회의 영상메세지 중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사형, #흉악범죄, #인권, #사형집핼중단, #사형폐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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