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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최근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문서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은 창립 이후 '무노조 경영'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며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영원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노조가 이미 여럿이다. 그들이 노조를 만들고 삼성과 맞서왔던 과정이 모두 삼성노조의 역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를 통해 싣는다. [편집자말]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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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노조하기' 위해 임원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웰스토리 지회장은 휴가를 타의반, 자의반 반납했다.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를 받지 못 해, 근무 시간 외 모든 시간을 노조 업무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기자회견이 있는 날에는 반차를 냈다. '5-2 근무(새벽 5시 출근, 오후 2시 퇴근)'를 하고 난 뒤에도 퇴근을 못했다. 바로 노조 업무를 해야 한다. 지난 1년 임 지회장의 일상이다.

삼성웰스토리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 1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성웰스토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삼성웰스토리는 단체 급식과 식자재 공급 등을 하는 회사로, 지난 2013년 삼성에버랜드에서 분사했다.

기자회견 이후 1년이 흘렀다. 삼성웰스토리 노조의 첫 1년은 어땠을까.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보정역 인근에서 만난 임원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웰스토리 지회장은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며 '출범 1년'을 "가시밭길"이라고 표현했다. 사측이 조합원을 해고하거나 징계하지는 않았지만, 회유·감시·최저고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임 지회장은 "노조간부에게 노조탈퇴를 회유하고 승진에서 누락하는 것은 물론 간부의 컴퓨터를 원격에서 사찰하고 주변에 감시자를 배치한 정황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웰스토리 지회는 삼성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로는 처음으로 다수 노조가 됐다. 단체교섭 권한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마저도 '노조 고사'에 이용하고 있다. 임원위 지회장은 "교섭이 지난 1월 시작됐지만, 이제야 교섭안을 처음 회람 했다"라며 "사측에서 사소한 부분을 걸고 넘어져서 늦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 지회장은 "조합원들은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라기 때문에 지칠 수밖에 없다"라며 "그야말로 노조를 고사시키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삼성의 '노조와해'는 삼성웰스토리에서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검찰의 수사망에서 벗어나있다. 임 지회장은 "검찰이 노조가 있는 삼성 4개 계열사 모두 압수수색 할 줄 알았는데 안했다"라며 "(이미) 삼성웰스토리 본사 직원들의 PC와 핸드폰이 다 바뀌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압수수색 해봤자 먼지밖에 안 나온다"라고 검찰 수사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음은 임원위 지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삼성은 회의에 넘어가는 순간 냉정해진다"

- 삼성웰스토리에서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나?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2008년 1월 입사했다. 11년차다. 입사 4년차였던 지난 2012년 직장상사에게 구타와 폭언을 당했다. 너무 괴로워 노사협의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당시 노사협의회는 가해자인 상사에게 '임원위가 (당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는데 노사협의회는 직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기다 회사는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를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불만을 제기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나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불만을 틀어막는 것이다. 실제로 날 괴롭혔던 상사도 2억 원 넘는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뒤, 협력사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2016년 4월 노사협의회 선거에 나갔다. 그때부터 사측의 방해가 시작됐다. 출마를 한다고 하니, 갑자기 서울지사로 발령이 났다. 난 경인지사로 입사해 9년 동안 이 지역에서만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서울로 출퇴근하게 된 것이다. 굴하지 않았더니 사측에서는 '(노사협의회 선거에) 안 나가면 고과를 챙겨주겠다'라고 회유했다. 방해공작은 계속 됐다. 노사협의회 선거에 갑자기 나와 같은 경인지역에서 한 명이 더 후보로 또 나온 것이다. 표가 분산돼, 결국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되지 못 했다."

-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되지 못한 게 노조 설립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가?
"그 해 말 회사는 100여명을 명예퇴직 시켰다. 회사는 퇴직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사람을 기존 근무지에서 60~70km 떨어진 곳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그 곳에서 겨우 적응을 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지금도 웰스토리 본사에 가면 PC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10명도 넘는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사협의회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오히려 '큰 돈을 받고 명예퇴직 하게 돼서 (그 직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명예퇴직해서 (노동자들이) 엄청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울화가 치밀었다."

- '무노조 경영' 방침 아래서 노조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다.
"(노조 출범 준비를 하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인사팀장과 상무가 나를 포함해 노조 간부들에게 찾아와 '형이라고 불러라', '왜 굳이 힘든 길 가려고 하냐', '원하는 거 해 줄 테니까 불만 있으면 말해라', '말로 하자. 왜 노조하려고 하느냐'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노조 출범 기자회견 전날 밤인 지난해 4월 11일에도 회유는 계속됐다. (사측에서) 비싼 참치회를 사주며 '어떻게 살거냐, 모아둔 재산은 있냐, 꿈 펼쳐야 하지 않겠냐,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라고 했다.

심지어 기자회견 당일에도 인사팀장이 날 찾아와, 4시간 동안 설득하기도 했다. 인사팀장은 나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기자회견 가지마. 지금 핸드폰 끄고 짐 챙겨서 1주일만 잠수를 타라. 뒷일은 알아서 해줄게'라고도 했다. 나만 회유한 게 아니었다. 결국 사측의 제안에 넘어가 노조의 회계감사가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 동료가 회견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사측의 제안에 흔들리지는 않았나?
"회사를 믿지 않았다. 회사는 설득할 때는 온갖 말로 회유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매몰차게 변한다. 2015년 삼성웰스토리가 에버랜드에서 분사한 것을 두고 소송할 때도 그랬다. 5명이 대표단으로 소송을 진행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 퇴사했다. '4년치 연봉을 주겠다'며 회유하고 그 사람들이 그 제안을 받자마자 회사는 '짐도 택배로 부쳐줄 테니 당장 회사를 나가라'라고 냉정하게 나왔다. 그런 모습을 알기에 (회사를) 믿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 8000명 중 조합원은 100명, 계란으로 바위치는 느낌"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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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다. 그 이후 회사의 태도는 어땠나?
"노조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해고도 각오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해왔고 해고는 (그런 경영의) 수순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장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이 복직하는 것을 보면서, '삼성이 예전처럼 하지는 못 하겠구나', '잘려도 언젠가는 복직을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나 해고는 없다. 대신 노사협의회 출신이 사업장에 한 명씩 배치돼, 노조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다. 한 번은 (내 사업장에 배치된) 그 사람이 회식 날 술에 취해 '너무 힘들다. 뭔가 계속 보고하라고 하는데, 뭘 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 좀 해달라'라고 나한테 말했다.

노조 조합원을 불법 사찰하려고 한 정황도 있다. 한 조합원의 컴퓨터 화면에 갑자기 '정보유출 방지를 위해 화면 캡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 것이다. 누군가가 원력으로 해당 컴퓨터의 화면을 캡처하려다가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고과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작년에 입사 후 처음으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역량 부족'이 이유였다. 황당해서 이의신청을 했지만 사측에서는 '누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말해줄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연봉이 동결됐다."

- 삼성은 일명 '어용노조'를 노조와해의 전략으로 세우기도 했다. 웰스토리에서는 어땠나?
"우리 노조가 만들어지고 4개월 뒤쯤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 노조를 어용으로 보는 건 삼성지회(에버랜드)의 어용노조 대표였던 사람이 위원장으로 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리 노조의 회계감사를 회유했던 사람이 부위원장으로 있다. 또 회사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하고 에버랜드에서 분사할 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노조에 있다. 본인들은 어용노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시위에 나서자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현장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노조를 하겠다고 나서니, 반대급부로 우리 노조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늘었다. 한 번도 찾아가지 못 했던 지방 사업장에서 원서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노조에 심을 실어줘야 할 것 같아서 가입했다'라고 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긴 사람들이 희망의 씨앗인 노조까지 방해하려고 한다라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일명 '알박이 전략'은 웰스토리에서 효과가 없었다.
"노조 만든 뒤 한, 두 달 있다가 '업무개선 TF팀'이라는 게 갑자기 생겼다. 사업장에 에어컨을 설치해주고 유니폼을 바꿔주는 등 큰 돈 들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이 바라던 것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노조 없어도 회사가 다 해준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조 무력화 시도로 볼 수 있다.

거기다 사측에서 노조하면 큰 일 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내에 '임원위는 사기꾼이다',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애다', '큰 돈 받고 퇴사하려고 노조 하는 것이다', '(노조) 같이 하는 부지회장이 제일 불쌍한 애다' 등의 소문이 퍼졌다. 사업장마다 찾아가 노조 홍보를 했는데, 문전박대 당했다. 노조 홍보지랑 명함 나눠주면 직원 몇몇이 그것을 걷어갔다.

사람들이 노조 가입 하는 것에 겁을 낼 수밖에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노조 가입이 저조하다. 협력업체를 제외하면 웰스토리 노동자 8천 명이 노조 가입 대상인데 금속노조 소속은 100여 명, 한국노총 소속은 30여 명 밖에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이다."

- 그럼에도 노조를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회사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될 수 있는 근무조건이 필요하다. 웰스토리는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웰스토리 매출이 5년 사이 1조가 늘었지만 노동자의 기본급은 20만 원이 올랐다. 11년 차인데 내 기본급은 180만 원이다.

기본급이 낮지만 '능력급'이라고 해서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고과권자가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공개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다. 심지어 고과권자가 한 직원의 고과를 잘 주는 대신 직원의 성과급을 나누고 접대를 받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의 일탈이라며 징계하고 끝내버렸다. 고과 시스템의 문제인데 말이다.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노조에 가입하면 고과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과급은 커녕 임금이 깎인 사람도 있다. 반대로 (회사에) 잘 보이면 고과를 잘 받아 임금이 확 뛴다. 노조가 투명한 고과 시스템을 요구하는 이유다."


태그:#삼성, #삼성웰스토리, #금속노조, #무노조, #S그룹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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