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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을 쓰는 중에,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며 비분강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인간·시간·공간이 역사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인데, 기존 역사가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역사를 자기 목적을 위해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인간, 시간, 공간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고 떼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신채호는 "무극 일연 같은 불자들의 역사서에는, 불교가 유입된 적 없는 단군왕검 시대의 지명·인명이 온통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표기되어 있다. 김부식 같은 유학자들의 역사서에는 공맹의 인의예지 사상을 잘 모르는 삼국 무사들의 입에서 경전 구절이 줄줄 암송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는 재출간된 <조선상고사>의 총론에서 위의 구절을 보며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벌어지는 경제 전쟁의 와중에 빈번히 돌출하는 친일 사학자들의 역사 왜곡 발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제 때나 지금이나 친일 사학자들의 역사 왜곡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한민족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역사를 은폐해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 전 국민이 '기해왜란'이라고 부르며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식의 망언을 하고, <반일 종족주의> 같은 비상식적인 책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우리가 지금 다시 <조선상고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시중에 나와 있는 10여 권의 <조선상고사> 책 중 지금 소개할 서적은 <오마이뉴스> 김종성 시민기자가 현대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인 것으로, 최근 모양을 바꾸어 재출간됐다.
 
 <조선상고사> 표지
 <조선상고사>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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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기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신채호 선생을 '지난 1천 년간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역사가'라 말한다. '지난 1천 년간 역사학계가 숨기고 감춘 진실을 그가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채호 선생 또한 <조선사 연구초>에서 고려 때 묘청과 김부식의 대결을 '조선 역사 1천 년 이래 최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실. '김부식이 묘청의 혁명을 진압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부터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역사관이 사라지고 사대적이고 퇴보적인 역사관이 이 땅을 지배했다'고 덧붙였다. 

놀랍게도 김부식이 휘둘렀던 재갈은 오늘 날 친일 사학자들 손에 쥐어져 이미 죽고 없어진 신채호의 입을 꽁꽁 틀어막고 있다. '독립운동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사람의 역사 연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성은 '신채호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독립운동이 역사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았음을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신채호는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기는 했지만,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는 조선왕조의 부활을 위해, 혹은 조선 기득권층의 권력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평범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자유를 누리고 보호를 받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독립운동을 했다.

무정부주의자였기에 신채호는 한국을 편들지도 않았고 중국을 편들지도 않았고 일본을 편들지도 않았다(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었다. 1930년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오로지 한국 상고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그였기에 오늘날 우리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상고사>는 신채호가 뤼순감옥에 투옥 중일 때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고, 옥사로 인해 연재가 멈춰진 부분이 '백제부흥운동'까지였기에 <조선상고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원문은 지금의 우리말과 큰 차이가 있는데다가, 수감 중에 작성된 탓에 신채호의 기억력에 의지한 부분이 많아 연도나 명칭 등에 다소 오류가 있다. 김종성은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명백한 오류를 바로 잡고, 해설과 주석을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이 신채호의 역작을 온전히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재 신채호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
ⓒ 단재신채호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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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신채호의 탁월함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사대부 유학자들이 헤게모니를 지킬 목적으로 은폐한 고대사의 진실을 파헤쳐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해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킨 것도 그의 과업이다. 이에 대해 김종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이 고대사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대사를 청소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둘째, 그는 <삼국사기>처럼 신라 위주로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를 서술하는 대신, 한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고구려·백제·가야·신라의 역사를 균등하게 서술했다. 무엇보다 중국 역사서를 토대로 하여 우리 역사를 서술하는 자세를 지양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신채호의 혁명적인 역사관에 있다. 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하며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되어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역사는 투쟁의 과정'이라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채호가 행한 다양한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명백해졌다, 우리가 지금 왜 <조선상고사>를 읽어야 하는지.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아'가 파멸되고, '비아'의 역사만이 남을 것이다. 지금의 전쟁이 '경제전쟁'이 아니라 '역사전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국뽕'에 취하자는 말은 아니다. 신채호 선생이 그랬듯,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통해 '지금'을 경계하고 '훗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조선상고사,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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