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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나아지던 우울증이 연말부터 다시 삐끄덕 거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12월 21일 고려대에서 열린 한국사회학회였다. 올해 주제는 '공동체의 미래를 묻다'였다.

영화 <조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대안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사회학적 논의가 이뤄졌다. 그 중에서도 '생협과 노동문제'라는 세션에 참석했는데 이 곳에서 여러 가슴 아픈 얘기를 듣게 되었다.

생협은 '생활협동조합'의 줄임말로 유기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의 공동 거래를 만들어내며 건강한 먹거리 시장을 선도해왔다. 2000년대 들어 웰빙 열풍에 힘입어 생협은 계속 성장해 왔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생협의 매출액은 1조 1,184억원이며 조합원수는 137만명, 매장 수는 573개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1인 가구의 증가와 가정편의식 시장 확장 등 소비 패턴의 변화와 함께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편의점처럼 다채로운 생활용품을 다 갖춘 복합 매장으로 변화되면서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협들은 규모의 경제, 전국 물류화, 경영의 전문화, 경영과 활동의 분화 등을 선택해왔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날 세션에서 얘기된 논의는 그 중에 하나로 생협 안에서의 노동 문제였다. 협동조합 교육·연구자로서 익히 알고 있었던 사례도 있었지만 몰랐던 내용도 많았다.

협동조합 역시 시장 안에서 작동되는 사업체이기에 당연히 노동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17년 참여연대에서 노조가 출범하고 현재 2기 위원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예전에는 합법적인 운동은 꿈도 꿀 수 없고 임금은커녕 차비도 받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기에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이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활동가들의 '번아웃'을 얘기하고 노동권과 노조를 인정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날 들었던 여러 얘기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내 마음을 괴롭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협동조합에 내가 매혹되었던 이유는 '인간적인 자본주의'가 가능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였다. 대학 신입생때 '착한 자본가'는 없다라는 명제,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다"라는 민중가요에 의문을 품었었다. 그렇게 외치던 이들도 대기업의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올지 모를 '노동해방 세상' 보다는 노동자들이 공동의 주인이 되어 노동자-자본가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다는 협동조합이 내게는 현실적인 이상체(real utopia)였다. 더욱이 스페인의 10대 기업이며 매출 15조원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처럼 지금 활발히 작동하고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렇기에 협동조합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 문제가 내게는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겨울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던 건 연말과 연시에 참석한 거리의 미사였다. 크리스마스 광화문 앞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0일 미사에 참석했다. 폐기처분하려는 노후된 선박을 무리하게 운행하다 침몰하고 보험금을 탄 예견된 사고였고 아직 한국에 이런 노후한 배가 30여척 운행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특별한 상황에 놓였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재난참사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지금도 노후한 배에 탈 수밖에 없는 선원들이 자신들의 문제라며 진실을 꼭 밝혀달라 합니다"라는 유가족 대표의 가슴 아픈 얘기.

같은 시각 뒤편의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와대 앞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 등을 받는 한국기독교총연합 회장 전광훈 목사와 신도들이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치고 세월호 유가족 등을 모멸하고 있었다. 주최 측이 준비한 달력과 떡을 받아들고 가는 무수히 많은 시민들.

광화문에는 작년 11월 29일 부산경마장의 부정에 대한 3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한 문중원 기수의 시민 분향소가 있었고 톨게이트 수납원 농성장도 있었다. 연말에는 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유경근 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부고 소식을 전하면서 "계속 화나다 짜증 나다 욕하다 갑자기 부럽다가 또 안타깝다가 미안하다가 드러운 세상 욕하다.. 이제는 ○○이와 함께 편안하시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개혁은 어렵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춥고 힘든 겨울이다. 2016년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시기 난 콜드플레이의 명곡 "Viva la Vida"에 중독되어 듣고 또 들었다. 웅장하고 장엄한 사운드에 혁명으로 쫓겨난 왕의 자조적 읊조림의 가사가 깔려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를 몰아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곡의 마지막에 나오는 "왜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저 높은 곳에 앉으면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지. 내가 다스리던 그때처럼"에 더 꽂힌다. 하긴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외쳤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행동에 분노했는데, 여전히 문희상 국회의장 장남 문석균씨가 <그 집 아들>이란 책을 출간하며 21대 총선 출마를 밝히고 있는 세상이니.
 
 1월 12일 광화문 옆 문종원 기수 시민분향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조문을 표하는 모습.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 10년간 모두 4명의 기수와 2명의 관리사가 잇달아 목숨을 끊었고 작년 11월 문종원 기수가 경마장의 비리와 부정을 언급한 3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1월 12일 광화문 옆 문종원 기수 시민분향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조문을 표하는 모습.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 10년간 모두 4명의 기수와 2명의 관리사가 잇달아 목숨을 끊었고 작년 11월 문종원 기수가 경마장의 비리와 부정을 언급한 3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 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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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불완전해, 더 나아질 뿐

이래저래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던 즈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열린 신자와의 만남에 참석한 여성의 손등을 내려친 것에 대해 "인내심을 잃었다"며 사과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생각해보면 교황은 물론이거니와 성경 속 예수 역시 실수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주 어딘가에 완전한 세상이 있고 완전한 신이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불완전한 인간들이다. 예수 역시 신에서 인간이 된 이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예수는 난민으로서 마굿간에서 태어났으며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이자 미혼모의 자녀이기도 했다.
 
"우린 모두 불완전해, 더 나아질 뿐"
 
연말과 연시 계속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이 말을 했다. 어제 보다 오늘 더 나아지면 되지 않을까. 신이 아닌 이상 모두 불완전하고,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제도는 얼마나 모순 투성이 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협동조합 역시도 그렇다.

"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협동조합 기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 2012년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 해의 슬로건이다. 협동조합은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명대사도 "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이다.

하루 하루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다음 세대에게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때 가서는 또 새로운 문제들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갔으면 좋겠다. 자녀도 없고 천국이나 환생을 믿지 않지만 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인류의 길고 긴 이어 달리기에 대한 소망이다.

[나를 위한 마법의 주문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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