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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 명, 한국 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입양인들의 숫자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외로 입양됐던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아 한국을 찾는다. 우연한 계기로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도왔던 평범한 한국의 여성들은 마음을 모아, 미국의 여성 입양인들과 함께 입양인을 돕는 모임 '배냇'을 만들었다.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입양인들을 미국과 한국의 회원들에게 소개해 준다. 그들을 돕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생생히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해외입양인들의 슬픔, 기쁨, 아픔, 그리고 부끄러운 역사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기자말]
1971년 대구 달성 금동시장에서 실종아동으로 발견된 오미숙씨는 발견된 지 일주일도 채 안돼 입양이 결정됐다.
▲ 실종아동 오미숙 1971년 대구 달성 금동시장에서 실종아동으로 발견된 오미숙씨는 발견된 지 일주일도 채 안돼 입양이 결정됐다.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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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5월 달성군 금동시장에서 미아로 발견된 세 살배기 오미숙씨는 발견된 지 일주일 만에 해외 입양이 결정돼 서울의 위탁모 손에 맡겨졌다. 48년 전 대구의 한 예식장에서 길을 잃었던 네 살배기 김태형씨는 시설에 맡겨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부산의 미군부부에게 입양이 됐다.
  
1974년 3월 덴마크로 입양된 손은수씨는 자신의 친생 부모를 찾기 위해 입양기관 문을 두드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양부모가 받은 기록이 다른 사람 것이라는 것을 입양기관 직원의 뒤늦은 고백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은수씨의 기록에 나와 있는 사진과 인적사항의 주인공은 당초 자신의 양부모에게 입양될 예정이었던 아이의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 아이는 입양 이틀 전 갑작스레 사망했고 입양기관은 무슨 영문인지 그 사실을 양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은수씨를 그 아이 대신 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던 것일까? 왜 친부모가 찾을 틈도 주지 않고 우리의 아이들을 서둘러 해외로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후 무분별한 해외입양 '주춤'
 
   
친생부모를 찾아 연간 3천~5천여 명의 해외입양인들이 고국을 찾는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귀국한 해외입양인들을 통해 입양기관의 반인권적이고 허술한 입양 과정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외 모든 입양 과정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 입양아동현황
 보건복지부 입양아동현황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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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해외 입양인들의 노력으로 입양 절차와 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후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고 7일간 숙려기간을 거쳐야만 입양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영향으로 이듬해 국내외 입양 건수는 51%(2012년 1880건→2013년 922건)가 줄었으며, 이중 해외입양건수는 74%(2012년 755건→2013년 236건)나 급감했다. 정부는 입양특례법 시행에 발맞춰 60여 년간 민간에 맡겨왔던 입양문제를 직접 챙기기로 하고 중앙입양원(현 아동권리보장원)을 설립했다.
         
입양특례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정부는 2013년 5월 해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해외 입양의 절차와 요건을 규정한 국제 조약인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하 헤이그협약)에 서명을 했다. 헤이그 협약은 아동의 해외 입양을 최소화하고 원 가정 보호를 유도하자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다루고 있다. 정부는 협약 서명 이후 4년여 만인 2017년 10월 헤이그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준이 동의 되면 한국 아동을 입양하려는 외국 국적의 입양 희망자는 지금과 달리 입양 기관이 아닌 자국 정부와 우리 정부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법원의 입양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써보고자 했던 정부의 의지는 입양 관련 기관들의 반대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헤이그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관련 국내법을 제·개정 하고 협약 비준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 개정을 두고 해외입양인들과 민간 입양기관이 권한 등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현재 양측의 주장을 기반으로 한 상반된 내용의 법률안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발의되면서 해당 논쟁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민간 입양기관 권한 두고 상반된 두 개의 법안 발의 중

지난 2018년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서명에 발맞추어 아동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민간 입양기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 입양기관이 친부모 상담부터 입양 신청, 결정, 양부모 선정 및 결연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현 시스템으로는 국가 책임 강화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추진된 법안이다.

남 의원은 구체적인 방안으로 헤이그국제입양협약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입양인 신청부터 상담, 교육, 사후관리 등을 관리 감독할 것을 주장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해외 입양 사업에 수익을 의존하는 민간 입양 기관들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에 따른 입양 지원 체계 개편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입양기관들의 전체 수익 중 40~67%가 해외입양 수수료에서 발생한다.
 
민간 입양 기관의 권한 제한에 무게를 두고 있는 남인순 의원 발의 법안은 민간입양기관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민간입양기관들은 "정부가 입양의 전 과정에 개입하며 절차가 까다로워져 입양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며 "남 의원의 법안은 오히려 시설 양육을 늘릴 것이며 미혼모의 유기 아동의 수를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인순 의원의 법안에 반대하는 법안도 곧이어 발의됐다.
  
2019년 7월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중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입양업무의 법적 책임주체로서 역할을 하되 '전문성 등을 고려하여 일부 실무업무를 입양기관 등에 위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양기관에 대한 입양 업무 위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남인순 의원의 법안과는 대조된다.

더욱이 김 의원의 개정안은 입양의뢰 된 요보호아동의 양부모를 국내에서 찾지 못한 경우 입양기관이 국제 입양을 추진할 수 있도록 못 박고 있어 지난 2012년 이후 크게 줄었던 해외입양이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입양기관 역할 논쟁에 입양기관의 의견 대거 반영 '빈축'
 
  
1976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난 양재문씨(가명)는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20여 만명의 해외입양인 중 한명이다
 1976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난 양재문씨(가명)는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20여 만명의 해외입양인 중 한명이다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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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김 의원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검토되는 과정에서 법안 통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보건복지위원회가 작성한 검토보고서에 민간입양기관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해외 입양인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는 검토보고서 작성에 앞서 해당 법안의 적정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관련 단체와 기관 등에 대해 '의견조회'를 실시했다. 해당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해당 법안이 보다 공정하고 적정하게 검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김 의원 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입양기관의 업무위탁에 관한 범위에 대한 의견을 국내 4대 민간 입양기관에 의존하고 있어 공정한 의견 수렴에 의문이 제기됐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입양기관의 업무위탁에 관한 의견은 홀트아동복지회와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 3개 민간 입양기관과 한국입양홍보회와 전국입양가족연대 그리고 보건복지부에 일임했다.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5개 기관은 국가와 지자체가 주체가 되는 일은 '신속한 입양수속' 원리에 위배된다며, 50~60년간 입양 업무를 진행해 온 전문성 등을 강조하며 모두 민간 입양기관의 업무위탁에 찬성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부모의 적격성 여부는 상담전문가인 입양기관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동방사회복지회는 "가정법원의 입양허가와 관련하여 법원의 인력부족으로 현재 입양재판의 장기화 우려가 심각해질 수 있으며 신속한 입양수속에도 위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해당 법안의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모든 단체로부터 의견조회를 다 받을 수는 없다. 의견 조회 대상 단체 및 기관은 담당 조사관 등의 재량에 의해 검토되는데 이 과정에서 군소단체들이 배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입양인 목소리 빠진 법안 통과 안될 일"
   

해외입양인들의 인권과 입양특례법 개정에 힘써온 뿌리의집 김도현 목사는 말한다.

"보건복지위원회 담당 입법조사관은 입양기관들과 입양부모회에만 의견을 조회했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입양에 관련된 모든 주체에게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거쳤다. 법안을 보건복지상임위원회에 상정하기 직전,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을 불러서 최종 조율을 하는 회의를 했는데, 거기서 입양인 당사자들과 입양기관들, 입양부모회 그리고 관련 학자들이 모여서 조율하고 타협하는 절차를 밟았다. 군소단체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이 법의 규율 아래 놓이게 될 입양인 당사자들의 의견이 필요 없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독재적 발상에 불과하다."

김 목사는 "전문성이란 아동 최선의 이익을 실현하는 전문성,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전문성이어야 한다. 아동의 돌봄이 이익실현의 수단에 불과했던 기관의 전문성은 과거에도 필요하지 않았고 오늘도 필요한 전문성이 아니다"며 "전문성의 이름 아래에서 자행된 한국해외입양 67년사의 어두운 그늘이 이토록 짙은데, 입양기관들이 여전히 전문성 운운하는 일이 가당한지 곱씹어 볼 일"이라고 강조했다.

태그:#해외입양, #입양특례법,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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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70~80년대 해외로 입양된 친구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알게 된 친구가 생모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서다. 그녀를 돕는 과정에서 나는 입양인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다. 현재까지 수 많은 입양인들과 인연이 되어 돕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 어느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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