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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농담'이라고 하면 건방지고 불쾌하겠지만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고 하니 어딘가 애절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항암 치료를 극복하고 다시 방송인과 작가라는 생활 전선으로 뛰어든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솔깃하다. 그의 칼럼을 수시로 읽고 있었기에 서점 매대에서 책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반가웠다.
 
책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음.
 책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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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농담이 남기는 교훈은 이러하다. 어쨌든 살아라. 청춘들아, 내가 했던 후회를 반복하지 말라. 그래도 듣지는 않겠지만, 한 명이라도 알아듣고 실천해주면 고맙겠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다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한 마디로 짚어보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면서 살라는 말처럼 들렸다.

사서함이나 메일 등으로 그에게 사연을 풀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들에게 작가 허지웅이 남기는 메시지는 '상처는 상처고 삶은 삶이니깐 따로 구분해서 살아라'였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이론은 이론이고 실전은 실전이다. 그냥 다른 거다. 어떤 현상을 특정 사건의 원인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피곤하니 그만두고, 사건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제발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아니 다를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다.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 달라'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외치는 이 주문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벌어졌고, 벌어질 일에 발목 잡혀 앉아서 울고 있지 말고 힘닿는 한 앞만 보고 달려가라는 것이다. 좀비 영화의 클래식 <워킹데드>에서 수시로 나오는 말,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거다.

괜찮아 힘내. 눈을 감고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려 봐. 잠시 모두 잊고 어디론가 떠나보자 등과 같은 위로와 힐링과는 거리가 멀다. 다짜고짜 직진하는 농담을 들으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깐 그는 영특하게 좋아하는 영화와 소설을 데리고 와서 타이른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있는 나는 그의 시니컬함이 건방짐이 아니라 스타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꽤 근사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었다. 그의 글솜씨는 여전했다. 읽는 내내 재밌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결심이다'와 같은 훌륭한 표현에 '오!' 감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치유가 필요해서다. 타인의 생각을 훔쳐보면서 공통분모를 찾고 작가와 어느 정도 동기화가 되면 나도 이 험난한 고개를 넘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일종의 노동요 같다. 신이 죽은 시대에 우리가 기댈 곳은 인간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힘겨워하는 동료에게 서로가 으샤 으샤 응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측은한 우리가 이야기꾼에게 눈과 귀를 뺏기는 것은 대나무 숲에서 소리 지르는 이유와 비슷하다. 위로와 격려로 뻥 뚫린 가슴은 용기를 품을 수 있다. 살아갈 용기. 

책에는 희망만 담긴 것은 아니다. 억척같은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암으로 마감한 한 여인의 삶도 담겨있다. 그는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을 보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결국 찾아온 죽음에 슬퍼하며 이 보통의 삶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며 페이지를 할애하여 나 같은 인간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웃고 짜증나고 뭉클하며 감탄하다가 덮게 되는 책이다. 많은 분들께 이 책의 포스가 함께 하길 빌어본다.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은이), 웅진지식하우스(2020)


태그:#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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