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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딸 아이가 최근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이 많다. 다니는 중학교 사회, 과학 시간에 이 주제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호기심에 여러 자료를 찾아보더니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왜 사람들은 외면하는지 모르겠다"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후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다른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데 대한 상실감 등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 불안(climate anxiety)', '생태 불안(eco-anxiety)'이라 명명되어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아이는 채식도 시도하는 중이다. 소 사육의 폐해를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다. 때때로 맛있는 육식 앞에 결심이 무너지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붉은 고기를 기피하고 콩이나 두부, 생선 등으로 단백질을 대체하려 노력 중이다.

나는 아이의 시도를 최대한 격려하려 노력하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다른 식구를 생각하면 때로 고기도 준비해야 하는데 큰 아이를 위해 메뉴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가뜩이나 요리 솜씨가 없는 내게 스트레스다. 아이에게는 다른 이의 취향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타협점을 찾으려 하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 인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가 한참 동안 슬픈 얼굴을 하더니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평소에도 마음이 약해 잘 우는 스타일이라서 크게 걱정은 안하면서도 혹시 심한 기후 우울증에 빠진 건 아닐까 싶어 조심히 이유를 물었다.

"엄마, 내가... 환경 문제 때문에 전기를 아끼려고... 집의 여기저기에 불을 다 끄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불을 다 끄다 보니까... 흑흑..."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신경이 곤두선 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워... 흑흑..."

흠, 환경을 생각하면 전기를 아껴야 하는데, 잠자리에 들기도 전에 부지런히 주변 불을 다 꺼버렸더니 갑자기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에고, 어쩔까나...
   
   절약을 하고 싶지만...
  절약을 하고 싶지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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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는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작은 실천 하나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나름대로 잘 실천하는 편이다. 분리수거도 잘 챙기고 뭔가 살게 생기면 중고거래를 이용해보려 한다. 그런데 그 실천력에 예기치 않게 제동을 거는 것이 생겼으니 그게 어릴 때부터 두려워하던 귀신일 줄이야.

아이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이런 이유로 우는 것이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울어도 되냐'고 물었다. 우는 건 네 자유인데 환경을 지키는 실천도 네가 마음 편한 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마음이 불편하고 두려우면서까지 실천에 집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하고는 아이 방을 나왔다.

글쓰기도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아는 것과 하는 것, 발음은 비슷한 이 두 단어의 본질은 그러나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나는 일기 같은 글이 아닌 세상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에 일종의 죄책감을 가진다. 글쓴이야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댈 자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문제 한복판에 있는,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거기에 글 한 줄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같이 행동해줄 게 아니라면 조용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게 아닐까. 뭘 안 다고 떠들어대나, 그런 생각도 있다. 아직도,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라는 핑계 뒤에서 '좋은 글을 쓰면 그 자체로도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희망으로 글쓰기에 머물러 있지만 직접 행동 '하는 사람' 앞에서 그저 조금 '아는 사람'으로만 남아있는 내 자리가 가시방석인 것은 사실이다.
     
  행동하지 않고 글쓰기에 머무른다는 것은 때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행동하지 않고 글쓰기에 머무른다는 것은 때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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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세상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쓰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감수해야 한다. 한참 글을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 내 글도 행동만큼의 영향력을 가진다는 확신이 드는 날이 오려나. 혹은 글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글렀으니 차라리 행동을 하자고 결정하는 시점이 오려나.

지금으로서 위로가 되는 건 '행동이 곧 웅변'이라고 말한 셰익스피어도 본업은 작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조금 뻔뻔하게, '하지' 못해도 제대로 '알기나' 하는, 부지런히 글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나저나 아이의 환경 사랑 실천의 가로막은 어떻게 해결하나. 귀신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두려움 타파를 '하는 것'이 어려우니 차라리 전등을 완벽히 끄는 절전 실천에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라고 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실천이 쉽지 않은 걸 알았으니 환경 사랑 실천력이 부족한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좀 더 넓어지길 바라면서.

태그:#실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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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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