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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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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와 과로자살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직접 쓴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가 출판되었다.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과로로 인한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남은 이들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서술한다. 

가족, 동료, 친구를 잃은 이들이 황망한 세상을 견디고 난 후 다른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쓴 이유는 과로죽음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가족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며 재발을 막기 위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국가별 연간 노동시간 통계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기록하는 한국사회에서 과로를 멈춰야 한다는 유가족의 목소리는 과로를 권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찾는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과로사란 무엇인가?

최근 들어 과로사 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언론에도 자주 보도 되고 있다. 특히 작년 한해 연이은 택배노동자의 죽음으로 '과로사'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되었는데, 무척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에서 보여지는 과로사는 대개 매일 긴 시간 고된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과로사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우선 과로사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부터 살펴보자. 과로사라는 용어는 일본에서는 처음 만들어졌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 역시 과로사의 일본어 발음 그대로인 카로시(Karoshi)이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들어, 야간/교대노동자, 언론사, 건설과 영업직군에서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혹은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당시 산업의들(한국의 직업환경의에 해당함) 사이에서 과로사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2년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를 연구하던 의사 3명이 '과로사: 뇌 심장계 질환의 업무상 인정과 예방'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면서 '과로사'라는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돌연사 혹은 급성사로 부르던 업무 과중에 의한 뇌심혈관질환이 사회의학적 용어로서 과로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편 과로자살이라는 용어는 1991년에 8월 일본 덴츠(Dentsu)의 신입사원이 입사한지 1년 5개월 만에 자택에서 자살사망한 사건에 대해 일본 법원이 과중한 업무와 자살의 인과성을 최초로 인정한 1996년 이후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2014년 제정된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에서는 과로사를 '과중한 업무상의 사유로 인하여 발생하는 근로자의 사망 및 자살, 질병 또는 장애 등'으로 정의하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과로사 혹은 과로자살은 공식적인 의학진단명이 아니다. 과로사 여부는 사망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원인이 드러나야 결정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의학적인 정의라기보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는 1980년대 중후반 이후 과중한 업무와 사망의 인과성을 인정하는 법원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초 언론에도 과로사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로자살 이라는 용어는 최근에 와서야 비교적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다수의 법원사례, 언론보도와 학계의 연구보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까지 과로사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으며 국가차원의 공식 통계수치 또한 없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재해 승인 현황에서 뇌심혈관질환 혹은 자살로 인한 사망사건 중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건수를 통해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뿐이지만 이마저도 불완전한 추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신청할 수 있는 근로자만 해당하므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우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과로사에 대한 문제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으며 문제 해결을 논하기까지는 요원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과로사 인정의 의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로사를 일 때문에 발생한 죽음으로 정의한다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가혹한 업무환경을 방치하고 오히려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을 실현한 기업과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건설 현장의 추락사고나 공장기계의 오작동에 의한 끼임사고와 같이 일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타 다른 산업재해와 달리 과로사는 사망 당시에는 업무 관련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후 입증 책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과로사 의심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회사는 개인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들먹이며 회사와의 관련성을 극구 부인하는 등 책임 회피에 급급할 뿐이며 정부 기관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로사 유가족들은 미처 고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심지어 장례식을 끝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일 때문에 고인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했던 일에서 이게 잘못됐던 겁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은 
세상과 사회의 '고맙고 미안합니다.'라는 인사다.
- 책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중에서
 
과로사 유가족이 산재 승인에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경우 산재보험에서 지급하는 유족연금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산재인정 여부가 고인의 명예와 정의 회복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결국 회사의 위법한 행위 때문이었다는 것을 정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고인의 명예 회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잘못을 행한 주체에 대해 향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는 정의 실현이기도 하다. 

과로사는 사회적 죽음이며 과로사 인정여부가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와 국가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와 통합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고인을 잃었지만, 그것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잘못된 조직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남은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 남은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도록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나는 2018년 1월 과로자살로 하나 뿐인 동생을 잃었다. 동생의 죽음 이후 나는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며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우리처럼 갑작스럽게 과로사에 직면한 다른 가족, 동료, 친구들에게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편협한 사회인식과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책을 출판하기로 하였다. 

여전히 일터 곳곳에서 들려오는 과로사, 과로자살 뉴스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가족의 죽음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한 우리의 고통 역시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의 과로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우리의 피맺힌 호소이다. 

책이 출판되기 며칠 전 동생의 생일이었다. 살아있었다면 이제 마흔이 되었을 내 동생. 마흔이라는 나이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기던 과거의 언젠가 동생은 마흔이 되면 하고싶은 장래 계획에 대해 내게 말했었다. 이제 나에게 동생과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을 동생의 영정 앞에 바친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은이), 나름북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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