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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있는 일터에 사고,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기 위해 출근하는 곳에서 죽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일터 괴롭힘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며 바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알려내기도 한다.

코로나 19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부터 병원의 청소노동자, 10년 넘게 노조파괴와 동료의 죽음을 안고 견뎌 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심리적 상흔을 입은 노동자들의 심리치유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까지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편집자말]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과 초과노동 등 열악한 조건에 만성적으로 놓여있다. 한국 병원의 간호사 1인은 평균 15~20명의 환자를 간호하며, 인구 1000명 당 간호사 수는 3.4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17명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45.5%이다. "지난 10년간 30여 개 간호대학이 신설되고 많은 간호사가 배출됐지만 너무나도 열악한 현실 앞에 버티지 못해 지쳐"¹⁾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이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상황을 마주하며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구체적 해결책은 여전히 마련되고 있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 등은 인력부족과 관련한 문제들을 지속해서 알려내고 인력 확충과 적정기준마련을 서울시에 요구하였으나, 서울시는 면담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²⁾

적정 인력 충원과 휴게시간 보장 없이 노동자 개인이 부담해야 할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간호사들은 어떻게 노동해왔을까. 어떠한 신체적/정신적 유해요인이 현장 간호사들의 건강에 크게 작용했고, 적정 간호 인력기준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까.

2월 16일,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이는 보라매병원 코로나 전담병동에서 노동했고 지금은 서울대병원노조에서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오 간호사와 서울의료원분회 김경희 간호사이다.
  
서울대병원노조에서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오 간호사(왼쪽), 서울의료원분회 김경희 간호사(오른쪽
 서울대병원노조에서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오 간호사(왼쪽), 서울의료원분회 김경희 간호사(오른쪽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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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병동에서의 노동

보라매병원 코로나 전담병동 간호사의 일과는 기존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고, 현장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코로나 19 병동의 간호사들은 출근하자마자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환자 파악에 들어간다. 중환자실의 경우 수액 종류, 투입량, 인공호흡기 세팅까지 하나하나 다 파악을 해야 한다.

환자를 돌보는 데도 심사숙고 해야 한다. 보통 인수인계 시간이 오후 3시쯤인데 여러 업무를 감당하다 보니 데이 근무 시 3시 퇴근이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병원에 따라 다른데 간호조무사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도 간호사가 맡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거기다가 보호자들의 환자 상태 문의부터 준비물까지 눈코 뜰 새 없다.

안 그래도 간호사 1인이 봐야 하는 환자 수가 많은 상황에서, 환자에게 적용된 의료적 처치를 하나하나 다 점검하고, 병동 내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업무까지 수행해야 해서 떠넘겨지는 느낌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또한 병동 밖의 민원 접수 대응 등으로 업무가 연장됨에 따라 유발되는 힘듦도 병원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만성적인 간호 인력부족으로 인한 상황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를 비롯한 많은 노동조합‧시민단체들은 중증도에 따른 표준 간호인력기준을 마련해야한다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현재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매우 많기에,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시간의 압박이 크고, 충분한 휴식 없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과부하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 바쁘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고, 간호사 개인에게 죄책감 등을 유발하게 된다고 인터뷰이들은 지적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요구한 중증도에 따른 간호 인력 기준 (2021.02.18, 보도자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요구한 중증도에 따른 간호 인력 기준 (2021.02.18, 보도자료)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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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다' 등의 불안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 병동에) 가기 전 30분 정도 교육시키긴 하거든요, 입고 벗는 방법 이정도만 감염관리실에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들 걱정하죠.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잘 찢어지긴 하거든요. 찢어져도 벗고 나가서 화장실 갔다가 오는 시간이 20분 넘게 걸리니까 그냥 대충 붙이고 일하게 되고.

만약 일하다 찢어지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석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럴 때는 괜찮은 건가? 찢어졌을 때 감염될 수도 있고 보호구 착용이나 벗는 과정에서 전파될 수 있잖아요. 감염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에서 일하고 친구나 가족을 만나면 내가 전파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잖아요.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큰 거 같아요.

또 방호복을 입으면 양압을 걸어주잖아요 그게 고무줄이 목을 살짝 조이고 소리도 돌아가다 보니까, 그거 입고 2~3시간 하면 답답하고. 진짜 이러다가 공황장애가 올 수 있겠구나, 소리 울리는데 목도 조이고 숨쉬기 답답하니까." (김경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병원의 특성 때문에 많은 간호사들이 3교대 노동을 하고 있다. 3교대 노동은 오전 7시~오후 3시의 데이(day), 오후 3시~오후 10시의 이브닝(evening),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7시의 나이트(night)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 친구들과 관계맺음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불규칙한 신체리듬으로 인해 수면 문제가 야기되는 등 교대노동이 노동자의 일상 및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유행 상황이라는 감염에 대한 불안감도 더해지고 있다.

많은 간호사들이 코로나19 환자 간호 시 기존의 다른 환자 간호와 견주어 2배 이상 힘들다고 얘기하는 등⁴⁾ 수행해야 하는 노동 강도 역시 증가했으며, 만성적 인력 부족과 부족한 휴게시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해져 이중‧삼중으로 건강을 침해받고 있다. 노동자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충분한 휴게시간과 바뀌는 신체리듬을 고려한 업무 일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적정휴게시간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인력확충이 필요한 상태였다.

인력 확충, 코로나 19 장기화에서 간호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해결책

인력이 부족하기에 남은 간호사 개인이 수행해야 하는 노동 강도 증가‧감염 유행 상황에서 수행해야 하는 추가적인 노동‧휴게시간이 부족하여 자신을 돌보기 힘듦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간호 인력 산정표가 있긴 하지만 실제 간호사들이 체감하는 작업 과정 시간이 반영되어있진 않다.

보라매병원 코로나병동의 경우 간호사 1인당 9명의 환자를, 중환자의 경우에도 2명을 간호해야 했다. 증가하는 노동 강도를 막기 위해 적절하고 명확한 인력 기준 마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은 "청와대로 간 간호사들 시즌 2" 등을 통해 이를 계속 알리고 있다.

"병원이나 서울시나 간호인력 산정해놓은 거를 보면 환자 중증도를 산소치료 여부로만 나와 있거든요. 근데 간호사들이 실제로 하기에는 고유량(high flow)⁵⁾ 산소치료 이런 거 하더라도 본인이 거동이 가능하면 손이 그렇게 많이 가지는 않거든요. 근데 산소 호흡기를 안 하더라도 와상환자의 경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데 그런 게 하나도 포함이 안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간호시간까지 고려한 인력기준을 만들어라 요구하는 거고. 중환자실의 경우 간호사 한 명당 환자 0.5명을 요구하고 있거든요. 일반병동 와상환자의 경우 1:1을 요구하는 거고, 산소치료를 하고 있지만 거동이 가능한 사람은 1:2.5 요구하고 있어요."(김경오)


더하여 침상 수 기준으로 인력배치기준을 마련해야, 병원이 임의로 간호사들의 근무하는 병동을 바꿔버리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것도 인터뷰이는 강조하였다.

"베드(침상) 수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간호사 1인당 환자 7명을 봐야한다고 하면, 오늘 환자가 30명이면 근무 조당 4명이었다가 내일 35명이면 근무 조당 5명이 되어야 하는데 (간호사) 스케줄을 그렇게 조절하지 못하거든요. 담당 베드가 있으면 베드 수에 맞춰서 세팅해야지 한 달 스케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면 개인 생활이 전혀 없잖아요."(김경희)

"베드 수로 고정을 안 하니까 병원이 환자 수 줄었다고 간호사를 빼요. 환자 줄었으니까 '많이 필요 없지? 그러면 너 일반병동 가서 일해' 해서 오늘은 여기서 일하고 다음 날에는 일반 병동 가고. 그 기준이 없으니까."(김경오)


인터뷰를 통해 만난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유행상황에서 증가된 노동 강도를 상쇄하기 위해 인력충원과 더불어 적절한 숙소 제공‧감염에 대한 반복적이고 철저한 교육‧충분한 휴게시간‧중증도별 인력 기준 정립을 여러 번 강조했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전담병원의 인력을 그대로 둔 채, 병상 수만 늘리고 있고,⁶⁾ 간호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또다시 간호대를 증원하거나 지역에서 의무복무를 하지 않으면 면허를 빼앗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⁷⁾

만성적인 인력부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받게 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우선순위로 병원 노동자들이 주사를 맡고 있지만, 주사 접종 후 충분히 자기 몸 상태를 지켜볼 시간이 주어진다거나 휴식 시간이 마련되지 않아 업무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을 '영웅화'하면서 계속해서 어려움을 개인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간호 노동자에게도, 시민의 건강에도 큰 우려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마주하며, 다시 한 번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은 노동자들을 위험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번 상황을 계기로 삼아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인력충원을 비롯한 일터의 변화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각주
1) 헬스타파,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제한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2021.03.12.
https://healthtapa.com/archives/16557
2) 코로나19 대유행 1년, 서울시 공공병원(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인력운영에 대한 기자간담회!
http://www.khwu.org/xe/index.php?document_srl=4728816&mid=news2
3) 2020년 6월 29일부터 7월 2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코로나 19 환자 간호 경험이 있는 대구와 서울 지역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 결과 - 출처 : "코로나19 병원 간호노동 실태와 인력기준 모델 제안 토론회", 2020.12.02. p.17
4) 동일 자료집 p.15
5) 저산소증 등으로 인해 환자의 산소농도가 부족할 때 외부에서 고유량 산소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치료방법.
6) 한겨레신문, 침대가 환자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병상 맡을 간호사는요?" 2020.12.23.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975608.html
7)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3월 7일, 60명의 간호사들 청와대로 찾아가 간호인력 확충 마련 요구하며 방호복 입은채 피켓팅·기자회견 진행!, 2021.03.07.
http://www.khwu.org/xe/index.php?mid=statement&document_srl=4728832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를 작성한 조건희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며, 보건의료학생단체 매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태그:#간호사, #병원, #코로나19, #노동자건강권, #인력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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