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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강은 자신의 작품 속에 '세상의 암호'를 숨겨놓는 작가다.
 소설가 김강은 자신의 작품 속에 "세상의 암호"를 숨겨놓는 작가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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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년차 작가의 2번째 소설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숙성된 작품들에 놀랐다. 내과의사로 살아오다 2017년 심훈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김강(49)의 새 책 <소비노동조합>(아시아) 이야기다.

"김강은 이를테면 인형극의 내용보다는 인형을 조종하는 줄에 관심을 쏟는 작가다. 인간 세태의 사건이 아닌, 인간을 움직이도록 하는 힘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은 <소비노동조합>에 포함된 일련의 소설들을 위와 같이 평했다. 짧고도 정학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김강은 첫 번째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에 이어 이번에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곳곳에 숨겨진 세상의 암호들을 찾아가보자'고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김강은 '작가의 말'을 통해 "대화는 항상 즐겁다. 그것은 소통이며 공감의 수단이다. 또한 대화는 번뜩이는 직관과 깊은 통찰의 시간이며 짧고 편협한 이해를 교정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그에게 소설 쓰기란 독자들과의 대화 수단이 아닐까?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또는 '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어'. 이 말은 <소비노동조합>을 통해 기자가 들은 김강의 목소리다.

김강은 사소해 보이는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의 밋밋한 일상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그는 높낮이 없이 전개되는 편안한 문장 속에 중차대한 '세상의 암호들'을 숨길 줄 아는 작가다.

표제작인 <소비노동조합>은 기본소득이 법제화된 시대를 다룬다. 일하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이 국민 모두에게 지급되는 세상. 그 세상은 마냥 행복할까? 거기엔 불만을 가진 세력이 생겨나지 않을까? 소설은 기본소득 인상을 위해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젊은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묻고 있다.

 
김강의 2번째 소설집 <소비노동조합>.
 김강의 2번째 소설집 <소비노동조합>.
ⓒ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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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사이에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숨겨놓는 작가

<와룡빌딩>은 <소비노동조합>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건물을 가진 임대인 또한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선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작가의 인식이 유머 섞인 설정을 통해 보여진다. 웃음 속에 진지함을 담아내는 재능이 만만찮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세상과 삶의 암호를 숨겨놓는 김강의 소설 쓰기는 수록작들에서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 옛적에>엔 인간의 품성과 부끄러움이란 암호가, <일어나>에는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열정이, <사자들>엔 위선과 오해란 암호가 꼭꼭 숨겨져 있다. 그것들을 찾아내는 게 김강 소설을 읽는 최고의 재미가 될 것이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게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소비노동조합>의 수록작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건 <그날 비가 왔다>였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불우한 소년과 그를 거둔 체육관 관장, 그리고 체육관에서 기르는 개, 광기와 불행한 사건을 부르는 비…

별반 큰 연관성을 지니지 않은 듯 느껴지는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폭력'이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김강의 글쓰기는 재론의 여지없이 매력적이었다.

김강은 이제 막 세상과 독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 소설가다. 그의 과거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지만, 미래는 섣불리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상의 암호'를 풀어가려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않는 한, 그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 책은 그 믿음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줬다.

2번째 책을 펴내며 "나의 언어를 건넬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 김강의 다음 책은 어떤 암호를 함께 풀어보자고 독자들을 유혹할까? 벌써 궁금하다.

소비노동조합

김강 (지은이), 도서출판 아시아(2021)


태그:#김강, #소비노동조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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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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