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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중앙선대위 총괄특보단의 아동폭력예방특보로 영입한 신의진 전 의원이 게임과 관련한 과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중앙선대위 총괄특보단의 아동폭력예방특보로 영입한 신의진 전 의원이 게임과 관련한 과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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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게임을 꼽자면 아마도 건설과 탐험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마인크래프트'일 것입니다. 레고 블록을 가상 세계에 옮겨놓은 것 같은 폭력성이 희미한 게임에 무려 미성년자 이용불가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지요. 전 세계 200여 국가 중에 이 게임이 성인 게임으로 분류되는 나라가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마인크래프트의 성인게임화에 대해 여성가족부에서는 제작사의 모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체 규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밝혔지만, 엄밀히 말하면 셧다운제 규정을 피할 수 없었던 기업의 불가피한 선택이라 보는 게 타당하겠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코딩 교육을 비롯해 여러 목적으로 이 게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집중력을 기르거나 제작 조합 합성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서 레고를 갖지 못한 저에게는 이만한 게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인천광역시가 인천의 과거-현재-미래를 구현한 '인천크래프트'를 선보인 것처럼 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죠. 게임이라는 게 더 이상 현실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점점 더 일상과 가까워지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논란의 배경이 되었던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가 내년부터 폐지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시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중앙선대위 총괄특보단의 아동폭력예방특보로 과거에 게임 중독법을 발의했던 인사를 영입하면서 '게임에 대한 오명'이 다시금 조명받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시절 이른바 '4대 중독법'을 대표 발의했던 신의진 전 의원이 다시 해명하고 나섰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게임을 또다시 중독과 자살과 치료의 범주에 함께 묶는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질은 게임을 잠재적 질병으로 보고, 그 이용자인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이 인정받는 직업이자 산업이 된 세상
   
인생이 정말이지 시험에 잡아먹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대학 입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취업을 하는 이 순간에도 소금물 농도를 계산하고 영어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준비합니다. 인생에 시험공부가 항상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전 국민이 꽤 오랜 기간 공부 중독으로 속앓이를 하며 고생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회가 집단적으로 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최면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가 인생의 유일한 길인 것처럼 배우고 살았는데, 어느샌가 시대가 바뀌어 있었다는 거죠. 잘 놀고 잘 즐기는 게 오히려 직업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에요. 자기 미래를 게임으로 정하고 그것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서 소득을 발생시키는, 게임이 인정받는 직업이자 산업이 된 세상이 왔습니다.

취업이나 수험공부를 하는 친구를 만나 "만약 15년 전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세상은 게임만 잘해도, 고양이와 잘 놀아도, 삼국지 썰만 잘 풀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래도 너 공부할 거냐?"라고 물으면 다들 안 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축구 감독 게임 '풋볼매니저'를 하던 사람이 실제 프로축구 구단의 스카우터로 채용되기도 하는 변화된 시대에도 게임에 중독 프레임을 씌우는 구습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극단적인 사례를 들먹이면서 게임을 질병으로 치부하며 게임 이용자들을 잠재적 치료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시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운동 중독으로 약물까지 사용하는 몇몇 로이더(약물로 근육을 키우는 사람) 때문에 헬스장을 법적으로 규제한다는 발상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러나 게임은 잃어버린 10년을 견뎌야 했습니다. 게임 관련 종사자들과 이용자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셧다운제를 정당화했던 담론이야말로 게임에서의 '산업재해'였습니다. 그게 바로 게임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이었고, 그 시선이 힘을 얻어 법제화되었으며, 그 법이 없어지기까지 바로 10년이 걸렸습니다.

저도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대한민국 평균적인 남성이었습니다. 풋볼 매니저를 하다가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습니다. 이따금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푹 빠져 있었지만, 무언가에 피로를 잊을 만큼 몰입하는 경험은 제 인생에 몇 안 되는 귀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밤을 새워서 몰입할 줄 알았던 덕에 밤을 새워 연구주제를 파고 헤쳐나가 대학원에서 논문도 몇 개씩 등재하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저는 종종 게임에서 위대한 예술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영화가 스토리와 캐릭터를 영상에 담아 예술적 의미를 구현하는 매체라면, 게임은 영화적 요소에 유저의 플레이와 상호작용이라는 참여 형식까지 덧붙인 능동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게임이야말로 인터넷 공간에 새로운 세상을 창의적으로 건설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문화
 
락스타의 오픈월드 게임인 레드 데드 리뎀션2에서 묘사한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서프러제트
 락스타의 오픈월드 게임인 레드 데드 리뎀션2에서 묘사한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서프러제트
ⓒ 락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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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막 전역하고 락스타의 '레드 데드 리뎀션2'이라는 게임에 한동안 빠져 살았습니다. 게임을 정말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찬사를 받은 작품이거든요.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 아래서 펼쳐지는 무질서한 사회상, 그 안에서 갱단이 활개치며 선악의 경계가 흐려지는 무법자의 시대가 저무는 시점을 그 어떤 작품보다 잘 묘사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활자중독으로 불릴 만큼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아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소설에서 느꼈던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재미를 넘어서, 저는 아예 살아보지 못했던 게임 속 주인공 '아서 모건'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지르는 지울 수 없는 범죄, 그러면서도 감춰지지 않는 인간미. 나중에 이 사람을 악인으로 평가 내려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헷갈리게 되는 그 모든 과정. 저는 종종 게임을 통해 다른 시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흔치 않은 귀중한 경험을 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철학적 고민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감동적인 소설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듯이, 잘 만든 게임을 하면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게임도 문화니까요. 대학생 시절 피시방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여성 손님들,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으며 연인 간의 데이트 코스로 나아가는 장면을 생생히 목도하였습니다.

게임은 젊은 세대의 놀이터였고 입시지옥의 해방구였고 우정의 수단이었습니다. 어쩌면 게임에 대한 편견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최근 발생하는 젠더갈등이나 세대갈등에 꽤나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점차 줄어가는 남녀 간의 접촉면을 늘릴 잠재력을 게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움에는 좌우가 없고 재미에는 남녀와 노소가 없지 않겠습니까? 게임은 사람과 사람이 즐거움을 교류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니까요.

사람이 망치를 쥐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한번 문제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질환으로 보일 것입니다. 여전히 게임으로 인해 범죄나 질병이 발생하고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자세를 조금 고쳐서 다시 바라봐주시는 게 어떨지 간곡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태그:#게임, #셧다운제, #게임중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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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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