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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운영의 중대사를 비선실세의 결정에 맡길 일은 분명 아니다. 윤석열 후보의 무속인 관련 이야기가 아직까지 계속 뉴스에 오르내린다. 나라를 무속인에게 맡길거냐, 제2의 라스푸틴, 최순실이냐... 무슨 사기 강도 도둑집단에 나라를 맡긴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무속인이 실제로 국정에 개입했거나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알려진 사실은 없다. 윤 후보와 관련된 일은 지난해 경선 후보 TV토론에서 왼쪽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고 나온 사실, 이후에도 '천공 스승'이라 불리는 무속인이 멘토 역할을 하고,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도 선대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에서 무속과 관련한 대화를 상당 부분 한 것 정도이다. 명확한 법 위반 사실이나 비윤리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없다.

위법 사실이 없어도, 무속과 연관이 된 것만으로 그리도 나쁘고 불온한 것일까? 무속이 아닌 기독교나 불교와 엮이는 것은 문제가 없나? 무속인이 아닌 목사나 승려였어도 똑같이 난리였을까? 무속이기에 유난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닐까?

다음의 몇 가지 장면을 살펴보자.

정치인, 공직자들과 종교 지도자의 만남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승려가 선대위 특보로 임명되기도 했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이다. 당선 뒤 청와대 회동에 초청도 받았다.
 
선대위에서 활동한 자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에서 만남을 가졌다.
▲ 이명박 전대통령-자승 청와대 회동 선대위에서 활동한 자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에서 만남을 가졌다.
ⓒ 명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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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의 열기가 뜨거웠던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계 원로들과 소통하며 정국 수습책을 고심하였는데, 이때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대표들을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대표들을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했다
▲ 박근혜 전대통령 불교계 지도자 만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대표들을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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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십년간 기독교 행사로 치러지는 '국가조찬기도회'가 있다. 지난 12월에도 있었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하고 윤석열, 이재명 후보 모두 참석해 연설도 했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지난 12월 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석했다.
▲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대통령 후보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지난 12월 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석했다.
ⓒ C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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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조찬기도회도 있다. 21대 국회가 개원할 즈음, 국회의원 60여 명이 모여 조찬기도를 했다. 매 회기 국회 개원할 때마다 있는 일이다.
 
21대 국회 개원 즈음 국회의원들이 모여 국회조찬기도회를 열었다..
▲ 국회조찬기도회 21대 국회 개원 즈음 국회의원들이 모여 국회조찬기도회를 열었다..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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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직원 20여 명이 구성한 '청와대 가톨릭 교우회'도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도 하고 행사도 한다.
 
공직자들의 종교모임도 다수 있다.
▲ 청와대 가톨릭 교우회 공직자들의 종교모임도 다수 있다.
ⓒ CP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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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몇 장면 말고도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종교단체나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지는 일은 자주 뉴스에서 접한다. 종교가 함께 한 국가나 공적인 행사도 많다. 이 때마다 심각한 논란이나 비난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불교나 기독교 등을 무속으로, 승려나 목사를 무당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름만 바뀌는 것 말고는 별일 없을까? 아마도 지금 윤석열 후보와 무속인 관련된 논란 이상으로 큰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넘겨짚은 것일까? 그렇다면 다음 장면을 보자.

학교에서 기독교모임과 굿모임

두 학교가 있다. A 학교에서는 교직원들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모임을 했다. B 학교에서는 고사상을 차려놓고 굿을 벌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독교 기도모임을 한 A 학교에서는 '방역수칙을 잘 지켰는가'가 주요 논점이 됐다. 그 외에 다른 부분을 문제삼거나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굿을 한 B학교에서는 방역수칙이 주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체를 큰 문제로 보았다. '학교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고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중징계 사안이라고 한다.

[코로나 심각한데, 교원 70~80명 교무실 모여 찬송가와 기도]
http://omn.kr/1otb0

[학교서 굿판 벌인 행정실장 '중징계' 처분]
http://omn.kr/1ope2

사람들이 모인 규모도 기도모임이 더 커 보이는데, 굿당을 차린 것만 왜 중징계가 될까. 이를 무속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무속이라면 어땠을까

다른 종교에 비해 무속이기에 더욱 편견이 심하고 심지어 차별이나 혐오의 정서까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서나 여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차별도 상당히 존재한다.

통계청의 직업분류 가운데 '종교 관련 종사자'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갈래로 '목사, 신부, 승려, 교무, 기타 종교 관련 종사원'이 있는데, 무속 관련 직업은 이에 해당하지 않고 '서비스업'의 갈래인 '점술가 및 민속신앙 종사원'으로 분류된다. 통계청의 직업분류에서도 종교인으로 보지 않고 서비스업 종사자로 보는 것이다.

2018년부터 종교인의 과세가 시행되었다. 수십년간 논란도 반발도 많았다가 결국 시행되었는데, 무속인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무속인들은 이미 예전부터도 소득신고를 하고 세금을 내왔다(기타소득 또는 사업소득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신당을 차려놓고 무당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불당도 차려놓고 불교인으로 직업을 신고하고 면세인 것처럼 속여 탈세를 한 사건도 있었다.
 
무속인들은 종교인 과세 이전부터도 납세를 해왔다. 때문에 불교인으로 위장하고 탈세를 하는 일도 있었다.
▲ 무속인은 종교인이 아닌가? 무속인들은 종교인 과세 이전부터도 납세를 해왔다. 때문에 불교인으로 위장하고 탈세를 하는 일도 있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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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는 분명 나쁜 일이지만, 이 무속인은 아마도 '왜 무속 관련 일을 하는 자신과 같은 이들만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하는 건가'라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다시피 불교계는 오랜 동안 국립공원 입구에서 문화재구역 관람료를 받는 일로 논란을 겪어왔고, 최근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논란은 더 커졌다. 기독교계는 시시때때로 장외집회까지 하며 여러 국정현안에 목소리를 내왔고,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무속은 지금까지 논란이나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일들을 뭘 했던가. 다른 종교인들이 면세 혜택을 받을 때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국립공원 관람료를 받는 일도, 차별금지법 반대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온 것이 무속인들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렇게 어떤 정치인과 연관이 되었다고 알려지면 싸늘한 시선과 날선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왜인가.

무속, 우리 민족의 시작이자 정신적 뿌리

사실 무속은 우리 민족의 시작이고 정신적 뿌리이기도 하다. 이는 종교적 관점을 떠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역사다. 우리가 잘 아는 단군설화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가 있고, 진도씻김굿, 동해안별신굿, 은산별신제, 경기도당굿 등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많다. 강릉단오제와 제주칠머리당굿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도 됐다.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무형문화재다.
▲ 강릉단오제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무형문화재다.
ⓒ 강릉단오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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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전통 의례의 행위들이 무속과 구분이 모호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들도 많다. 종묘대재나 사직대재처럼 국가 차원에서 행해왔던 의식들도 단순히 제사의식이라고 할 것인지 무속의 형태라고 할 것인지 정의하기가 모호하다. 각 가정에서 지내는 명절 차례나 제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뿌리깊은 신앙이지만, 언제부턴가 매체에서 보이는 무속은 무언가 부정한 술수가 존재하고, 때로는 기괴하고 괴랄한 것으로 인식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매체에서 무속인은 늘 살짝 제정신이 나간 이처럼 그려진다. 매체를 통해 이렇게 주입된 무속의 모습은 왜곡이 심하다. 그래서 무속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더 커지고, 무의식중에 만연한 차별이나 배척도 더욱 깊어진다.

나의 종교든 타인의 종교든 선택은 자유이나, 상대 종교에 대해 과도한 왜곡이나 배척, 선입견은 좋을 것이 없다. '우리 아버지가 목사'라고 하면 듣는 이들이 웬지 존경스러운 분, 고결하신 분으로 인식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무당'이라고 하면 곧바로 경계부터 하고 손가락질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은 왜인가.

유독 무속과 관련된 일에만 까탈스러운 비판, 이제 그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속을 찾는다. 깊은 믿음을 가지고 굿도 하는 적극적인 신도가 아니더라도, 교회나 절을 다니면서도 재미나 심심풀이로 굿당을 찾아 사주와 운세를 보기도 하고 부적을 써가기도 한다. 윤 후보의 무속인 관련 의혹을 비난하는 이들 가운데 이렇게 점이나 운세 한번 보지 않은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무속이 정말 나쁜 것이고 망국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면, 특정 후보의 무속인 연관 여부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개천절을 폐지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들도 박탈하자는 공약부터 내걸어야 하지 않을까. '미신타파, 정신개조'를 외치며 마을 굿당과 장승을 모조리 때려부수던 새마을운동을 부활하자는 공약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사이비나 미신이라는 단어는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내가 미신이라고 생각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신앙일 수 있다. 종교인 뿐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진 누구든 선거본부의 직책을 맡을 수도 있고, 종교인이든 학자든 법조인이든 누구에게라도 조언을 구할 수 있다. 국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부정하게 이익을 취한 것도 아닌데 과도한 경계의 눈초리나 비난을 보내고, 다른 종교에게는 관대하면서 유독 무속과 관련된 일에만 까탈스러운 비판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해야 할 일이다.

한편, 윤 후보의 무속인 연관 사실이 알려진 뒤 기독교계에서는 '무속 비선 정치'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평화나무의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는 1월 19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유명 목사들 수십명을 만나 지지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고, 다음날인 20일에는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위한 신년 기도회 및 하례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무속 논란 관련 쓴소리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윤 후보 역시 자신의 신앙과 무속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일은 관련없는 별개의 일로 생각하는 듯 싶고, 일부 보수 기독교계는 무속보다 차별금지법을 더 걱정하는 듯하다.

태그:#무속, #윤석열, #이재명,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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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을 하고 학교수업도 하며,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 (http://asteacher.ner)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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