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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노동안전보건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동료의 죽음에서, 누군가는 투쟁을 계기로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이하 노안활동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이하 노조)에서 역할을 요구받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중요한 건 노조에서 그 활동가의 문제의식을 키우고 함께 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일 테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라는 단어는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어렵게 다가온다. 하루에 7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늘 누군가의 죽음과 아픔을 곁에 둬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고통을 사전에 막기 위해 안전한 사업장인지 판단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법률과 각종 기술에 관한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5일, 공공운수노동조합의 사무실에서 서동훈 노동안전보건실장을 만나 노안활동가로 발걸음을 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한해 활동과 고민을 나눴다. 산재사망사고가 빈발하지만, 정작 본인의 직장에서 산재사망사고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는 멀게만 느껴진다.

각자 속한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활동가들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경험에서 격차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든, 일터의 위험을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활동가들의 역량을 조직적으로 키워가는 일의 중요성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한 계기 없어도 괜찮아요
 
공공운수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서동훈
 공공운수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서동훈
ⓒ 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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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안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노안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노안을 담당하게 된 건, 작년인 2021년부터였어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죠. 전에는 조직 담당이었어요. 현장에 있을 때는 새로 조합원이 가입하면 상담부터 교섭에 참여하고 현장의제도 취합하고 여러 일을 했었죠. 사실, 그때도 노안 문제가 크게 다뤄지지 않았어요. 보통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이 아니면 보통 노안에 대해 많이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죠. 그러다보니, 저도 노안문제를 깊이 접하거나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인사이동 시기가 와서 노안 담당자로 오게 된 것이에요. 뭐, 처음에 저는 선전실로 지원했었는데요. (웃음) 노안실은 2지망이었고요. 그런데, 노안실에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면담에서도 노안실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때 나쁘지 않다고, 손이 부족한 상황인 것도 다 아니까. 어찌 보면, 필요에 따라 한 인력으로 배치되어서 노안 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처음 와서 정말 정신없이 일했던 거 같아요."

- 처음 노안실에 와서, 딱 마주했을 때 처음에 들었던 느낌이나 인상은 무엇이었나요?
"노안실 오기 전에 노안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열사투쟁이었어요. 김용균 투쟁도 있었고, 최근에는 화물노동자 사망사고도 있었고요. 그리고 노안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게 있잖아요. 약간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얘기요. 제가 직접 느꼈다기보다는,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그런 얘기를 건네주기도 했죠. 그래서 노안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이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죠.

그런데 사실 조직을 담당하든, 선전을 담당하든 어느 영역의 업무든 자기가 일을 하다 보면, 전문성을 요구받기도 하고 그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잖아요. 그때 마주하는 벽도 있을 거고. 그리고 일하면서 점차 그 영역만의 전문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한 1년 지나고 보니, 노안 이게 특별히 더 많은 전문성이나 능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 그래도 노안을 접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건 있죠. 이건 노안 담당하는 다른 활동가들도 느끼는 걸 텐데요. 안전보건에 관련된 각종 규칙과 행정, 제도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같은 것들도요. 현장에서 누가 다치지 않는 이상, 이걸 찾아보는 일은 드물거든요. 그러니 낯설기도 하고 접할 기회도 적고 알아가려면 어렵기도 하더라고요."

한 사람의 활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으로
 
서동훈 공공운수노조 노안실장은 사업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을 높임과 동시에, 담당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동훈 공공운수노조 노안실장은 사업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을 높임과 동시에, 담당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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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해소해나가고 계세요?
"앞서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공공운수노조에 노안실이 생긴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3년 차에 접어드니까요. 전에는 노안실이 없었죠. 노동안전보건 의제는 조성애 동지 혼자서 정책실에서 담당해왔었죠. 별도로 노안을 담당할 인력을 배치하고 사업을 만들어내기가 여의치 않았던 게 현실이었어요. 그래도 최근 들어, 여러 투쟁 속에서 노안이 부각되면서 각종 활동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요.

활동 시작하고 한 번은 산재사망사고가 난 현장에 갔었는데, 사고현장이 훼손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따졌는데, 회사 측 안전담당자도 기본적인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기초적인 것부터 알지 못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하는 거구나, 거기서부터 출발해야겠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래서 올해 공공운수노조 사업목표 중 하나로 그런 걸 묶어내는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중요한 건 사업장들에서 노안에 관심을 높임과 동시에, 담당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일텐데요. 그래서 현안을 가지고 노안문제에 접근하도록 하고 고민하고 활동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한 축일 테고요. 다른 하나는 사고가 나면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파악하고 개선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겠죠.

그런 내용을 알려내서 담당자들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과 함께, 지역 단위에서 공동대응을 하고 경험도 나눌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중앙만이 아니라 지역별로 구성되게 하는 게 목표에요. 결국, 제 바람이랄까요. 최종 목표는 사업장별로도 노안담당자를 세워내는 거예요. 나아가 그들이 모여서 교류하도록 하고요.

때론 현장에서 노안문제를 현안으로 보지 않는 태도를 보이거나 노동자 간 과실로 사안이 왜곡되는 것에 대한 우려로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해요. 그에 따른 어려움을 감안하면서도 차츰 바꿔내기 위해서는 노조 내에서 노안의제를 중심으로 더 많이 교류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지역별 노안위원회 외에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원하청 공동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현장 노동자가 제일 사업장의 위험을 잘 아니까, 필요한 순간에 작업중지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그런 활동을 각 현장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함께 안전한 현장을 쟁취해가야 한다고 봐요."

- 마지막으로 노안활동 강화를 위해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저도 아직 모르는 게 많고 그래서요. 노안실 차원에서 함께 계속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데요. 역량강화 차원에서 학습모임을 조직했어요. 현재는 17명 정도 모였어요. 노조 상근자도 있고 사업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여력이 닿으면 참석하고요. 화물연대나 교육공무직본부, 쿠팡 지회 등 여러 곳에서 오셨어요. 법률원에서도 도움을 주시기로 했고요.

우선은 전에 공공운수노조에서 만들었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서로 공부를 시작했죠. 두 시간 한다고 하면, 1시간 정도는 법 내용 살펴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안전보건 교양서도 읽어요. 교양서로는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이라는 책과 한노보연 정기간행물 <일터>를 보기로 했어요. 이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려고 해요.

더불어, 노안실 사업도 점차 체계를 갖춰가려고 하는데요. 공동대응체계 구축과 학습모임 운영 외에도, 교육실과 함께 교육자료를 만들려고 해요. 조합원 대상 교육자료에 노동안전보건 파트를 넣는 것부터 시작하려고요.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교육 커리큘럼도 개발하고, 지역 순회 교육 등을 배치하는 등 연간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고민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접촉면을 넓혀나가야죠.

그리고 최근에 직장내괴롭힘을 주제로 공공운수노조 내에서 기획교육을 한 적이 있어요. 정책실과 노안실 등이 함께 직장내괴롭힘 관련 법과 현황, 대응방안과 개선과제 등을 교육한 적이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오프라인은 50명으로 제한했지만 온라인으로도 참석하셔서 120명 넘게 참석하셨어요. 이렇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현안을 발굴해 교육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향후 기획을 같이한 분들과 함께, 단협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을 넣거나 사안 발생 시 대응을 하는 등의 내용을 알려내는 매뉴얼도 업데이트하려고 해요. 이렇게 노조 내에서의 협력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제주의료원 산재 승인 건이 있었잖아요. 반올림과 태아 산재 문제로 연대했었는데요. 이런 시너지 효과를 함께 하면서 받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교육이 되었든 현장사업이 되었든 여러모로 한노보연이나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의 도움도 받고 있어서, 감사한 일이죠. 이렇게 노안의제에 관한 여러 활동가와 단체들이 모여서 시너지를 내는 활동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노보연 선전위원 박기형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시됩니다.


태그:#노동안전보건, #활동가, #공공운수노조, #노안실, #노안_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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