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뉴욕 허드슨 강 하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제작한 것으로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 발밑에는 노예 해방을 뜻하는 부서진 족쇄가 놓여 있고,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고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여신상이 입고 있는 토가는 로마 공화국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단에는 미국 작가 애머 래저러스의 시, '새로운 거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폭풍우에 시달린, 고향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 올릴 터이니.

배를 타고 뉴욕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많은 이들은 아마도 저 자유의 여신상을 보면서 이제 자유의 나라에 도착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여신으로 표현된 동상을 가장 많이 기억하겠지만, 때때로 그것이 자유를 상징하고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부당한 지배와 굴종 그리고 억압을 경험하게 되면, 그 자신의 삶이 자신이 보았던 그 여신상이 상징하는 이상들과 큰 괴리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내 이를 부당하다고 느끼고, 더 나아가 부당한 지배와 굴종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2021년 9월 18일, 내가 살고 있는 공주의 공산성 앞 연문광장에 무령왕의 동상이 세워졌다. 공주시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갱위강국선포, 즉 백제가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선포, 1500년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운 것이다.

동상의 오른손은 앞을 가리키고 있으며, 왼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무령왕의 동상은 전국 최초의 회전형 동상으로 무령왕이 바라보는 방향마다 서로 다른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서쪽을 바라볼 때는 그곳에 무령왕릉이 있고, 북쪽을 바라볼 때는 고구려를 여러 번 격파하고 갱위강국을 선포한 대왕의 위엄이 서려 있으며, 남쪽을 바라볼 때는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군주의 의미를 담고 있다." - 뉴시스, 2022년 2월 14일자

품위 있는 도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그러하듯, 무령왕의 동상은 공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곳 공주는 작은 도시가 아닌 백제라는 나라의 수도였음을, 강한 나라였음을, 당신은 이제 위엄과 인자함을 가지고 백성을 보살피는 군주, 통치자 앞에 서 있음을 말이다. 즉 무령왕의 동상은 수도, 즉 중심을, 강한 나라를, 군주의 보살핌을 상징한다.

이를 바라보면서 방문객들은 주변부보다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변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약한 나라가 아닌 강한 나라, 힘이 센 것, 즉 권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왕이 가르치는 곳을 바라보며, 무령왕의 위엄과 그의 인자함에 아래 서 있는 존재임을, 즉 신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간은 말을 한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과 무령왕의 동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 다르듯, 공간마다 다른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된다. 왜냐하면 공간이 하는 말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듣게 될 것이고 이는 이내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한 도시를 처음 방문하였는데 그 도시 입구에 "우리는 모두 지극히 소중한 존재이다"라고 쓰여져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노력한 이들의 동상을 만난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이에 비하여 한 도시를 방문하였는데, 끝없는 소비와 욕망을 자극하는 각종 유흥업소들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간판, 그리고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아닌 권력을 은연중에 숭상하는 표지들을 만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최근 도시 공간을 관광산업을 위하여 조성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명심했으면 하는 것의 하나는 도시는 단지 상업공간만이 아니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 공간이 상업만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인종, 성, 출신지역, 계급 등을 떠나 모든 이들을 소중히 대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의 정신을 보여주는 공간들로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진정으로 품위 있는 도시가 아닐까? 공간은 말을 한다.

덧붙이는 글 | 대전충남인권연대 필진 장원순 공주교육대 교수가 썼으며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대전, #도시의 공간, #무령왕 회전식 동상 , #자유의 여신상, #도시의 품위
댓글

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