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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2022년 7월 8일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위해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에서 참의원 의원 사토 게이 후보의 지원 유세 연설을 하고 있던 도중, 전직 해상자위대 자위관 출신으로 알려진 야마가미 데쓰야에 의해 피격당해 향년 6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피격당한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 국민의 심정은 다소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베 전 신조 총리는 취임 이래 한국을 동등한 주권을 가진 우방국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자국보다 하위에 속하는 믿기 어려운 국가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는 등 일본에 대한 강대강 입장을 집권기 내내 취한 바 있다. 특히 일본 측 수상관저에서 직접 결단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에 대한 경제조치가 양국관계의 결정적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베 전 총리는 재임 기간 중에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해 왔고, 일방적으로 수출을 규제했으며 대한민국의 사법체제를 부정했다. 또한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 받은 인물(범죄자)일 뿐이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편지 보낼 의향은 털끝만큼도 없으며, '종군위안부'는 지어낸 이야기이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말하는 등 일본의 침략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해 왔다.

주지하듯이,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최초의 증언을 내고 이후 여러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실상을 고발했다. 1992년 일본의 역사학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한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일본은 더 이상 '위안부' 문제가 '일본군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인식은 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이다. 이는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내각관방장관 담화' 즉, 고노 담화였다. 고노 담화는 비록 형식적이고 불충분하지만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와 관련된 기술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2013년경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한국과 중국 정부뿐 아니라 일본 내 역사학계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아베 총리는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 강제연행이 없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심지어 일본군이 전쟁 중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위안소로 강제 연행했음을 보여주는 B, C급 전범 재판자료(일명 '바타비아 재판 기록')가 2013년 공개됐고 이들 문서를 일본 법무성이 입수해 보고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으나 아베 총리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로 주목받던 시기에는 피해자의 고통을 언급하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가 2015년 한국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인정했지만, 이후 일본에서 종종 '위안부' 강제 모집을 부인하거나 성노예를 반박해왔다. 또한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5월 26일 발매된 일본 우익 성향 월간지 '하나다' 최신호(7월)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없다'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일본 국민 전체가 한국에 대해 컵이 가득 찰 만큼 참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한국 측에도 그렇게 전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베 전 총리는 고노 담화 계승을 표명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고노 담화에서 인정한 강제성을 무력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에서 10억 엔을 거출하기로 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한일합의)는 이러한 전 아베 총리의 인식과 충돌하고 아베 전 정권의 지지기반인 보수 세력의 비판을 초래했다. 아베 전 총리가 기존의 인식을 수정하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합의를 추진한 결과, '한일합의'는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영향으로 아베 전 총리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강경한 정책을 펼쳐 왔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주장해온 '한일합의' 파기 및 재협상을 아베 전 총리는 끝끝내 수정하지 않았고 지지기반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강제연행과 성노예 사실을 부정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고노 담화는 그 내용을 추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위안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실태가 어떠했는지도 여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추모해야 되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대전충남인권연대 필진 양해림 충남대 교수의 기고글입니다.


태그:#아베 신조 , #위안부 피해자, #한일 합의, #일본의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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