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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청각 장애인들은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각 장애인은 말하는 상대의 표정과 입 모양을 보며 대화(구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청각 장애인은 더 이상 구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 시대에 청각 장애인은 '소통'에 이어 '배움'의 기회마저 잃었다. 2020년 7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에서 '입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제작해 청각 장애인의 소통과 안전을 보장해달라"라는 글이 게시되었다. 청원자는 "학생들은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아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실시한 온라인 강의에는 자막이나 수어 통역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의 화면은 PPT 위주로 구성되어 강의자의 얼굴은 화면 한쪽에 작게 있거나 아예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많은 청각 장애인 학생들이 수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강을 포기하는 방안을 택해야 했다. 

청각 장애인은 지금까지 어떻게 소통했나

청각 장애인은 소리를 대신하여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이해한다. 흔히 알고 있는 구화나 뉴스 화면 등에서 함께 등장하는 수어 외에도, 소리를 모으거나 증폭시키는 기계인 보청기, 청신경을 자극하는 수술인 인공와우 이식술 등이 청각 장애인의 소통 수단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방식들이 청각 장애인의 삶에 충분한 선택권을 가져다줬을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청인 중심적, 비장애인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구화 및 수어는 외국어처럼 또 다른 언어이다. 따라서 이를 학습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언어치료사 윤희선씨가 구화 교육을 설명하고 있다.
 언어치료사 윤희선씨가 구화 교육을 설명하고 있다.
ⓒ 김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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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에게 구화를 가르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게다가 청각 장애와 지적장애가 동시에 있는 경우 자신의 혀와 입술을 인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해요."

언어치료사 윤희선(가명)씨는 구화 교육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밖에도 청각 장애인의 소통을 돕는 보조 장치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보청기는 기본적으로 정가 자체가 높은 편으로 디지털 보청기 하나의 가격은 평균 200만 원이다. 높은 가격에도 수명은 약 5년으로 매우 짧고, 그 기간마저도 이명을 듣거나 이물감을 느끼며 사용해야 한다.

인공와우 수술도 보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200만 원가량의 비용을 들여 비보험 수술을 받는다. 게다가 청신경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이들에게만 효과가 있어 청신경의 보존 형태가 좋지 않으면 수술을 받을 수 없다. 

​청각 장애인의 학습권과 속기 지원

<사이보그가 되다>의 저자인 청각 장애인 김초엽씨는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강의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보냈다고 한다. 한 장애 학생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한 김초엽씨는 '처음으로 발표자의 말을 전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초엽씨가 모든 발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속기 지원'에 있었다. 
 
속기사 김채원씨가 속기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속기사 김채원씨가 속기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 김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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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인은 수업을 보면서 동시에 필기를 할 수 없어요. 구화가 가능하다 해도 필기를 하려 고개를 숙이는 순간 강의자의 입을 못 읽게 되니까요. 강의자 옆에서 수화를 하는 방식도 있지만 수화에는 단어가 한정돼 있어요. 청각 장애인 학생에게 알린 대체 단어가 시험에선 오답으로 처리될 수 있죠. 하지만 속기로 청각 장애인을 보조하면 해석의 오류 없이 정확한 학습을 가능하게 해요."

속기사 김채원(가명)씨는 청각 장애인의 학습권을 위해 속기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모든 말을 알아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속기 지원이 할 수 있다. 강연자가 마스크를 착용했더라도, 청각 장애 학생에게 갑작스러운 이명이 오더라도 자막이 있으면 수업을 놓치지 않게 된다.

"교육 속기사 공고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마저도 계약직이에요. 그리고 교육 속기 지원 서비스가 많이 알려져야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청각 장애인과 속기사 모두에게 어려움이 있죠."
 
속기 작업 시 사용하는 속기계
 속기 작업 시 사용하는 속기계
ⓒ 김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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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씨의 말처럼 교육 속기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아 청각 장애인 본인마저도 그 존재 여부를 모르기도 한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 에이유디(청각의 유니버설 디자인-Auditory Universal Design의 약자)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는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추진하며 문자통역의 필요성을 알리고, 청각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유디의 노력에도 문자 통역 서비스의 지원은 몹시 부족하다. 

이것이 더욱 확대되기 위해선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내년 예산을 올해 본예산 대비 11.8% 증액한 108조 9918억 원으로 편성했으나, 청각 장애인을 위한 문자 통역 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탁상공론조차 없는 문자 통역에 관한 일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배움의 장소가 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속기 지원이 시행되는 것은 평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할 것이다. 

태그:#청각장애인, #학습권, #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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