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항자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 함백산 정상 만항자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 이보환

관련사진보기


꼭 한 번 가고 싶었던 만항재와 함백산 일대 운탄고도를 지난달 20일 다녀왔다. 강원도 산골이지만 이날은 유난히 볕이 따뜻했다. 높고 파란 하늘도 돋보였다. 초행길이지만 편안한 방문이었다.

정선 만항재에 주차를 한다.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이 맞닿은 곳이다. 해발 1330m 이 고개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이다. 차량에서 내리니 한겨울이다. 올라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겨울 바람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이날 목적지는 함백산이다. 만항재 주변은 하늘숲 정원과 정안 풍력발전단지, 천상의 바람길 등 요깃거리가 풍성하다. 주변의 빼어난 풍광과 볼거리에 사로잡힌 마음이 게을러진다.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지만 계획대로 함백산을 향한다. 해발 1572m 함백산은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태백의 진산이다.

만항재에서 시내버스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면 함백산 등산로가 맞아준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낙엽 쌓인 숲길은 색동옷 같다. 침엽수와 활엽수 낙엽이 알록달록 섞여 있다. 숲속에 들어서니 만항재의 겨울바람은 온데간데 없이 포근하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로 꽉 채워졌다.

힘들게 오르막길 끝까지 왔는데 올라온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내리막이다. '또 얼마나 오르려고 이렇게 내려가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을 걸어가면 반드시 그만큼 올라가야 하는 게 불변의 이치다.

두 갈래로 길이 나뉘며 표지판 역시 양방향 모두에 '등산로'라고 적혀 있다.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은 차가 지나는 도로와 연결된다. 길을 잘못 들어섰나 생각하는 찰나 앞서 가는 등산객이 보인다. 도로를 건너자, 다시 숲길이 연결된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진행한다.

숲길 곳곳에 설치된 멧돼지 기피제에서 등산객의 안전을 고려한 국립공원공단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흙길에 놓인 아담한 평상에서 숨을 돌린다. 바람에 펄럭이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으로 인한 무분별한 식물밟기, 답압은 식물 서식지의 축소, 자연 생태계 훼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출입제한 안내문이었다. 그만큼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줄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함백산에서 만행재 옆 풍력발전단지를 찍었다.멀리 내려보이는 발전시설이 작아보인다.
▲ 함백산에서 내려본 풍력발전단지 함백산에서 만행재 옆 풍력발전단지를 찍었다.멀리 내려보이는 발전시설이 작아보인다.
ⓒ 이보환

관련사진보기


이제 하늘이 가까워졌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가파른 계단이 펼쳐진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들숨과 날숨에 맞춰 발을 내딛는다. 가뿐 숨이 어느새 자리를 잡는다. 탁트인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새해 해맞이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해준다.

정상에는 고산수목인 주목과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건너편 풍력발전단지의 바람개비가 손톱만해졌다. 하늘 바다에 띄어진 조각배 같다. 암석에 둘러쌓여 있는 정상석 뒤로 높고 튼튼한 돌탑이 있다.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태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된 큰 산이다. 하지만 만항재에서 출발한 덕에 1시간 조금 지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석탄을 싣고 나르던 찻길을 선택했다. 운탄고도 1330에 포함된 명품 트레킹 코스다. 운탄고도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원의 길로 영월, 정선, 태백, 삼척 폐광지역의 점(點)을 하나의 선(線)으로 잇고 있다.

어둠 속에서 가족을 위해 석탄을 캐던 가장들이 떠올랐다. 평생 지하 세계에 살았을 그분들의 삶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지금도 강원도 충북 곳곳에는 진폐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고단했던 그 분들의 여생이 편안할 수 있도록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만항재에 도착하여 천상의 바람길 안내도를 따라 걷는다. 길 아래의 숲속은 화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정안풍력발전단지에 가까워지니 웅웅 거대한 소리가 난다. 함백산 정상에서 본 조각배는 으리으리한 함선이었다. 역시 모든 사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 차이가 크다.

겨울, 그것도 강원도 산의 저녁은 일찍 찾아온다. 빨리 걸어도 체온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지.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리며 마음속에 다짐한다. 만항재에 온갖 들꽃이 활짝 피어오를 때 다시 오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태그:#제천단양뉴스, #이보환, #걷기좋은길, #만항재, #함백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청권 신문에서 25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다짐합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