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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조세정책)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조세정책)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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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언론에 대한 자본의 압력은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다."
 

1991년 9월 6일, 갑작스레 경질된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은 환송회에서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한 권력은 자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의 연대'를 부탁했다. '김중배 선언'이 있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 언론은 '자본권력'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가.

지금 자본과 노동이 맞부딪히는 전선 중 하나는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부자감세'다. 자본은 부자 감세를 위한 총력전 태세다.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협조자는 언론이다. 특히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은 '자본'을 위해 앞장서서 여론을 형성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론'은 자본과 노동의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다.

지난 10월 5일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을 부자로 보는 프레임, 그 인식부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경제가 어렵고 기업 활력 제고가 필요한 이때 기업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 수단 중 하나가 법인세 인하"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은 영국 트러스 신임 총리의 '부자 감세' 정책과 닮은꼴이다. 영국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일 1972년 이후 최대 규모인 연간 약 72조 원의 감세안을 발표한 지 열흘 만에 '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는 지난 10월 4일 B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복지 정책 축소까지 시사하며 '부자 감세' 정책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낙수효과' 주장한 KDI 보고서... MBC가 확인해보니, '자기 복제' 의심

영국의 부자 감세 정책이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겪으며 세계적 고립을 겪자 정작 바빠진 것은 한국이다. 가장 먼저 총대를 멘 곳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학수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월 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한국의 법인세율이 '동학개미(개인투자자)'와 근로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김 연구위원은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리면 투자와 취업자 수가 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대해 "정치적으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면서 "법인세 감세가 일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했다.

대기업과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들에게 KDI 김학수 연구위원의 보고서는 '오랜 가뭄의 단비'가 됐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김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을 거론하며 국책연구원인 KDI가 법인세 인하를 옹호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감세정책의 낙수효과는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며 거들고 나선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25%→22%)한 10년 뒤 법인세수가 82% 급증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 KDI 보고서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둘째 날,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하면 구체적으로 얼마의 기업투자가 활성화되고 얼마의 일자리가 창출될지 예측치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자신 있게 KDI 보고서를 인용했다. 그는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KDI 등의 보고서를 인용하는 거다. KDI 연구 결과에 의하면 3%p의 최고세율 인하는 단기적으로 0.6%, 중장기적으로는 약 3.4%의 경제성장 효과와 세수 증대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경향신문은 이와 관련한 보도에서, KDI 보고서를 가리켜 "국감용 '방탄보고서' 또는 정권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최근 감세 철회로 돌아선 영국 사례를 감안할 때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유럽의 경제학술지인 '유럽경제리뷰' 8월호에 실린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라는 논문을 소개하면서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적으로 '0'에 수렴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두 신문의 외로운 '전쟁'에 힘을 보탠 것은 '공영방송 MBC'다. MBC는 지난 5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들의 법인세를 깎아준 이후 국세 수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봤더니, 법인세가 줄어든 빈자리를 월급쟁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가 메꾼 것으로 나타났다"고 단독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전체 세금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3%에서 2021년에는 20%로 줄었다. 반면에 근로소득세 비중은 2008년 9%에서 2021년에는 13%로 늘었다.

MBC는 "기업 수익이 늘어나면 주주 배당금이 늘어나니까 길게 보면 모든 국민을 위한 거라는 새로운 논리도 등장했다"며 KDI의 보고서를 언급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전체 배당 소득의 63%가 상위 1%한테 가요. 결국 법인세를 낮춰 준 혜택은, 상위 1% 사람한테 귀속된다는 거잖아요"라고 말해 KDI의 보고서를 반박했다.

언론의 가장 큰 힘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MBC는 한 발 더 나가 KDI 보고서를 팩트체크했다. MBC는 9일 '"법인세 깎으면 경제 살아난다"는 KDI 보고서, 사실은…' 보도에서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로 경제가 약 3.4% 성장한다"는 KDI 보고서의 전망치에 대한 근거를 찾아 나섰다.

MBC는 이 보고서의 근거가 2017년 한국경제포럼 제10권에 수록된 '새 정부의 법인세율 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논문이라며, 이 논문의 작성자는 'KDI보고서'를 작성한 '김학수'와 동일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17년 논문에서 인용한 근거도 2015년 동일한 저자의 '미발간 원고'에서 가져왔다고 짚었다.

MBC 이덕영 기자는 위 기사를 통해 "학계에 발표하지 못한 본인의 논문을 근거로 다른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근거로 KDI 보고서에서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고 주장한 것"라며 해당 학자의 '자기 복제' 의혹을 제기했다.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는 없다'는 주장은 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10월 7일자). 중앙일보 정재홍 기자는 '현실 외면한 정책의 대가'에서 "대처 전 총리의 감세에 따른 경제 성장효과는 비슷한 시기 높은 세금을 유지했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차이가 없었다"며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낙수 이론을 '좀비이론'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현실 적합성이 없어 사라져야 할 이론임에도 좀비처럼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론, 주장나열만 할 게 아니라 사실확인 나서야 

하지만 '좀비이론'에 기댄 언론이 있는 한 '좀비이론'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합뉴스는 10월11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2022년 세제 개편안 평가 및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법인세율이 3.3%p 인하되면 총투자가 49조 537억 원 늘어나 GDP는 2023년 2.1% 증가하고, 10년간 연평균 1.4% 성장하고, 가구당 근로소득 역시 연평균 62~80만 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합뉴스의 보도에는 한경연의 주장만 존재할 뿐, 사실 확인은 없었다. 그저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쓰기 할 뿐이다.

'김중배 선언'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 언론은 자본의 압력에서 자유로울까?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지난 2021년 9월 <뉴스타파>와 한 인터뷰에서 "자본의 지배는 이제 타율적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언론 앞에 새롭게 다가온 자본권력에 대응하는 것은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언론인 스스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을 강조했다.

'가짜뉴스'의 진원지라며 윤석열 정부의 집중공격을 받는 MBC, 스스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공영방송 MBC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 소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언론콕!'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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