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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오래된 책장을 버리고 온 까닭에 새 책장이 필요해서 쇼핑몰 제품들을 훑어보니  4단, 5단 높은 책장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바라는 낮은 책장은 마음에 드는 제품이 보이지 않아서 고민 중이었는데 동네 마실길에 가구 공방 하나를 발견해서 책장을 맞췄다. 

기성 제품보다 가격대가 있긴 했지만 딱 내가 원하는 나무를 골라, 내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맞출 수 있어 완성된 책장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손재주가 없어서 마음만 굴뚝같지 목공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는 내게 목공 강좌를 진행하면서 공방을 운영하는 주인장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포근하고 깔끔한 공방과 늘 편안해 보이는 목수님의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수다 의뢰를 드렸더니 흔쾌히 응하셨다.
 
모카의 작업실 김연수 목수
 모카의 작업실 김연수 목수
ⓒ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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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20대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학창 시절에는 콩쿠르에 출전해서 수상할 만큼 잘했어요.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유아교육과 진학을 생각했을 만큼 아이들 가르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결혼하고 잠깐 전업주부로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좀 커서 영어 과외를 시작했었는데 아이들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일이 많이 들어와서 바쁘게 생활했습니다."

- 가구 제작은 언제 시작하신 건가요?  
"대학 시절 복수 전공으로 건축을 하고 싶을 만큼 설계나 도면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서 시작은 못했어요. 결혼하고, 주부가 되다 보니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마음들이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정리되더라고요. 결혼 초반 남편 직장 때문에 포항에서 6년 동안 생활하게 되었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갑자기 뚝 떨어져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다 보니 외롭고 우울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 받아서 부천으로 이사를 하면서 가까운 가구 공방을 찾아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 취미로 시작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공방을 차리셨나요?  
"처음에는 제가 집에서 쓸만한 가구를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친구와 지인들이 예쁘다고 만들어줄 수 없냐고 하셔서 하나 둘 만들어 드렸어요. 그러다가 지인 한 분이 옥션에서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시험 삼아 시작했는데 제법 팔리더라고요. 

그렇게 소규모로 제작을 하다가 2008년 즈음 일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공방을 열게 되었고, 목공 클래스도 진행했는데 수강생들이 꽤 찾아와서 보람 있었습니다. 20대 시절부터 인생 계획을 세워놓은 게 있는데 40세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였어요. 38살에 꿈을 이루게 된 셈입니다."
 
접시 정리대를 제작하는 김연수 목수
 접시 정리대를 제작하는 김연수 목수
ⓒ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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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백 기간이 좀 있으셨다면서요?
"남편이 브라질 근무를 하게 돼서 온 식구가 함께 가서 4년 정도 있었어요. 2014년이었는데 저희 가족이 떠나기 직전에 세월호 사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우리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라 피해 학생들과 부모들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고,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러다가 바로 브라질 포르탈레자로 떠나게 되었고, 다 잊고 무조건 바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지 대학에서 진행하는 포르투갈어 수업도 듣고, 커피의 본고장이니 커피 강좌를 들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현지 한인 분들께 바느질 수업도 진행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 돌아와서 다시 가구 공방을 시작하신거군요?
"저는 일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편이어서 2018년 즈음 귀국했는데 바로 공방 자리를 알아봐서 지금 이곳에 열게 되었어요.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 같아요. 판매를 위해 시작한 건 아닌데 제작한 가구 사진과 간단한 제작 후기를 올리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질문도 하고, 구입이나 제작 의뢰도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SNS가 손님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 오랫 동안 공방을 운영하셨으니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수강생도 있으실 것 같은데…
"브라질 가기 전에 배우기 시작해서 여전히 배우는 10년 넘은 수강생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목공 수업 수강생 중 90%가 여자분들인데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의 시간을 갖기 위한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그래서 제 방식을 권장하지만 간혹 본인 고집대로 하는 분들도 있어요. 위험이 따르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능한 수강생들 스타일대로 작업하는 방식은 존중해드립니다.

간혹 남자 수강생들의 경우는 배우려는 마음보다 본인들 방식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잘 따라오는 편입니다. 공방 초창기부터 꾸준히 주문해주시는 부산에 계신 퇴직 선생님께서 가구 받으시면 덕담과 함께 제품에 대한 평가도 잘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싱크대 제작이 가능할 정도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구와 카페 가구도 제작이 가능하다.
 싱크대 제작이 가능할 정도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구와 카페 가구도 제작이 가능하다.
ⓒ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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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가구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정해진 것 없는 가구라고 할까. 유행하는 가구를 모방하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이 담긴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손님이 의뢰하신 가구를 제작하면서도 계속 배우고 있어서 무궁무진한 즐거움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직업 만족도는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제가 만드는 가구를 사용하면서 손님이 피드백을 해주시면 더 좋은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가구를 통한 소통'을 한달까요. 지금도 만족스럽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태그:#일산, #가구 공방, #모카의작업실, #원데이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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