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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사는 이야기가 없네."

갑작스러운 친구의 말이다. 친구는 나의 근황을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다. 1년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글을 쓰면서,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봐 하고 말했었다. 마치 명함처럼 그 한 마디면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땐 그랬다. 그러니까 안부를 묻지 말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라고 했었다. 오마이뉴스에 내 근황이 적절한 시기마다 나와줬기 때문이다.   
   
처음엔 기사로 채택되는 게 기뻐서 은근히 자랑도 했다. "내가 글 써서 돈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 하면서 목소리 깔고 별거 아닌 듯 으스대는 척 말했었다. 속으론 엄청 좋으면서 티 내면 가벼워 보일까 주머니에 돌 두 개 넣은 거처럼 무게 있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던 친구였다.       

내 기사가 인터넷 포털 메인에 떴을 때는 신기해서 명절날 모인 가족들에게도 자랑했다. 그리곤 기사 말미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들을 보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악플도 가족과 함께 볼 때면 그저 재밌기만 한 화젯거리였다.

조카가 등장한 기사를 공유했을 때는 "기사 너무 좋아"라며 애정 어린 응원을 보냈다. 적극적인 기사 제보 활동도 했다. 물론, 편집기자처럼 내손에서 커트 됐지만. 한동안 시민기자 활동은 활력소였다. 백수 인생을 밝혀준 구원자이자 지탱해 준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든 기사로 채택되면 내 글쓰기를 믿었다. 아니 오마이뉴스의 편집기자를 믿었다. 그렇게 내 글쓰기 좌표는 오마이뉴스였다. 

"죽었니? 왜 사는 이야기가 없어 요즘은 아무것도 없대." 친구가 재차 묻는다. "뭐야 너 그거 계속 보고 있었어?" 대부분 처음에만 반짝하지 꾸준히 관심 갖고 볼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다.

"그러게 살고는 있는데 사는 이야기가 없어.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닌가 봐. 기사로 채택되는 게 쉬운 건 아냐... 어렵다. 서너 개 쓰면 한 개 채택될까 말까야. 기사로 나오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마. 아무거나 채택되는 거 아니니까. 갈수록 어려워. 쉬워져야 하는데." 친구에게 한 말이지만 나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쉬워져야 한다. 학습 효과도 있으니 시행착오를 따로 겪을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초보였던 지난해보다 채택률이 적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1년 동안 기사로 채택된 사는 이야기를 다시 훑어 보았다. 새록새록하다.

부족했던 부분도 보이지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삶의 흔적들을 보니 꽤나 움직이며 살았던 거 같다. 지금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다시 올해의 그 시점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이 가득했다. 지난해를 재방송할 수는 없다. 새로운 1년을 계획해야 한다. 목표란 의미 없는 거라고 외쳐 됐던 내가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나 아직 살아있다고.      

올해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새삼스럽다. 새삼스러운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자판기처럼 답을 툭 내놨다. 기사 쓰는 거. 매일 한 개. 한 달에 30개. 매일 숨 쉬듯 살아가고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진짜 기자처럼. 기자가 직업인 거처럼 매일 기사를 쓰자. 그게 내 목표. 그게 정상 아니야? 기사를 쓰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되지 않을까. 가능할 거 같은데. 두서없는 말들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그래, 꼭 이루길 바라." 친구는 나의 허세에도 진지하게 덕담을 해주었다. "그런데 뭔가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어떤 일이 발생해야 하잖아. 특별한 듯 평범하고, 평범한 듯 특별한. 삶의 지혜를 공유하며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거고. 사는 이야기 보니까 대부분 그렇던데."

글이라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친구 입에서 의외의 문장이 나와서 좀 놀랐다. 그래 맞아. 그런데 그게 잘 안돼. 알면서도 못하는 심정. 누가 알까. 지금까지 하루 한 개는커녕 한 달에 한 개도 힘들어. 글이 길을 잃었어. 완전히. 계절처럼 마음도 겨울이야.

이제 봄이거든. 취미를 좀 가져 봐. 놀러도 가고. 뭔가 마구 저질러 봐. 아님 진짜 기자처럼 취재를 다니던지. 하루종일 집에만 있지 말고.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지만 친구의 그런 말들이 괜히 뜨악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마치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러나 다시 돌이켜 봤을 때 그 말은 맞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아무일 없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 노력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영양가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궁금해할 내용이 전혀 없는.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재료로 글 쓰는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다. 고수가 아닌 이상 나의 사는 이야기는 무언가가 발생해야만 완성되는 서사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발생할 무언가가 없었다.

내 근황을 뉴스로 전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라고 핑계 대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관점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마저 하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가 없으니 사는 게 아니었다. 놓아버리기엔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친구가 있음을 잊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친구. '목표를 꼭 이루길 바라' 으레 하는 인사말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내 마음속 깊이 '쿵' 하고 와닿았다. 목표가 이루어질 것 같은 마법의 주문처럼 들렸다.
     
내가 정한 목표처럼 삶이란 하루가 돌고 도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 안에서 꿰어지는 것들을 엮어야 한다. 오로지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뿐이다. 그렇게 촘촘히 엮어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는 단 하나의 이유.  나의 사는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태그:#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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