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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기자말]
활동성단층 위의 원전

"2016~2021년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이하 신고리5·6호기 취소소송)할 때 주요쟁점이 지진 문제였어요. 신고리 5·6호기 부지 인근에 원전 내진설계에 반영해야 할 활동성단층들이 있는데 반영되지 않아서 위법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을 2023년 3월 초 <한겨레>에서 크게 보도했더라고요."

지난 3월 10일 시민방송 더탐사 '원자력 X파일'에 출연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아래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가 월성, 고리 원전 인근에 존재하는 활성단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간다. 탈핵 전문변호사가 지질학자보다 더 쉽고 자세히 지진에 설명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이 있다.

지난 3월 2일 <한겨레>는 '활성단층 위에 지어진 원전, 내진 보강이 필요하다', '[단독] 고리·월성 16개 원전 설계 때 '지진 우려 단층' 고려 안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고리·월성원전 인근에 '설계 때 고려했어야 하는 설계고려단층이 5개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밝혀진 활성단층은 울산 삼남읍 상천·방기·신화리의 삼남분절(2.0~10.5㎞), 경주 암곡동 왕산분절(2.1~5.9㎞), 울산 북구 창평동 차일분절(2.8~4.2㎞), 경주 외동읍 말방·활성리 말방분절(3.5~4.3㎞), 경주 천군동 천군분절(2.0~4.0㎞) 등 5개다. 차일분절은 월성원전까지 불과 12㎞로 원전과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천군·왕산·말방분절은 월성원전 반경 13~21㎞, 삼남분절은 고리원전 반경 26㎞ 안에 위치한다. 5개 모두 30km 비상계획구역 안에 존재했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커 짓지 말아야 할 곳에 원전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한겨레> 기사는 지난 1월 행안부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누리집에 올린 '한반도 단층 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최종 보고서를 근거로 삼았다.

박근혜 정권 당시 지진 관측 이래 최대규모였던 2015년 규모 5.8 경주지진 이후 행정안전부(아래 행안부)가 2017년 발주한 5년여의 연구보고서에서는 한반도 동남권(경남·북, 부산, 울산)에서만 14개 '활성단층 분절'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미 지난해 말 보고서가 나왔지만 원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여야 할 윤석열 정부는 달갑지 않은 보고서를 관련 기관 누리집에 올린 것으로 150억 원짜리 연구 결과가 잊히길 바랐을 것이다.

원자력 이용에 따른 안전관리에 필요한 대책 등을 마련하는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아래 원안위)는 50만 년 이내에 2차례 이상 또는 3만5천 년 이내에 1차례 이상 움직인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원전 반경 32㎞ 안에 위치하면서 길이가 1.6㎞를 넘거나 반경 80㎞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8㎞ 이상인 경우 '설계고려단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활동성단층은 고리, 월성 16개 원전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규정대로라면 원안위는 원전건설 허가를 내 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연구자료가 아니어도 지질연구자료를 조금만 살펴봤어도 170km에 이르는 거대한 양산단층과 40km의 울산단층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희 변호사는 두 기관 모두 위법을 저질렀으니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에 따른 법적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더탐사 '원자력X파일' 진행자 이정윤(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원안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방송 내내 분통을 터뜨리며 김영희 변호사에게 묻는다.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 때 활성단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그럼요. 이번 행안부 용역결과가 아니라도 지질, 지진관련 자료들에서 이미 확인했었어요. 재판부가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뿐이죠."


김영희 변호사는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 당시 "활성단층과 지진, 인구밀도 제한 기준 위반이면 신고리 5·6호기만 문제가 아니라 모든 원전이 다 문제이지 않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신규발전소인 신고리 5·6호기다"라고 답했다.

당시 재판부가 사정판결(처분이나 재결이 법에 어긋나지만 그 취소가 공익에 심한 장애를 줄 경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린 배경에는 '만일 신고리 5·6호기가 지진 위험과 인구밀도 제한 기준 위반으로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리면 고리 원전 10기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라는 우려가 컸던 것 같다. 정의와 상식을 잃은 판결임이 틀림없다.

땅이 운다  
 
 법으로 탈핵하는 김영희 변호사
  법으로 탈핵하는 김영희 변호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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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변호사를 만나러 2월 중순 일요일 오후 그의 집을 찾았다. 사회연결망(SNS)에 매일 평균 두세 개씩 올리는 지진, 탈핵, 기후위기, 사법정의 기사들 틈에 끼어든 피아노 이야기며, 반려식물, 요리와 아들, 조카 이야기들까지 탐독한 덕인지 오랜 친구 집 같다. 2월 중순 맵싸한 겨울 추위가 뒷 끝을 보여도 낮 기온은 웃옷을 벗길 태세다. 해가 떠 있는 내내 볕으로 가득한 거실 중앙에 놓인 피아노와 반려 식물들을 둘러보다 '법으로 탈핵하는' 김영희 변호사가 지진에 천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지진으로부터 시작했잖아요.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큰 규모의 지진이 많았는데 이를 반영한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고작 (지반가속도) 0.2g~0.3g예요. 0.3g 내진설계로 규모 7.0 지진에 대비할 수 없어요. 규모 7.0수준의 내진설계를 강화했다고 하면서 지반가속도 0.3g를 기준으로 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에요. 눈속임이죠."

언론보도에 대해 해당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아래 산자부)는 3월 3일 공고를 통해 신고리 3~6호기 4기 및 신한울 1·2호기까지 총 6기에 규모 7.0 (지반가속도 0.3g) 기준으로 내진설계를 강화했다고 반박했다. 행안부 조사에서 발견된 5개 활동성 단층에 대해 한수원은 지진 안전성을 자체 평가한 결과 안전성이 확인되었으며, 향후 원안위 적합성 심사를 거쳐 보완이 필요한 경우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전에 준공한 가동 원전 22개 호기도 모두 6.5 이상으로 내진설계를 보완하였고, 특히 핵심 설비에 대해서는 7.0 수준으로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규모 7.0 지진에 대한 내진설계의 핵심은 최대지반가속도 '0.3g'로 충분한가이다. 단층, 토질상태, 발전소 위치 등에 따라 원전에 가해지는 최대지반가속도가 다르다. 최대지반가속도 0.3g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강화된 일본의 내진설계기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산자부 반박 공문은 아이러니하게도 활성단층 위에 줄줄이 지어진 22기의 원전의 내진설계가 한참 부족하다는 점을 자인한 꼴이다.

"우리나라가 기계로 지진을 측정하기 시작한 건 1978년도예요. 1905년에 일본 사람이 처음 지진을 관측했는데 그 전 지진 기록을 역사기록이라고 해요.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과거에 우리나라에 큰 지진이 많이 있었어요.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기록된 한반도 지진이 2161회나 되고요, 그중 진도 V(수정 메르칼리 진도계급 중 하나) 이상의 지진이 440회나 돼요. 특히 삼국사기에는 경주에서 규모 6.0~6.9 상당 지진이 10번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어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지진은 조선 인조 때 1643년에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6.8에서 7.0 사이의 지진이에요. 고리원전과 가깝죠."

김영희 변호사는 지진 주기가 있는데 15~6세기 지진이 많았던 우리나라가 지진이 올 주기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김영희 변호사뿐 아니라 학자, 전문가 등도 동일본 대지진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한반도 지질 환경이 불안정해졌고, 이 때문에 지진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최근 발생한 튀르키에 강진처럼 갑자기 대규모 지진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역사지진과 각종 지질연구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 한반도는 수백 킬로미터 배관과 7200km 케이블이 뻗어있는 원전 아래 대형지진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본다. 

"월성원전은 경주지역이 역사지진이 많아 위험한데다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2·3·4호기가 특히 더 지진에 취약해요. 폐로 된 월성1호기도 '사용후핵연료'가 수조에 그대로 있어요. 월성원전의 경우 원자로가 '가압형 중수로'라고 해서 핵폐기물이 더 많이 나오고 원자로 자체가 지진에 취약한 구조예요. 가동 중인 월성 2·3·4호기에는 380개의 원자로(압력관)이 가로로 누워있어요. 세로로 서 있는 경수로 원자로보다 380개 원자로가 가로로 누워있는 월성 2·3·4호가 지진이 오면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더 위험하죠."

김영희 변호사는 중수로 원자로의 내진 강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380개 원자로 두께를 다 높여야 하는데 사실상 새로 설치해야 해서 경제성이 없다고 한다. 원전은 '싸고 경제적이다'라는 것이 45년 동안 국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뇐 말인데 경제성에서 뒤집히면 원전 입지가 좁아진다. 2016년 6월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와 정의당 초청으로 한국에 온 지진전문가이면서 탈핵 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경주지진은 '하늘의 경고'라고 말한다.

"경주 지진은 내륙형 직하지진이다. 일본은 95년 고베 지진과 후쿠시마 지진을 계기로 원전 내진 기준을 최대 2.34g로 높였다. 최대지반가속도가 1g를 넘으면 지상의 물체는 허공에 떠버린다. 원전이 직하지진에 직격탄을 맞으면 내진설계와 상관없이 붕괴된다."

2016년 9월 12일 월성원전에서 겨우 27km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난 규모 5.1, 5.8 경주지진은 먼 바다가 아닌 내륙에서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월성 원자로 6기 중 4기가 멈췄지만 4기 가동을 멈추는 데 4시간이나 걸렸다. 히로세 다카시는 가장 무서운 '내륙형직하지진'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적은 것을 "천만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요행이 언제까지 우리 편이 되어줄지 모를 일이다.

"핵발전소는 원자력안전법령에 따라 새로운 호기를 건설할 때마다 건설허가 단계에서 부지조사를 해야 하고, 지진 지질조사를 엄밀하게 해야 해요. 부지선정단계에서도 지진 위험 관련하여 부지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죠. 소송 과정에서 지진 문제로 치열하게 다투었음에도 한수원과 원안위는 '신고리 5·6호기 소송단'의 주장을 부인하고 묵살했어요. 지금이라도 한수원과 정부는 용역 결과를 반영해 내진설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경제성이나 기술적 문제 등으로 내진설계 반영이 어렵다면 고리, 월성원전은 모두 폐쇄해야 해요."

후쿠시마 핵사고 수습 비용이 2천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도 나온다. 폐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도 2041년에서 2051년 사이에 완료될 전망이다. 수습만 30~40년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다. 추정과 예상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수습에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기간도 장담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지진의 경고를 제대로 알아들은 이들은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김영희 변호사 또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날들이 늘고 있다.

태풍 앞의 원전

"현실적으로 더 무서운 건 태풍이에요. 지진은 안 일어났으면 하는 요행이라도 바랄 수 있지만, 태풍은 매년 서너 차례 이상 겪고 있는 자연재해예요."

발생빈도에 있어 태풍이 지진보다 원전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핵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기후위기로 폭우가 잦고, 바람도 거세졌다. 태풍은 점점 더 강해질 기세다.

"2020년 9월에 발생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영향으로 우리나라 원전 8개(고리1·2·3·4, 신고리1·2, 월성2·3)가 발전소 외부전원이 상실되거나 터빈이 정지한 사례들이 있었어요. 전원을 제대로 컨트롤 못하면 중대 사고로 이어지잖아요. 지금 기후위기로 더 태풍이 잦아지고 더 강해져요. 갑자기 폭우도 많이 내리고요.

바람이 세지면서 파도가 높아지잖아요. 그게 문제예요. 고리원전 같은 경우는 고리 해안 방벽이 있는데 방벽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와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높은 파도를 경험하지 않았었죠. 지난해 여름 힌남노 태풍이 왔을 때 제주도에서 30m가 넘는 파도가 관측됐어요. 고리원전 해안 방벽은 10m인데 10m가 넘는 파도가 실제로 얼마든지 올 수 있어요. 후쿠시마 사고 때처럼 파도가 방벽을 넘어 건물을 덮치면 기계가 물에 잠기거나 젖어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한순간에 15m 파도가 오면 원전까지 덮쳐 침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원전에 전기를 공급해야 할 전원시설이 끊겨 전기공급이 안 되면 냉각수 공급에 문제가 생겨요. 냉각수로 원자로를 식힐 수 없으면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멜트다운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게 바로 후쿠시마 사고예요."


지진보다 태풍의 위협은 원전사고 가능성을 더욱 현실화한다. 기후위기 시대 원전은 태풍과 호우, 산불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태풍이나 호우로 이미 원전이 25차례 가동을 중단했고 바다 수온 상승으로 유입된 해양생물이 원전 배수구를 막은 탓에 가동을 멈춘 사례도 무려 8번이다.

지난해 삼척과 동해의 큰 산불은 울진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해 모두의 가슴을 졸였다. 지난여름 유럽에 닥친 폭염과 가뭄은 원전 강국 프랑스 원전의 절반을 멈춰 세웠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대안은 핵발전이 아니다. 그러니 싸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하루라도 빨리 갈아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연재됩니다.


태그:#탈핵변호사, #해바라기, #탈핵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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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연결된 삶을 그리며 오늘도 바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광에 22년 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빠른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생태와 자연, 젠더와 영성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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