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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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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사건위임계약서에는 없는 문항이라 물어보는데요. 만약 국가를 상대로 패소하면 패소비용은 제가 부담하나요?"

20만 원가량의 인지대와 송달료 납부도 걱정했던 소송 당사자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패소하게 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줘야 하니 말이다.

소장을 접수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린 공익소송. 패소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시작했기에 여기서 그만두시면 어쩌나, 나도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공익소송에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패소자 비용부담의 원칙'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패소자 소송비용 부담의 부적절 사례들

소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 장애인들은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으로 2015년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노동 착취를 눈감아 주고 장애인들을 방기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패소로 인해 피해 장애인들은 신안군청이 지출한 변호사수임료 등 약 690여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 신안군청은 위 소송비용을 청구하기까지 했다. 이후 시민사회의 규탄 및 청구 철회 요청으로 신안군은 추심을 포기했다.

2019년 7월 장애인 단체는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어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 원고 1명당 500만 원씩 변호사 보수 전액을 지불할 위험에 처했다. 이에 지난 7월 장애인 및 공익변호사 단체들은 민사소송법의 위헌성을 다투기 위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최근엔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대법원에서 성희롱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도, 2차 가해에 대한 청구가 일부 기각돼 위자료 300만 원보다 더 큰 소송비용 380만 원을 물어줘야 할 상황이다.

필자가 일하는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소송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뢰한 뇌병변 장애인 임태욱씨의 사례도 있다. 임씨는 2016년 평택대학교 재학 당시 수차례 시내버스 승차를 거부당했다. 또 휠체어 승강 설비를 이용하지 못한 채 위험하게 버스에 승차해야 했다.

이에 임씨는 버스회사들을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손해배상과 차별 시정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평택시장을 상대로 버스회사들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고 감독하라는 취지의 차별구제 조치를 함께 청구했다.

법원은 버스업체 3곳에 각각 100만 원씩 배상하고, 기사들에게 장애인 탑승 관련 교육을 실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평택시가 소홀했던 부분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평택시 관련 청구는 기각했다. 그러자 소송에서 졌으니 소송비용 826만 원을 내라는 평택시의 청구서가 날라왔다. 버스회사에서 받는 배상금의 3배 가까운 돈을 평택시에 내게 된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98조(소송비용부담의 원칙)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
제99조(원칙에 대한 예외) 법원은 사정에 따라 승소한 당사자로 하여금 그 권리를 늘리거나 지키는 데 필요하지 아니한 행위로 말미암은 소송비용 또는 상대방의 권리를 늘리거나 지키는 데 필요한 행위로 말미암은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부담하게 할 수 있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패소한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장애인 차별구제소송과 같은 '공익소송'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러나 경제력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에게 패소 시 과도한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재판청구권을 크게 제약한다. 특히 "공익소송은 일단 지고 시작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있을 정도로 패소의 위험성이 크다. 사회적 약자가 소송 상대방인 권력집단에 비해 입증자료의 확보나 변호사 선임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애초 '남소방지'가 목적인 '패소자부담원칙'이 공익소송의 걸림돌이 되는 실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4년이 지났음에도 차별구제소송이 20여 건에 불과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불확실하다. UN CRPD(유엔 장애인권리협약)는 2014년에 장애인 차별 피해자들의 사법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송비용을 면제하거나 감경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공익소송적 성격"이라는 말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본 소송은 장애인이 차별적 처우를 받았음을 주장하는 '공익소송적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점,
재판부에 의해 소송구조까지 이루어진 점, 소송의 경과 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이 결정함
서울행정법원 2022. 12. 2. 선고 2021구합89381

위는 현행 법제 하에서 법관의 재량에 따라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도록 한, 아마 최초의 판결일 것이다. 위 판결은 우리나라 최초의 발달장애인도 읽을 수 있는 이지리드(easy-read) 방식의 판결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관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12월 5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된 차별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제기된 소송의 경우, 소송의 공익성 등을 고려해 소송비용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앞서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6월 8일 공익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패소한 경우 소송비용을 면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경기에서 진 사람이 상대방의 훈련비용까지 물어주는건 너무한 것이 아닐까? 진 것도 서러운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임한결 기자(변호사)는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의 구성원이자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상근변호사로 장애인권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 #소송비용, #공익소송,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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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공익전담변호사. 경기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에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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