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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고 했다. '도'라는 조사에 주목해 보자. 학교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교사와 함께 학교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가 학생이니, 학생들이 학교를 두려워하고, 교사도 학교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서 제목을 이렇게 짓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학교를 구성하는 두 핵심 주체 모두가 학교를 두려워한다는 뼈 아픈 지적이다.
 
엄기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표지입니다.
 엄기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표지입니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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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보이고 있는 학교 모습은 2013년, 그러니까 꼭 10년 전 학교의 모습이다. 지금의 학교 모습과 견주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교사들이. 그러면서 학교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쓴이는 학교가 위기에 처해 있고, 모두가 개탄하는 곳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계몽의 기구로서, 사회적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서 학교의 역할은 지난 20여 년 동안 거의 완전히 무너졌다. …… 점차 학교는 살아가기 위한 배움과는 멀어지고 공동화되고 있다. …… 사회적 신분 상승의 역할도 끝났다. …… 학교는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 지식 습득의 장으로서도, 계몽의 공간으로서도,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도,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곳으로서의 의미도 상실한 학교는, 나아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폭넓은 경험을 하는 '성장의 공간', '삶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상실하고 있다. -22쪽~25쪽에서 발췌

 
학교의 모습이 정녕 이렇다면, 과연 학교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그 어떤 쓸모도 찾아볼 수 없으니, 학교가 인간 사회에 별 필요가 없을 듯하다. 10년 전, 글쓴이의 학교에 대한 진단은 지금도 유효한가? 학교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한 명의 교사로서, 글쓴이의 생각에 백 퍼센트 동의하진 않지만 상당 부분 공감한다.

10년 전 학교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한 것인데, 지금 학교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동안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학교가 그런 지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했다는 이야기이다. 왜 그랬을까? 글쓴이의 말을 들어 보자.
 
모두가 냉소하는 시대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서 이미 그것이 실패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원인도 결과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곳이 학교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에 때문에 시도도 하지 않고,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가 진짜 결과가 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냉소하기만 할 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30쪽에서 발췌

 
정말 시쳇말로 뼈를 때리는 지적이다. 나한테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내가 그랬고 내 주위에 있는 착하고, 사람 좋고, 아이들 위할 줄 알고,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수많은 교사들이 그랬던 듯싶다. 그러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아무 일 없는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겠는가. 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학교의 모습을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글쓴이도 그 점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여전히 학생들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하려다 고통받고 있는 몇몇 교사를 만났다. 이들은 여전히 둥글게 모여 앉아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교육 현장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 이들은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데 있어서는 열심이다. 이들은 지역의 대학과 연결하여 학생들을 위한 강좌를 만들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가급적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외부 강사를 학교에 초대해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를 만든다. ……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이들은 학교 안에서 딜레마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 그렇다 보니 이들은 지금의 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며 특히 업무와 입시 교육에 충실한 다른 교사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있었다. -30~32쪽에서 발췌

 
글쓴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딜레마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교사들은 교육에 대한 진정한 열정으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던 교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학교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들에게도 외면당하고 만다. 학교(특히 일반계 고등학교)는 이미 교육의 이상이나 본질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입시에서의 성공을 제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곳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 안에서 그들의 생각을 펼치려는 생각을 접고,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학교 안에는 점점 쓸 만한 교육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어떤 교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교육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현재 학교에서 수업 이외의 다양한 교육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활동이 교육의 본질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다. 거의 모든 활동이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다. 그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무엇을 기재할 것인가에 온 힘을 집중한다. 만일 어떤 활동을 계획했는데, 그 활동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에 크게 영양가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활동을 곧잘 폐기되곤 한다.

이런 이유로 교육의 본질 또는 이상을 추구하려는 교사들은 자신의 관심과 열정을 학교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런 교사들이 학교 안 문제에 관심을 줄이자, 소위 '벌떡 교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글쓴이는 이 현상을 '벌떡 교사의 멸종'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상적인 교무실은 한 교사가 교실에서 경험한 사적인 고민과 생각을 공통의 고민으로 전환하면서 우리 시대의 교육에 대해 사유하고 토론하는 공간이다. …… 교무실이 공적인 공간이 된다는 말은, 사적인 토론이나 의견 나눔을 넘어서는 공적인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공적인 경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자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토론 주제를 결정하면 '벌떡'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고 문제 제기를 하는 교사가 있었다. 이른바 '벌떡 교사'다. '벌떡 교사'로 찍히면 관리자와의 관계는 고달파졌지만 다른 교사들로부터는 암묵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 벌떡 교사가 사라지게 된 데에는 관리자들이 교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저강도 전략'이 한몫 제대로 했다. …… 학교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교무실에서 공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교사는 고립되거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힌다. -164~170쪽에서 발췌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소위 '벌떡 교사'가 사라졌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 왜 사라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는 데 골몰했을 따름이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가 '벌떡 교사'들을 사라지게 하는 데에 일조했을 터이다.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교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학교를 가르침의 공간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한국의 교실에서는 자신이 하는 질문이 질문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아는 학생만 질문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학생만 질문할 수 있다. …… 자신을 무지한 자로, 알지 못하는 자로 드러내는 질문은 교사만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에게 조롱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던질 뿐이다. 그래서 교실에서 모르는 자, 즉 '타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질문이란 모르는 자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때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 앎을 위하는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질문은 "선생님, 하나도 모르겠는데요?"라는 용감한 질문이다. 그 학생이 모르는 하나를 같이 발견하는 것이 가르침의 출발이며, 그 하나를 아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297~298쪽에서 발췌

 
학교를 가르침의 공간으로 환원하기 위해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결국 학생들의 '질문'을 살려내는 것이다. 즉, 교실을 '질문이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의 입을 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뛰어난 학생들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질문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질문이 있으면 대답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모든 학교의 교실에서 질문과 대답으로 대화가 이어진다면, 학교는 가르침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따비(2013)


태그:#질문, #학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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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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