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헤다(Counting Stars)
코리안시네마(Korean Cinema) 섹션
한국 / 2023 / 30분 / 컬러 / 
감독 : 김종진
출연 : 남가현, 유재하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을헤다> 스틸컷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을헤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1.
서로의 꿈을 말하고 공유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꿈이 지금이 아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꿈이라면. 영화 <별을헤다>의 두 인물 혜성(유재하 분)과 한별(남가현 분)이 꼭 그렇다. 한 회사의 인턴 동기인 두 사람의 만남은 세미나 준비를 위해 앰프를 찾고 있던 한별을 혜성이 도우며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서로가 어떤 과거를 딛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두 사람. 이들의 삶은 그저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불안한 인턴 생활과 벌써 시작된 대출과 야근의 삶에 갑자기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의 삶에도 꿈이 있었다.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나무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던 남자와 변변한 앨범 하나 없이 페스티벌과 버스킹만 전전했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는 여자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홀로 외롭던 시간이 다 지나갔다고 말하지만, 어쩐지 이들은 그 외로운 시간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진 감독의 영화 <별을헤다>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뮤지컬 영화 형식을 30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통해 시도한다는 것. 저예산, 소규모의 제작 방식으로 대형 프로젝트의 작품만큼의 완성도나 화려함, 매끄러움은 느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보편적인 주제를 상황에 따라 잘 구성된 넘버를 통해 적절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 마음을 던지게 된다.

02.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지난 꿈을 이야기하게 되는 두 사람을 시작으로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두고 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비슷한 그림자를 가진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대화다. 자신의 재능이 특출날 것이라 믿고 싶었던 순간들과 혹 재능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고 싶었던 날들. 뮤지션과 뮤지컬 배우, 비록 분야는 조금 달랐어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크게 부풀었다 쪼그라들어버린 아쉬움의 자리다. 어쩌면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피했어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몸의 방향을 완전히 틀지 못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아련한 공감과 얕은 용기는 미련만 더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제가 생각했던 모습이랑 조금 다르네요."

실제로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는 회사의 정규직 제안 앞에서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했을 때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혜성과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한별이다. 물론 혜성은 그런 한별을 이해하기 힘들다. 꿈을 좇던 그녀의 과거가 지난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 선택의 결과가 높은 확률로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을헤다> 스틸컷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을헤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3.
서로의 이해가 되어주던 지난날의 꿈은 이제 상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는 원인이 되어버린다. 가까운 자리에 맞닿아 있었기에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벼려지고 서로를 힐난하는 무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한별은 혜성에게 꿈만 좇는 사람이, 혜성은 한별에게 쉽게 포기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남겨진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한 선택을 과감하게 택하는 상대에게 부러움을 전가하고, 떠나는 사람은 자신이 후회할지도 모르는 안정에 머무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쏟아낸다.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놓여 있는 것 하나는 '용기'라는 단어다. 어느 쪽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는 이 단어의 모양이 지금 두 사람의 상황 가운데에서 정확히 다른 뜻으로 서 있다. '하고 싶은 것을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마지막까지 나아가는 용기' 두 가지 의미로 말이다. 꿈에 대한 선택을 힐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용기'를 비난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한쪽은 현실만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고, 또 한쪽은 꿈만 안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04.
'뮤지컬 장르의 장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뮤지컬에선 이를 당연한 듯 용납하고 본다.' 영화 <아네트>를 연출했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뮤지컬 장르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그의 말이 이 영화에도 명확히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나아가기 쉽지 않고,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갖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삶 속에서 이 영화 <별을헤다>가 뮤지컬 장르를 통하여 꿈과 미래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작은 위로이자 응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 노래 다시 하려고요."

버스킹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한별의 모습이 담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다. 이해와 작은 부딪힘, 그리고 다시 응원하는 마음. 혜성과 한별의 복잡한 마음이 30분이라는 영화의 짧은 시간 안에서 한 바퀴 순환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포근하게 감싸는 식이다. 현실을 지켜내는 선택을 한 남자와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한 여자, 이제 두 사람은 다른 공간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시작하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멀리서나마,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이런 영화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일이 아닌가.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별을헤다 남가현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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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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