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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은 교사가 질문하는 걸 싫어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가고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을 경청하는 방식에 익숙해서이리라.

그런데 내 수업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하브루타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비문학이든 장르 불문,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학생들이 교과서 지문을 읽은 다음, 질문을 2개씩 만들게 한다. "얘들아, 바야흐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시대를 넘어 문자생존(問者生存)의 시대가 도래했단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문자생존'은 '질문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내가 만든 조어이다.

교사가 하는 질문도 질색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만들라니! 아이들이 얼마나 질색하랴. 처음에는 질색팔색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업 시간에 멀뚱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착한 아이들인지라 교사가 간절하게 이야기하면, 나름 열심히 질문을 만들며 수업에 참여한다.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아이들과 교직 생활을 매조지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브루타 수업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만드는 질문 수준이 그리 높다 할 수는 없다. 경험상, 한 학기는 지나야 썩 괜찮은 수준의 질문을 만든다. 그런데 얼마 전, 문학 수업 시간에 깜짝 놀란 만한 질문이 하나 나왔다. 한 학기를 절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말이다.

서포 김만중이 쓴 고전 소설 <구운몽>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필시 들어본 적이 있을 터이다. 국어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니 말이다.

늘 하던 대로, 각자 본문을 읽고 질문 2개를 만들게 했다. 만든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놓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은 4명씩 모둠을 짠 뒤, 모둠원들 사이의 토의를 통해 8개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모둠대표질문을 뽑는다.
 
<구운몽>을 공부하며 아이들이 만든 모둠대표질문
 <구운몽>을 공부하며 아이들이 만든 모둠대표질문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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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한 모둠대표질문은 칠판에 쓰게 한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칠판에 쓰인 질문 중 하나를 골라 대답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모둠원들 간에 토의를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일곱 개의 모둠대표질문 중,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건 바로 아래의 것이다.

"이 글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해석되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이런 수준의 질문을 만들다니! 그것도 오롯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교사인 내가 한 일이라고는 질문을 만들어 보라고, 질문을 만드는 게 진짜 공부라고 거듭거듭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런 질문을 떡하니 만들어냈다.

이 질문을 보고, 처음에는 '아, 틀림없이 0표 클럽이겠네'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모둠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질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질문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개 질문이 너무 어려워서 답을 할 수가 없거나 아니면 질문이 너무 쉬워 대답이 뻔한 경우가 0표 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당연히,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 본 모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을 뗐다. 그러나 그런 모둠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 이 질문은 1번 칸에 쓰여 있었다. 

"1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 본 모둠 있나요?"

'역시 0표 클럽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 모둠에서 한 학생이 서서히,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학생은 평소에 발표를 활발하게 하지는 않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얼른, 모둠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대답 또한 놀라웠다. 자신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그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대답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불성(佛性)이니 자타불이(自他不二)니 용어를 써 가며 인간 존재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다른 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접목하여 대답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융합 수업 아니겠는가.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너무 설레발치는 것 같아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진 않으련다. 그만큼 너무나도 좋았다. 흐뭇했다.

다른 모둠 학생들도 놀라는 듯했다. 아, 저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제 질문을 만든 모둠의 생각을 들어볼 차례이다. 어느 모둠이 만든 질문인지 확인한 다음, 생각을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쭈뼛거린다. 다른 모둠의 대답이 너무 멋들어져 좀 주눅이 든 듯했다.

괜찮다고, 어떠냐고, 모둠에서 이야기 한 내용을 말하면 된다고 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랬더니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따끔한 가르침을 통해 깨우쳐 주어야 하는 미미한 존재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앞서 모둠과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뭐는 맞고 뭐는 틀리랴. 어차피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지 않은가. 그 질문은 가지고 모둠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 대로의 결론을 냈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가. 그 어떤 참고서나 자습서에 <구운몽>을 공부하면서 '인간 존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겠는가.

내가 만약 전통적인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했다면 이런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 이런 멋진 광경이 교실 안에서 펼쳐진다. 명퇴가 받아들여진다면 교직 생활이 두 달 정도 남게 된다. 이런 장면이 한두 번 더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수업, #하브루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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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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