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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제목은 마치 펜실베이니아 토박이로 여기서 십 수년간 아이를 키운 것 같지만, 이 지역에 온 것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폭풍 같았던 2022년 상반기가 마치 몇 년은 지난 일 같은데, 이제 일 년이라니 신기하다. 진로와 건강을 포함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 학기가 지나 여름방학이다.

10년 넘게 몸 담았던 일을 정리하고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자 미국행을 결정했다. 그러니까 미국행은 아이 공부가 아닌 내 공부를 위한 것이었고, 위 방학은 아이 방학이 아닌 내 방학이다. 지금은 대학들이 방학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학교들은 아직 방학 전이라, 아이는 학교를 가는 짧지만 달콤한 시기이다.

마흔에 시작한 대학원 공부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온 대학원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온 대학원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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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청소년, 청년기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해 20대 중반 아이를 낳고 길렀다. 오가며 살다보니 정확한 만 나이나 한국식 나이를 계산하는데 익숙지 않다. 대충 마흔 언저리. 한국 나이로 하면 넘든가 안 넘든가. 올해부터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했던가. 그냥 기억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나이가 그렇게 주요한 지표가 아니어서 그래왔던 것 같다.

좋게 봐주면 사회적 기준점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고, 안 좋게 보면 그만큼 나이에 맞게 철이 안 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 마저도,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는 아이의 나이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곤 했다.

나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무난한 모범생 과였지만 이런 급변의 시기에 자라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급변의 시기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다르길 바랐다. 둥글둥글하게 학업을 완성도 있게 수행하는 것보다는 자기 것을 가지고 자라서 한쪽으로만 뾰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하면서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며, 학습적 대세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산으로 들로 다니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유아기부터 항상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참관수업에서는 "OO이는 아메리칸 스타일이네요"라는, 칭찬 혹은 걱정(?)이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기억도 없는 시기, 돌이 되기 전 몇 개월 미국에 살아본 게 전부인데, 어떻게 이런 결과에 도달 했을까. 아이의 기질도 한몫 했겠지만, 키운 지역보다는 오히려 양육자가 어떤 사람인지,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인지가 중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보다는 가치관이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가치관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게 느껴져 잘 써지지가 않는다.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무언가 중요하고 좀 더 불변의 태도라는 이미지 때문에. 아이의 성장과 함께 나도 생각 방식이 계속 변화하는 것을 느끼는 데 말이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사교육에 몸담아 왔다. 제공하는 교육에 자부심도 있었고, 또 감사하는 부모님들이나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도 좋았다. 교육은 너무 재미있고 내가 평생 추구하고 기여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 몸이 업종/업태가 잘 맞지 않는다고, 계속 불편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데도 이를 무시하고 '노오력'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티다 몸에 탈이 나고, 번아웃이 왔다.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평생할 일인가, 내가 가진 재능을 잘 쓰고 있나, 길을 바꾼다면 지금이 맞는 시기가 아닐까. 고민 끝에 결국 맞지 않는 옷을 벗기로 했다. 요즘 말로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이라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일 년은 푹 쉬고 몸도 만들고,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희한하게 게으르면서도 안 게으른 인간인가보다. 사교육업에서 풀리지 않던 궁금증을 풀기위해, 도대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 교육 정책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미국 교육대학원 지원을 결정했다.

지원기간 남은 곳들 중 지원한 학교들 중 붙여 주신 곳들이 있어 만학도가 되었다. 사실 옷만 벗고, 수 년간 쌓인 번아웃과 보살핌이 많이 부족했던 몸을 돌보려고 했는데, '좀 쉬자'는 생각과 '놀면 뭐하냐'는 생각이 충돌해 결과적으로 합격이 되니, '왜 나는 스스로에게 시련을 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은 늦은 공부인 만큼 대학원의 이름보다 기후가 따뜻하고 아이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권유하셨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따뜻한 지역의 학교들과는 지원 시기가 맞지 않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5년을 응축한 것 같은 정신 없는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엄마의 기록
 
조용한 미국 동네
 조용한 미국 동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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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 집을 이사하고, 미국으로 짐을 싸서 보내고, 아이 학교를 알아보고, 대학원에 제출할 서류들을 준비하고, 아이와 내 비자를 신청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온갖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미국에서 지낼 집을 알아 보았다.

나 혼자 공부하던 시기에는, 기숙사나 학교 인접한 곳에 아무데나 방을 구하면 되었는데, 아이가 생활하게 될 환경, 다니게 될 환경, 나의 학교까지 통학시간, 아이의 학교까지의 통학시간까지 고려하려니 쉽지 않았다.

특히 내가 다니게 된 대학원이 위치한 도시는 치안에 대한 염려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고민과 문의 끝에 아이가 다닐 학군의 평도 좋고 대학원도 20여 분 이내로 통학 가능한, 도시와 인접해 있는 교외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9개월 간 '아 진짜 내가 일 년을 딱 쉬고 했어야 하는데… 몸이 하는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기말고사, 아이 학교 행사, 팀 프로젝트. 하나씩 게임 퀘스트를 달성하듯 넘기고 보니 어느덧 1 school year(한 학년)이 지났다.  

학창시절의 일부를 미국에서 보냈지만 이 지역은 처음이었다. 아이를 외국에서 키우는 것도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과 플러스 원의 미성년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즐거웠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가 만난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성취들이 가득하다. 내가 만난 어려움과 성취는 그 두 배다. 스스로 학생으로 마주했고, 그리고 아이의 고비와 성공을 엄마이기에 함께 했다.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가 맞을까. 배우고 있는 교육 정책들은 학계 관련뿐 아니라, 나나 아이가 겪은 일들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 유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도 가끔 겸하고 있다.

'육아삼쩜영' 시작을 알리는 글이었는데, 쓰다보니 아이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더 많다. 어쩌면 이게 나와 내 아이를 대하는 나의 양육 태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이 자라고 있다.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는 경험의 기록들이 신선한 이야기로, 또는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육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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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의 마음 모두 알아주는 교육자 변화하는 미래를 위해 스스로 발전하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찾아 pursue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인도자, 교육자 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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