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의자에 오래 앉아 있게 된 나는 허리 건강을 위해 주 4회 새벽 걷기를 한다. 6시쯤 집을 나서서 30분간 집 근처 하천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이때 중요한 운동 필수품이 하나 있다. 바로 에어팟이다. 평소에는 세 아이를 챙기느라 좋아하는 음악을 여유 있게 들을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이때 나는 에어팟을 꼭 챙긴다.
 
내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새벽 걷기의 시간
▲ 오늘의 새벽 걷기 내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새벽 걷기의 시간
ⓒ 박여울

관련사진보기

 
새벽 고요한 시간에 운동을 하며 그토록 듣고팠던 음악을 한 곡 두 곡 이어 듣는 것이다. 양쪽 귀에 에어팟 하나씩 가지런히 꽂고 그날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곡들로 리스트를 구성한 뒤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 행동이 내게는 운동에 대한 강화제가 되어 집에서 머물려는 내 몸을 일으켜 기꺼이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오늘은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그림책 여러 권을 반납해야 해서 주섬주섬 책을 챙겨 나왔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에어팟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책을 반납하고 나서 늘 가던 하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어팟이 없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운동의 기쁨이 반감되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일단 나왔으니 걸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걷기를 시작한 지 1~2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내 팔의 움직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순간 '내 걷기 자세가 이렇게 역동적이었던가?' 싶기도 하고 이 느낌이 영 낯설기만 했다. 두 발은 언제나처럼 걷기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전과 뭐가 다른 걸까?' 생각 회로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답을 찾았다. 늘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이 없어서였다. 나는 원래 걸을 때마다 경쾌한 팝송을 재생한다. 나는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비트의 밝은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음악들이 오히려 자세에 집중하려는 내 주의력을 분산시켰고 걸음의 속도를 더 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 없는 오늘은 오히려 허리춤 주변에서 세차게 오가는 두 팔 그리고 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두 발바닥의 가벼운 움직임에 내 신경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때로는 놔두고 다니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에어팟
 때로는 놔두고 다니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에어팟
ⓒ 박여울

관련사진보기

 
에어팟으로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어 나는 새벽 걷기를 지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준비물을 필수품으로 생각하며 꼭꼭 챙겼다. 하지만 운동 필수품이 없는 오늘은 허전하고 아쉽기보다는 내가 운동을 할 때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작년 3월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3년의 육아휴직을 뒤로하고 직장으로 복직을 했다. 약 2주 동안 자차로 운전을 하며 직장으로 향하는 그 길이 너무 즐거웠다. 휴직한 사이 운전 실력이 많이 늘어 이제는 능숙하게 고속도로 운전을 이어간 나는 매일 뿌듯함이 느꼈다. 출퇴근 길도 드라이브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내 복직의 기쁨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감정도 2주가 지나자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운전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는 말처럼 운전도 매일매일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날 아침 갑자기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봐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쁜 아침이었지만 직장까지 가는 버스의 도착시간을 핸드폰으로 확인한 뒤 재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출근한 그날로부터 나는 바로 대중교통 마니아가 되었다. 이후로 11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유류비를 아끼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건 부차적인 소득이었고 무엇보다 내 눈과 손이 자유로워져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는 동안 나는 유튜브 강연을 듣거나 새벽에 써둔 글을 수정했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버스 벽에 기대어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일 년 동안 버스로 출퇴근을 하며 나는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워가며 많이 성장했다. 아마도 자차로만 출퇴근을 이어갔다면 운전하는 그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에어팟을 잊은 채로 나갔지만 오히려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내 몸의 움직임에 새로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차를 두고 버스로 직장을 오갔더니 오히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을 얻었다. 이처럼 삶을 살아갈 때는 오히려 편하고 좋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잘 빼보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 중 어떤 것은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무언가를 더 하고 또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충분히 누리고 있던 무언가를 빼고 사는 가벼움과 지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하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에어팟, #자동차, #새벽기상, #미니멀리즘, #삶의지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