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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록 밴드의 보컬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자화상이다.
▲ 커트코베인 자화상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록 밴드의 보컬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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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중 특별한 전시를 만났다. 음악가의 초상을 그린 유규 작가의 전시 <신은 내 곁에> 서귀포의 전시공간 '라바르' 2층의 갤러리에서 본 전시는 강렬할 정도로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신의 선율을 그린다'는 표현을 썼다. 사람들은 어둡고 컴컴한 인생의 터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면서 터널을 뚫고 나갈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이 세상 누구도 내 편이 아닐 때 '신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다시금 버틸 용기를 얻는다. 예술 그 중에서도 음악은 사람들을 위안하는 힘이 크다. 
 
‘잃어버린 귀는 음악의 지복 아래 제 자리를 찾으리라, 광야에서...’
▲ 전시실 입구에 결린 레코드판과 CD, 그리고 사람의 귀 그림  ‘잃어버린 귀는 음악의 지복 아래 제 자리를 찾으리라,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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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입구에 결린 레코드판과 CD, 그리고 사람의 귀 그림이 기묘했다. '잃어버린 귀는 음악의 지복 아래 제 자리를 찾으리라, 광야에서...'라는 문구도 심오했다. 갑자기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게 하는 구절이었다.

어릴 때 잠시나마 음악에 빠져 살았고, 재즈 피아노를 하고 싶은 소망으로 음악의 길을 걸으려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전시를 보면서 창작자의 마음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이면을 들추어보는 일은 봉인 해제되었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커트 코베인 작품에서 영감받은 ‘펑크베리’를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는 라바르
▲ 커트 코베인 작품에서 영감받은 ‘펑크베리’를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는 라바르  커트 코베인 작품에서 영감받은 ‘펑크베리’를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는 라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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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록 밴드의 보컬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자화상이다. 유규 작가에게 커트 코베인은 삶의 원동력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작품 중 '헛소리는 신경 꺼!'(Nevermind the bollocks! 2023)는 커트 코베인을 위한 헌정 작품이었다. 

"펑크punk는 음악적 자유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행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nirvana(열반)는 고통, 괴로움, 외부세계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펑크록의 정의와 아주 가깝다" - 커트코베인 

연약해 보이지만 빛으로 감싼 듯 하늘에서 내려온 한 기타리스트가 금발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은 채 암흑 속에서도 기타를 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악인의 초상.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면서 완벽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한 커트 코베인은 '가녀리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우리 세대의 날것 그대로 투영한' 인물이었다.

스물 일곱 해를 살았지만 여전히 노래는 살아남아 영원히 후대의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유규 작가 역시 자신이 좋아했던 뮤지션의 초상을 그리면서 치유의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영감을 준 수많은 음악가의 초상을 그렸다
▲ 작가에게 영감을 준 수많은 음악가의 초상을 그렸다 작가에게 영감을 준 수많은 음악가의 초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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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커트 코베인은 90년대를 상징한 록스타였다. 고등학교 중퇴 후 가족을 떠나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청소부 같은 잡일을 하다가 펑크 록을 알게 된 후 기타에 빠져들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너바나' 밴드를 결성했다.

인디 밴드 시절 그는 하루 9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는 정열적인 음악인이었다. 하지만 만성적인 위염과 복통으로 인한 고통과 조울증, 기관지염, 척추측만증 등 알 수 없는 원인의 병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너바나 1집의 흥행과 라이브 공연 등으로 팬층을 형성했고, 90년대 들어서면서 기대주로 떠올랐다.

메이저 데뷔 음반인 'Nevermind'는 빌보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너바나와 코트 코베인은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렇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94년 4월 5일 자신의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기와 명예의 정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생애로 인해 전세계 음악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렇듯 모든 예술가는 자신만의 서사가 있다. 화가 유규 작가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발적 소외를 선택한 후 2010년부터 제주에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의 거주지이자 작업실은 서귀포 화력 발전소 인근의 외딴 컨테이너이다.

도시의 빛과 소음을 벗어난 자연의 야성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곳에서 종종 신이 머무는 순간을 경험했다. 바로 음악을 통해서 말이다. 그가 경험한 신의 선율을 그린 작품이라니! 관람객은 거친 붓터치와 어둠 속의 빛과 색으로 알 수 없는 찬란한 희망을 맛보게 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규 작가는 "예배당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우리의 성소(聖召)다"라고 말했다. 
 
‘유규 개인전’ (신은 내 곁에 ; Muse, Sing My Persona)에서 신의 선율이 그림으로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 온 몸으로 감상할 수 있다
▲ 신이 내 곁에 머문 순간을 그림으로 담다  ‘유규 개인전’ (신은 내 곁에 ; Muse, Sing My Persona)에서 신의 선율이 그림으로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 온 몸으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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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규 작가와 짧은 만남이 세 번쯤 있었다. 긴 대화를 나누었다기 보다 슬쩍 한 예술가의 외형과 생활인의 흔적을 엿보았다고나 할까. 자본의 힘을 거스르며 예술가로서 살기로 작정한 그는 이 시대의 고흐같았다. 끝없이 읽고, 쓰고, 해석하면서 창작하는 그는 예술가라기보다 철학자 같았다. 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는 컨테이너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모두가 대체로 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적당히 그럴듯한 기업의 회사원으로 살다가 적당한 짝이 생기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책임과 의무에 사로잡힌 인생을 산다. 그렇게 사는 게 큰 실패 없는 무난한 삶이라 자족하면서. 규율과 시스템에 잠식되어 획일적으로 살아가면 튀지 않는 무난한 인생이 된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어떠한 인생의 모습도 가치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유규 작가는 스스로 가난과 외로움을 선택했고, 고립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가 이토록 전무후무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내 안의 신을 만나고, 그 신의 부름을 따라 살아간다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가 곧 그림이었을 뿐이다. 
 
펄잼의 앨범 자켓 그림
▲ 펄잼의 앨범 자켓 그림 펄잼의 앨범 자켓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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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100호짜리 그림은 '펄잼'의 자켓 앨범이었다. 너바나와 함께 미국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양대 산맥이었던 펄 잼의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다. 2023년 유규 작가는 펄잼을 사랑했던 오래 전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이미 2010년 펄잼 앨범을 스케치북에 쓱쓱 그리면서 '언젠가는 세상에 내놓을 작품'으로 마음을 먹었는지 모른다. 
 
영감의 순간을 보여주는 작가의 책상, 작업노트
▲ 작가의 작업노트 중 ! 영감의 순간을 보여주는 작가의 책상,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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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켠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창작현장까지 엿볼 수 있는 '유규의 방'도 꾸며놓았다. 직접 선정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해 놓았다. 작가의 책상에 놓인 붓과 노트, 연습장, 끄적인 글의 흔적과 플라스틱 재활용 용기를 파레트로 사용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룹 '들국화'의 레코드판도 있었는데, 가장 젊은 시절의 전인권이 노래하는 모습은 '푸른 청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한때 전성기가 있고, 청춘의 시절이 있다. 그때의 하이라이트 같은 절정의 순간들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한 채로 늙어가는 건 아닐까. 
 
예술공간 '라바르' 는 과거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다
▲ 예술공간 "라바르" 는 과거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다  예술공간 '라바르' 는 과거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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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내 곁에> 전시가 이뤄진 '라바르'라는 문화예술 공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 목욕탕을 그대로 살린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매번 전시와 컬래버레이션 한 시그니처 음료를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유규 작가의 커트 코베인 작품에서 영감받은 '펑크베리'를 한정으로 판매한다.

블루베리 샤베트와 차가 어우러지는 펑크베리는 바로 전시 공간에서 한 모금씩 음미하면 최고다. 6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유규 개인전'(신은 내 곁에 ; Muse, Sing My Persona)에서 신의 선율이 그림으로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 온몸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유규 개인전' (신은 내 곁에 ; Muse, Sing My Persona)
장소 : 라바르 – 갤러리 뮤즈 (서귀포시 중앙로 13) 
기간 : 6월 17일부터 6월 30일까지 
클로징 토크 : 6월 28일 오전 10시. 유규 작가와의 예술토크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태그:#설거지화가, #커트코베인, #신은내곁에, #예술가의초상, #예술가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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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쓰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깁니다. 수원에서 작은 골목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는 책방지기입니다. <타로가나에게들려준이야기> <좋아하는일을해도괜찮을까>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사이판한달살기> <그림책은재밌다>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등 열세권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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