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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리오 천연자원 임업부가 공개한 사진. 2023년 6월 4일 일요일 온타리오 주 엘리엇 호수 인근 미시사기 주립공원 동쪽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온타리오 천연자원 임업부/AP)
 온타리오 천연자원 임업부가 공개한 사진. 2023년 6월 4일 일요일 온타리오 주 엘리엇 호수 인근 미시사기 주립공원 동쪽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온타리오 천연자원 임업부/AP)
ⓒ 연합뉴스 = 온타리오 천연자원 임업부/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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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전 지구적 기후 재난에 대해 영화 관람하는 태도를 보인다.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캐나다의 대형 산불, 미국 남부와 인도를 덮친 불볕 더위, 브라질의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사이클론은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니까 '별것 아닌 일'이 된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치고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련한 책도 쏟아지고 있으며,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 심층 보도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뉴스도 끊임없이 보도되는 중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냥 그뿐이다.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의 저자이자 보전생물학자인 소어 핸슨은, 이에 대해 기후 활동가 조지 마셜의 말을 인용한다.
 
조지 마셜은 어떻게 인간의 뇌가 추상적인 위협을 인지하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예상되는 결과가 아직 멀리 있거나 서서히 다가올 때 우리 뇌는 훗날에 참조할 요량으로 사실을 정리해놓을 뿐, 빠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경로를 활성화하지 않는다.
-책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16쪽

반면에 창 찌르기나 사자의 공격 같은 물리적 위협을 포함한 눈 앞의 문제에 더 잘 대응하도록 진화한 것이 인간이란다. 기후 문제는 인지와 무시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노후 대책 문제와 똑같다. 언젠가 닥쳐올 퇴직 이후의 기나긴 노후에 대한 준비는 너무 중요한데, 지금 당장 먹고살기 바쁘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표지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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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기후변화, 가까운 현실문제  

다행히 이런 정신적 간극을 메꿔줄 전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인간의 뇌가 가진 '스토리텔링'이라는 재주다. '복잡한 개념이라도 서사가 덧입혀지는 순간 공감대가 형성'(같은 책 16p)된다.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환경단체가 발표하는 수많은 숫자와 도표들을 떠올려보라)만으로는 건들 수 없는 뇌의 구역에 파고들어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는 화학물질(예를 들어 옥시토신)의 분비를 자극한다.

그래서 책의 이름이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다. '인식 가능한 피해자 효과' 이론에 따라, 대중은 익명의 피해자 다수보다 신원이 밝혀진 한 명의 피해자(허리케인 도마뱀, 플라스틱 오징어 등)에게 더 공감하고 반응한다. 저자인 소어 핸슨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실시간으로 대응하며 역경에 맞서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이 된 도마뱀은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아놀도마뱀인데, 빈번해지고 강력해진 허리케인에 맞서 앞다리는 길게, 앞발의 발가락 패드는 더 크게 그리고 뒷다리는 짧게 진화를 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불과 한두 세대 만에 자연선택이 나타난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플라스틱 오징어는 캘리포니아만의 대왕오징어라 불리는 훔볼트오징어다. 언젠가부터 이 오징어가 더는 잡히지 않아 어부들은 멸종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알아보니 훔볼트오징어는 여전히 그곳에서 잘살고 있었고 오히려 수가 더 늘어나 있었다. 새끼라고 착각할 정도로 몸의 크기를 확 줄였고 대신 예전 수명의 절반 정도만 사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이름이 가소성(plasticity) 높은 오징어, 플라스틱 오징어다.

도마뱀과 오징어의 변신은 시작에 불과하다. 회색곰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나?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본, 강을 거꾸로 힘차게 오르는 연어를 낚아채는 곰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이제 회색곰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연어가 한참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철인데도 곰들은 강을 떠나 평소보다 일찍 익어버린 엘더배리 열매를 먹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엘더배리는 단백질뿐 아니라 탄수화물까지 풍부해 살을 찌우는데 훨씬 유리하다.

동물들 대견? 생태계 전체가 위기 

혹시 이 대목에서 "동물들이 참 대견하다. 열심히 환경에 적응하고 있네." 손뼉을 친다면 큰일 날이다. 비건(채식주의자)이 된 회색곰의 여파로 계곡 주변에 연어 사체가 줄어들었고, 그걸 먹고 살던 다양한 청소 동물이 덩달아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중요한 에너지 흐름이 끊겨버렸다.

울타리도마뱀은 너무 더워 먹이를 찾으러 다니기보단 그늘로 피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 생식을 멈췄다. 화려한 춤으로 암컷을 부르던 수컷 큰가시고기는 무더위로 녹조가 잔뜩 낀 물에서는 춤을 춰도 암컷이 볼 수 없으니 이제 더는 춤추지 않는다. 북미의 쥐엄나무는 10년에 64km의 속도로 서쪽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 정도 속도면 나무 세상에서는 날아가는 속도다! 영원히 같은 자리에 있을 나무가 생존을 위해 서식지를 옮기는 세상이다.

책을 통해 지구 생물들의 상상 초월 진화 분투기를 목격하다 보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온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이렇게 처절하게 가소성을 발휘하여 적응하고 있는데, 인간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번역가 조은영 선생의 글이 뼈를 때린다.
 
그렇다. 인간은 지금껏 놀라운 능력으로 기후변화에 적응해왔다. 날이 더워지자 에어컨을 더 세게 틀고, 벌이 떼죽음을 당하자 벌 로봇을 개발하고 진동 막대로 작물을 인공 수분한다. 인간은 망가져 가는 지구에서도 (미봉책으로나마) 한동안 잘 버텨낼 것이다.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 생존을 위해 진화를 택한 기후변화 시대의 지구 생물들과 인류의 미래

소어 핸슨 (지은이), 조은영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3)


태그:#환경, #기후변화, #기후위기, #생태학, #진화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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