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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들은 불법파견 중단과 파견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을 278시간 동안 점거했습니다. 이에 현대차 측은 조합원들에게 2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노조를 탈퇴하면 피고 명단에서 빼주겠다며 노조를 약화하려는 조치도 잊지 않았죠.

소송으로 조합원들을 옥죄려던 현대차의 시도에, 지난 6월 대법원이 옐로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쟁의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조합원 개개인에 지워서는 안 되며, 배상 책임을 묻더라도 관여의 정도에 따라 그 범위를 달리 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인데요. 노란봉투법 개정의 디딤돌이 될 판결,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비평했습니다. - 기자말 


조합원 29명을 상대로 20억 원 손배 소송
 
현대차 손배 대법 판결 당사자이자 해고자인 엄길정씨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및 손해배상 소송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현대차 손배 대법 판결 당사자이자 해고자인 엄길정씨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및 손해배상 소송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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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심 대법원 오석준(재판장), 안철상, 노정희(주심), 이흥구 대법관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2심 부산고등법원 제2민사부 조용현(재판장), 권순향, 최재원 판사 2017. 8. 24. 선고. 2013나9475
1심 울산지방법원 제4민사부 성익경(재판장), 한윤옥, 권경선 판사 2013. 10. 10. 선고. 2010가합8446

지난 6. 15.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최근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가열차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아래 "노동조합법") 제2조와 제3조의 개정운동에 커다란 뒷배가 될 만한 판결을 내어놓았다. 노동쟁의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가혹한 손해배상액을 청구하고 가처분으로 그들의 삶을 옥죄었던 사업자들이 더 이상 법의 이름을 빈 가혹행위 내지는 노조파괴행위로 나아가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 사건은 약 13년 전으로 소급한다. 당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이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을 점거하여 공정이 278시간 중단된 일이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이런 일들을 빌미로 조합원 29명을 상대로 2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청구하였다. 제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은 현대차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합원들은 쟁의 과정에서 무얼 했건 각자가 이 손해배상금 20억 원을 전부 부담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현대차는 그 사이에도 노조를 탈퇴하면 피고 명단에서 빼주며 노조를 약화시키는 조치도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조건의 개선에 한 목소리를 내었던 4명의 조합원은 결국 대법원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실제 일반상식이나 대중의 법감정에 비추어 볼 때 이 대법원 판결은 별 게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의당 그러해야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법원의 판단이 일방적으로 사용자 측에 경도되어 일반적인 법 상식을 거스르는 성향을 보이다 보니 이 대법원 판결이 상대적으로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자.

"단체인 노조가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을 진다"

대법원은 우선 노동쟁의라는 것은 조합원인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단체가 그 내부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쳐 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당연한 말이다. 노동조합의 쟁의 결정이 있어야 조합원이 쟁의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기에 쟁의로 인한 제반의 책임은 조합원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져야 한다. 그래서 이 판결은 이렇게 말한다. "단체인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의 원칙적인 귀속주체가 된다." 너무나 쉽고 또 당연한 말이다.

대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어떤 노동조합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쟁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조합원은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까? 의당 조합의 결정에 따라 노동조합이 시키는 대로 쟁의행위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조합원이 '노동조합이 시킨다고 그냥 따라 하다가 나중에 손해배상 덮어쓰는 경우가 있다던데…'라고 지레 겁을 먹고 그 쟁의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법전 펼쳐놓고 합법인지 불법인지 따져나가고자 한다면 그 노동쟁의는 어떻게 될까?

마치 전투 상황에서 중대장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는데 병사들이 돌격하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적을 향해 총을 쏘면 형사처벌 대상인지 아닌지, 중대장의 명령이 무슨 법 몇 조에 근거한 것인지 따지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후자의 사례는 전투를 포기하는 것이고, 저 노동조합의 사례는 아예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대법원은 말한다. 개별 조합원이 노동조합이 시킨 쟁의행위를 수행했다고 해서 그 책임까지 지게 되면 저런 상황을 조장하는 셈이 되고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 결성권 즉 단결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되기에 옳지 않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간단하다.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임은 조합원 개개인이 아니라 그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명령한 노동조합이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된다.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명령에 충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말한다. 설령 개별 조합원 각각에게 배상 책임을 묻더라도, 그 관여의 정도에 따라 배상책임의 범위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쟁의행위가 설령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를 주도한 조합 간부와, 생산라인을 막아서서 기계를 부숴버린 조합원, 그리고 공장 입구에서 피켓 들고 구호 외친 조합원이 작업중단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같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양자에게 같은 손해배상책임을 묻는다면, 대법원의 표현처럼, "손해의 공평 ·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

그러기에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은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법률용어라 말은 어려운 듯 보이지만 내용은 너무도 단순하다. 개개의 조합원에 대해서는 함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말고, 그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그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어떠한 손해가 어느 정도로 발생했는지를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정리해서 그에 따른 증거를 바탕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말이다.

대법원 판결이 민법 기본원칙 위반했다고?

사용자 측 주장을 학술로 꾸미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대법원 판결이 민법의 기본원칙에 위반된다고 한다. 민법 제760조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불법행위를 한 때에는 그들이 모두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하게 한다. 소위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부진정연대책임 제도이다. 그런데 이 대법원 판결은 이런 법 규정과 달리 개개의 조합원이 각각 불법쟁의행위에 가담한 정도에 따라 책임을 달리하게 한 것이기에 민법 제760조에 반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민법 제760조와 헌법의 취지를 오해한 것이다. 민법 제760조는 피해자 구제를 우선하고자 한다. 예컨대 여러 명이 집단폭행을 하는 중에 누군가가 발을 거는 바람에 피해자가 넘어져 뇌진탕으로 실신했다고 하자. 만일 이때 발을 건 사람만이 뇌진탕의 책임을 진다고 한다면 이 피해자는 병원 근처도 못 갈 것이다. 서로 발을 걸지 않았다며 발뺌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구급차조차도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설령 치료를 하더라도 그 수술비는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발을 건 사람을 찾아내서 그 행위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법 제760조는 이런 때에 유용하다. 일단 응급치료에서부터 수술비, 치료비 등등 모든 손해를 이들이 연대해서 배상하게 하여 먼저 피해자를 구제하고 난 다음, 나중에 그들끼리 잘잘못이나 경중을 따져 그 배상액을 정산하게 하면 된다(이를 구상권 행사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규정을 일종의 갑이라 할 수 있는 사용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먼저 헌법재판소의 결정 하나부터 보자. 상호신용금고가 부실경영에 처한 경우 예금채무를 비롯한 모든 채무에 대하여 이사 전체가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한다. 예금채무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이 경우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 부실경영과 전혀 무관한 이사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부실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이사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책임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져야 하는 것이고, 또 잘못한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 법의 기본원칙인 것이다. 연대책임을 규정한 민법 제760조는 이런 자기책임의 원칙에 대하여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외를 인정한 특례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는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까지 이어진다. 손해배상의 기본은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분담에 있다. 손해를 야기한 사람이 그로 인한 손해만큼 배상책임을 진다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최근 민법학자들도 이런 부진정 연대책임의 범위를 축소하고 개별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소위 "기여도 감책론"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지엄한 헌법명령까지 더해진다. 헌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이나 과실책임이라는 민법의 기본원칙을 넘어 노동자의 노동3권을 우선 보장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여 사용자는 노동자와 협상하기 싫더라도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강제하고, 단체행동권을 규정하여 쟁의행위로 인해 사용자가 영업상의 손해를 지더라도 이를 감내할 것을 명한다.

민법 제760조를 비롯하여 그 모든 민법 규정 위에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헌법 규정이 자리하는 것이다. 요컨대, 민법 제760조의 해석은 항상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 쟁의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고 또 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법리에 비교적 충실한 것이 저 대법원의 판결인 것이다.

그래서 이 대법원 판결은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운동과 상당 부분 겹친다. 현재 국회의 신속처리절차에 따라 본회의에 부의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법원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할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고자 한다. 대법원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 판결의 한계는 분명하다. 노동조합의 결정에 따른 쟁의행위의 경우 그에 참여한 개별 조합원의 배상책임은 완전히 면제하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정도도 우리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과 피눈물 나는 희생의 결과였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아울러 대법원에서의 승리에 힘입어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도록 가열차게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거부권 운운하며 노동조합법 개정에 딴지를 걸고 있다. 법치를 내세우는 정부치고는 너무도 협량한 태도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이미 대법원의 판결로 확인된 것으로 현재 우리 법제에 시행되고 있는 것을 단순 확인하는 정도의 것이다. 그래서 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국회의 권한을 넘어 대법원의 판결까지도 부정하는 셈이 된다. 3권분립의 기본원리조차도 저버리는 행태인 것이다.

실제 "노사법치"는 이렇게 구성되어야 한다. 노사관계에 관한 제반의 법 규정들을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틀에 따라 제대로 정비해 냄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입헌적 민주주의가 충실히 실천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사법치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그러할 때 우리 사회가 '일할 만한 사회'가 되고 '살만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태그:#참여연대, #판결비평, #노란봉투법,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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