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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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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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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일이다. 몇 년 전 어느 더운 여름날, 방과후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교사들이 이용하는 준비실로 큰 과일 두 통을 보내왔다. 교사들이 난감해하며 이구동성 말했다. "잘라서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은데..."

그러자 S 교사가 자신이 받았다는 문자를 보여줬다. 과일을 보낸 학부모의 문자는 이랬다. 

'선생님, 날이 더워서 과일을 보냈습니다.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했다가 수업이 끝나면 잘라서 학생들이 모두 먹을 수 있도록 나눠 주세요.'

아이들에게 시원한 과일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으나,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 준비와 여러 업무로 바쁜 와중에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리에 있던 교사들은 '거두절미 당당하고 부당했던 학부모의 요구' 사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Y교사는 며칠 전 비가 많이 온 날 받은 문자를 보여줬다. 매우 장황하고 긴 내용이었지만 요지는 비가 오는데 내 딸이 우산을 안 가지고 갔으니 선생님이 '어떻게든' 우산을 빌려줘서 내 딸이 비 맞지 않고 집에 올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K 교사가 말했다. "저는 쌍욕 문자도 받았어요." 그런 얘기를 나누다 한 교사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학생에게 맞지는 않았잖아. 학부모에게 맞을 뻔한 적은 있어도..."

교사들 입장에서, 이 사건은 남 일 같지 않다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교내 체육관에 추모공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교내 체육관에 추모공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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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비슷한 경험을 하는 빈도수가 많아졌다. 그런데 이건 새발의 피란다. 지인인 초등학교 교사가 말하길, 고등학교는 그래도 입시 때문에 교사에게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는 학부모 민원이 상상 초월이라고 했다. 교사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다양한 요구들을 한단다. 그런데 가끔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교사들이 있으면 민원이 시작된다고 했다. 

감정 조절 능력이 없는 아이가 교실에서 돌발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했지만 담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이야기하면 '지금 내 아이 환자 취급하냐'고 교사의 자질을 들먹일게 뻔하고, 교사나 친구들을 때리려고 할 때 힘으로 제압하면 '교사가 아이를 상대로 폭력 쓴다'고 할 거고, 등교 정지 시키면 '교육권 침해한다'고 할 거고, 그대로 두면 다른 아이들의 학부모가 '자기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할 거고. 제발 자기 반에 그런 일이 없기만을 기도한단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S초등학교에서 신임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굳이 학교에서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는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다. 가짜 뉴스는 차치하더라도 직장인 학교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것이 아닐까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에게 담임 교사가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은 사건과 겹쳐지기도 했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 비슷한 경험을 한 번 하지 않은 교사가 없고, 그런 경험을 그냥 참고 넘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며, 최근들어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곧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그런 이유로 S초등학교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 백 개의 근조화환이 답지하고 있고,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나보다.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던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다는 몸짓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싣습니다.


태그:#교권침해, #서이초, #학부모 갑질, #학생의 교사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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