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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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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이 '할렘(미국 뉴욕의 우범지대)'이라고? 강남엔 그런 말 안 하잖나." (신림동 거주 20대 여성)

살인 사건과 잇따른 모방범죄 예고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은 아직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살인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곳 주민들은 일부 언론과 인터넷 상의 부정적인 지역 묘사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7분께 조아무개(33, 남성)씨가 신림동 번화가에서 20대 남성 1명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 또한 다치게 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28일 검찰에 송치됐다. 

'국화 가득' 애도 이어진 추모공간... 또래 청년들 "무서워 뒤돌아본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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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야, 저기." "어떻게 이런 대로변에서..."

지난 27일 오전, 인근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한 연인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현장을 지나는 여러 시민들에게서 이러한 대화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피해자가 숨진 곳 인근의 빈 상가 앞엔 국화 수백 송이가 놓여 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 공간엔 국화뿐 아니라 애도의 글귀가 적힌 메모, 추모의 마음이 담긴 소주병도 놓여있었다. 이날이 추모 공간 운영 마지막 날이었다.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 발걸음을 멈췄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흐트러진 소주병을 정리하고, 메모와 국화를 한참을 바라보며 애도를 표했다. 몇몇 시민은 "살인마!"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이 바라보고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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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윤아무개씨는 10분이 넘도록 추모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메모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그는 "나도 신림 주민인데 한동안 (두려움에) 이곳을 못 지나가다가 오늘이 추모공간 운영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왔다"며 "나도 당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인근에 사는 이아무개(28, 여성)씨 또한 벽에 붙은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이씨는 "피해자가 또래라서 더 안타깝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주변 주택가에서 만난 20대 중반 남성 김아무개씨는 "2년째 이곳에서 자취하고 있는데 잠시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가 있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며 "무서워서 골목을 지나다 뒤를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인근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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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 주변을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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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들은 살인사건에 이어 발생한 모방범죄 예고에 강한 공포심을 내보였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3일 뒤인 지난 24일 한 남성이 흉기 구매 내역 사진과 함께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25일 자수했고 27일 구속됐다. 다음날인 25일에도 '신림역 일대에서 여성을 성폭해하고 살인하겠다'는 글이 이어졌다. 

앞서 만난 남성 윤씨도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글(모방범죄 예고 글)을 올려서 물의를 일으키는 건지 모르겠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당분간 이곳에 오지 말라고 연락을 돌렸다"고 토로했다.

친오빠와 근처에 거주 중인 20대 여성 최아무개씨는 "사건 후 오빠가 집밖에 절대 나가지 말라더라. 그래서 나는 '(남성인) 오빠도 호신용품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라며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라고 한탄했다.

앞서 인터뷰한 여성 이씨는 "(모방범죄 예고) 글을 보고 가장 먼저 '세상에 미친놈이 진짜 많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며 "퇴근길에 친구와 '내게 벌어질 수도 있는 일 아닐까'라는 대화를 나눴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글을 보며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때문인지 사건 현장 부근이나 상가 골목, 인근 주택가 등에는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서울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4일부터 서울경찰청 기동단 소속 20여 명이 신림동 일대에 투입됐다. 이 관계자는 "일대 분위기가 안정될 때까지 (서울경찰청 기동단에서) 순찰 활동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모방범죄 예고에 동네 향한 비난까지... "왜 공황장애 오는지 알겠더라"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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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인근 상점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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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빌미로 이곳을 부정적인 지역으로 낙인찍는 등 지역혐오 현상이 번지는 것에 대해서도 고통을 호소했다. 

신림동은 과거엔 고시촌, 현재는 원룸촌이 자리잡고 있어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편이라 많은 구직 청년이나 사회초년생, 외국인이 거주지로 선택한다. 사건 이전부터 색안경을 낀 시선에 시달렸던 신림동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신림동은 할렘가냐?", "원래 신림동 쪽은 막장 아니냐", "싼 동네라 XX병자들 많지 않냐" 등의 모욕적 발언에 시달리고 있다.

한 달 전 사건 현장 인근으로 이사왔다는 사회초년생 이아무개(26, 여성)씨는 "이 사건 후 '역시 신림은 할렘이다'라는 이야길 들었다"라며 "하지만 (사건·사고는) 신림에서만 벌어지는 게 이니다. 강남에서 납치·살인·마약 사건이 벌어져도 동네를 향해 그런 말을 쏟아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신림을 범죄도시 이미지로 몰아가지 않으면 좋겠다"며 "살인 사건에, 모방범죄 예고에, 이 동네를 향한 비난까지 겪으며 왜 공황장애가 오는지 알겠더라. 오늘 출근길에 사람이 많았는데 두려움이 느껴졌다"라고 덧붙였다.

신림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아무개(31, 남성)씨는 "온라인에 보면 항상 기다렸다는 듯 본질을 벗어나는 쪽으로 사건을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현상"이고 지적했다. 5개월 차 주민 김아무개(22, 남성)씨도 "사건 지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아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라며 "(사건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젠더 갈등으로 확대되는 모습도 보이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주변을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주변을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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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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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인들의 근심 또한 깊다. 한 상인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사건 이후 제가 마음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닌다"고 털어놨다. 

신림동 먹자골목에서 10년간 장사했다는 A씨는 "(얼마전까지) 중고등학생들이 이 앞 (즉석) 사진방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는데 이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30년간 식당을 운영했다는 B씨는 점심시간임에도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는 가게를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파리만 날린다. 나도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지나는 사람들 손에 칼이 있는지 없는지 보면서 왔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매스컴에서 너무도 반복해서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라며 "신림은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장소였는데 지금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신림동 살인 사건 엿새 후인 27일 오전,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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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림동 살인 사건, #신림, #살인 예고, #추모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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