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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북스토어 내부. 서점의 중앙 부분에 매대를 놓는 대신 방문객을 위한 소파을 둿다.
 더 라스트 북스토어 내부. 서점의 중앙 부분에 매대를 놓는 대신 방문객을 위한 소파을 둿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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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낮 기온은 섭씨 34도. 이런 가운데 지난 26일(현지시각) 한 서점에서 더위를 잊은 채 3시간을 보냈다. 사람이 적지 않은 이 서점은 개방된 복층을 사용하고 있어 유난히 시원했다.

서점의 이름은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 2층에서 열심히 책을 정리하고 있는 직원에게 왜 이름이 '마지막 서점'인지를 물었다.

"사회적 의미를 담은 이름입니다. 지역의 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에 밀려 사라지고 있죠. 'last'는 그 위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점의 종말'로부터 이 서점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을 이름에 새긴 셈이다.

알고 보니 설립자 조시 스펜서(Josh Spencer)의 경력도 시작은 온라인이었다. 그는 온라인으로 모든 잡화를 파는 셀러였다. 2005년부터는 그가 좋아하는 책에 집중했고 2009년 말에는 4번가 메인스트리트에서 작은 서점을 열었다. 점차 몸집을 키워 지금의 스프링 스트리트로 옮겼고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서점이자 레코드 매장'이라는 명성을 확보했다.
      
이 서점은 약 617평의 공간에 책을 얼마나 많이 수납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어떻게 더 공간을 창의적으로 구성하느냐에 관심을 둔 것 같다. 이미 1만 년 전쯤에 멸종된 매머드의 머리 모형을 서점의 복층 중앙에 걸어뒀다. '이 서점이 사라지면 지구상 오프라인 서점은 화석으로만 남은 매머드 같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사하는 듯했다.

2층의 귀중품 금고 모양의 공간에는 공포와 범죄 관련 책을 배치했다. 또한 책 터널을 만들어 책 사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스폿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곳곳에 책을 오브제로 한 작품들을 배치해 전체적으로는 갤러리 같은 인상을 준다. 1층의 메인공간 중앙에는 서가 대신 소파를 여러 개 둬서 사람들이 호텔 로비에서처럼 책을 읽거나 혼자 혹은 함께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공간 배치에 힘입어 서점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의 '순례지'가 됐다. 온라인에 밀려 소멸돼 가는 지역 독립서점의 상황을 빗댄 '마지막 서점'은 오히려 온라인 소셜미디어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셈이다.

필자가 본 방문객들은 책만 사기 위해 이 서점에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만지고 찍고 추억하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서점을 원하고 있었다.

서점이 택한 생존전략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원하는 방문객들의 욕구에 부응한 북터널.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원하는 방문객들의 욕구에 부응한 북터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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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꾸러미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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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은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 이 질문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온라인 서점의 편리함이 소비자를 매료시키는 시대, 지역 독립서점은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도 오래된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나 지역서점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희망은 편리함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독자들이다. 서점들은 동네의 특징을 반영한 다양한 북 큐레이션으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출판사들도 지역 독립서점들의 분투에 부응하고자 독립서점만을 위한 한정판을 준비하기도 한다.

혹자는 서점이 '여행지'가 되는 것에 비판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독립서점이 직면한 위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택한 이 방식은 시대의 변화가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점으로 사람들을 오도록 해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점의 존재를 각인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은 이후라도 책 구매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 역시 서점 곳곳에 덫처럼 놓여 있다. 비슷한 성격의 책을 몇 권 묶어서 저렴에게 구매토록 하는 '책꾸러미(Book Bundles from our Curators)', 현재 상영 중이거나 곧 개봉할 영화의 원작을 모아놓은 '영화 속의 책(Books on Screen now or soon), '예술 및 희귀본 코너(The Arts and Rare Book Annex)', 1달러서가(The Last Wall) 등...
      
2층에는 뜨개질 가게와 작가 스튜디오 등 별개 공간도 있다. 이들은 별도로 건물주와 계약해 임대료를 내는 독립숍이지만 서점과 공생한다.

이곳의 한 작가 스튜디오에 새겨진 엄숙한 '작가성명'에 눈에 띄었다. 결국 책을 쓸 수밖에 없고, 책을 출판할 수밖에 없으며, 서점을 영속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도 읽혔다.
      
"나는 인간의 영혼을 그린다. 희열, 장난, 승리, 자유, 결심, 슬픔, 개성 등은 내가 창조한 존재들의 공통된 속성이다. 그들은 불완전한 살아있는 영혼들이다. 결점에 드러낸 채 땅에 매여 있고, 시간의 달콤한 순간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당혹스럽고, 용감하고, 연약하고, 기대감에 차 있고, 강력하고, 궁지에 몰려있으며, 만족스러워 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또 보고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우리는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행복의 추구다." - 안드레아 보그단(아티스트 작업노트)
 
서점 속 또 다른 독립공간.
 서점 속 또 다른 독립공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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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서가의 구석구석을 살펴 책을 고르고 있는 진지한 독자
 오랫동안 서가의 구석구석을 살펴 책을 고르고 있는 진지한 독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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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더라스트북스토어, #LA, #독립서점, #지역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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