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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감이 썩 좋진 않지만, 훈육도 엄연히 교육 행위의 하나다. 둘을 동의어로 보는 교사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훈육으로서의 체벌을 교육의 필요악이라고 잘라 말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천둥벌거숭이 아이들에게 타인을 배려하고 규범을 지키도록 훈련하는 게 학교 교육의 고갱이라고 여겨서다.

일과 중 교복을 갖춰 입도록 하고, 휴대전화를 일과 중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며, 올바른 식습관을 지니도록 급식 지도를 하는 등의 생활 지도가 학교 교육의 기초인 까닭이다. 학교 교육에서 생활 지도는 학습 지도와 병행될 게 아니라 선행되어야 할 요소다. 단언컨대, 공부만 잘하는 독불장군은 사회악이다.

그런데, 요즘 학부모들은 아이가 독불장군이어도 좋으니 공부만 잘하기를 우선 바라는 듯하다. 생활 습관도, 성격도, 취미도, 친구 관계까지도 죄다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아이에게 학부모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다 보니, 아이가 겪게 되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여기고 맞대응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현직 교사들의 증언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교내 체육관에 추모공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교내 체육관에 추모공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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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비통한 죽음 이후 학부모들의 어처구니없는 민원에 관한 현직 교사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어려운 숙제를 내줘 아이가 주눅이 들었다거나, 아이의 문제 행동을 다짜고짜 교사의 자질 부족으로 몰아세웠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심지어 아이에게 어떠한 생활 지도도 하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들었다는 교사도 있다.

대개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지만, 고등학교라고 딱히 나을 건 없다. 한두 해 후면 투표권까지 갖게 되는 '준 성인'이지만, 내용만 약간 다를 뿐 학부모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항의 전화는 끊이지 않는다. 아이가 직접 담임교사를 찾아가 묻고 해결할 만한 사안이어도 학부모는 막무가내다. 믿기지 않겠지만, 고등학교의 실태를 몇 가지만 소개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경험한 탓일까. 숫제 아이들도 자신의 판단과 선택,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자기 생각과 입장을 묻는데, 대뜸 부모님과 상의한 뒤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몸이 아파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일이 생겨도 담임교사에게 아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챙겨야 할 서류를 묻는 이도 물론 학부모다.

과제나 준비물을 집에 놓고 갔다며 직접 학교로 챙겨다 주는 일이야 비일비재하고, 깨워주지 못해 지각했다거나 교복 세탁하는 걸 깜빡해서 입지 못했다며 학부모가 대신 사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교사에게 교과 시간표와 시험 범위를 확인하거나, 어떤 참고서를 사야 하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등을 꼬치꼬치 묻는 학부모도 있다. 누가 학생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이가 아침 등굣길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약은 챙겨갔는지 물어봐 달라는 주문도 빈번하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점심시간에 조퇴시켜달라고 미리 부탁하기도 한다. 담임교사를 경유하는 건,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걷었다가 하굣길에 나눠주는 규정 때문이지만, 만약 그조차 없다면 종일 아이들의 휴대전화가 울릴 것만 같다.

부모의 등 뒤에 숨는 아이들

아이의 삶을 학부모가 평생 대신 살아줄 것처럼 행동하는 요지경 속이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라며 반감을 드러낼 법도 한데, 아이들은 늘 순한 양이 된다. 되레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핑계 삼아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경우마저 있다. 부모의 등 뒤에 숨어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는 '전략'은 언제나 유효하다.

특히 성적이 최상위권이거나 '위세'가 대단한 학부모라면, 교사는 돌연 학부모는 물론 아이들 앞에서조차 '을'의 신세가 된다. 하긴 아이들의 성적과 학부모의 경제력이 정비례하는 현실이니, 굳이 조건을 둘로 나눌 필요도 없다. 학교장 정도는 가볍게 구워삶을 힘을 지닌 그들의 심기를 자칫 불편하게 했다간 민원의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초등학교에 견줘 담임교사를 향한 민원의 '강도'가 약한 건 순전히 대입 덕분일 테다. 대입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현실에서, 거칠게 말해서 아이는 '볼모'다. 담임교사에게 괜히 밉보여 좋을 게 없으니, 불만과 요구가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심리적 타협을 선택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대입 제도가 고마울 때가 없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학부모의 항의 전화에 시달리다 보면, 교사로서 교육적 소신마저 꺾이게 된다. 초임 시절 기꺼이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이 되겠다던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기합리화'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교무실엔 '열심히 하면 책임질 일만 늘어난다'거나 '몸 바치면 자기만 손해'라는 말이 버젓이 횡행한다.

청소년 교육의 사도로 추앙받는 돈 보스코는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고 일갈했다.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대껴야 하는 교사가 열정이 식어버리면, '교육'은 사라지고 '사무'만 남게 된다. 주어진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서류로 실적을 증명하는 행정 관료와 하등 다를 바 없게 되는 셈이다. 그러자면 아이들도 '피교육자'가 아닌 '고객'이 된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가 됐건만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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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이 붕괴됐다는 지적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징후를 교무실의 냉소적인 분위기에서 발견한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수업 시간조차 할당된 사무로 여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과 만날수록 '진이 빠진다'고 토로하는 교사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가 됐건만, 몇 해 지나지도 않아 아이들이 '짐'으로 느껴진다는 경우가 태반이다.

훈육이든, 교육이든, 그 반대말은 방임과 방치다. 부모를 '만능 해결사'이자 '수호천사'로 여기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바에야 그냥 내버려 두는 게 교사로서 현명한 선택이다. 물론, '부작위'의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형식적으로나마 훈화하고 서류를 갖춰놓는 건 필수다. 요즘 교사의 역할과 학교의 모습이 딱 이렇다.

그릇된 행동에 친구들 앞에서 야단을 쳐도 안 되고, 편식이 심하다고 꾸짖어도 안 되며, 학습을 독려하기 위해 별도의 과제를 부과해도 안 된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운동을 시켜도 안 되고, 체벌 삼아 청소를 시켜도 안 되며, 값비싼 물건을 지니고 다니지 못하게 나무라서도 안 된다. 아이가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채소와 나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찮은 일엔 질색하고, 자기 방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약골에다 물신주의에 경도된 아이들이,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길러지고 있다. 그들이 이끌어갈 미래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대책 마련에 부산한 정치권도, 학부모도, 교사도 심각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모름지기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태그:#학부모 악성 민원,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공교육 붕괴, #교육은 마음의 일,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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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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