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2 20:06최종 업데이트 23.08.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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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난 6월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상복합상가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 한국전력은 이날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된다. 연료비조정단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한전이 핵심 요소인 전력량요금을 포함한 다른 전기요금 항목을 조정하지 않아 3분기 전기요금은 전체적으로 동결됐다. ⓒ 연합뉴스


지난 수년간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전기요금은 2021년 평균 108.11원/kWh에서 현재 148원/kWh 수준으로 급격히 인상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비롯해 향후 전기요금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 또한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책 방향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장기적인 요금 수준을 설정하고 현 요금 수준에서 장기 요금 수준으로 어떻게 전이할지를 구상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2021년 이후 전기요금은 연료비 연동제에 근거해 결정되고 있다. 이는 연료비 변동에 따른 원가 변화를 반영해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원가주의에 기초한 방식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는 분기별로 조정할 수 있는 전기요금에 상한이 정해져 있고 원가 변동분을 다음 해로 이월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실제 최근 몇 년간 급격한 원가 상승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원가주의 개념 도입에도 불구하고 2021~23년 1분기까지 한국전력의 누적 영업손실은 47.6조 원에 달한다. 한전의 연간 전력판매 수입이 60조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당한 규모이다.

이월된 원가 즉,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는 추후에 반영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실제 작년 말 추경호 재정기획부 장관은 요금조정을 통해 2026년까지 누적적자를 모두 해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결국 당분간 전기요금은 특정 시점의 원가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실질적으로 기존 원가주의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요금 원가주의, 또 하나의 비용 '외부성'

추가로 고려할 점은 여태껏 정책당국이 고려해 온 원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적정 원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전기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비롯한 오염물질이 발생하며, 이는 사회 전반 및 이후 세대에 피해·비용을 유발한다. 이런 비용을 외부성이라 하며 이 외부성을 원가에 반영했을 때 적정 원가가 구해지고 전기요금은 이를 반영해야만 한다.

현재 탄소배출권 가격을 통해 이런 외부성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 유럽연합(EU) 대비 30%에 못 미치는 배출권 가격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나마 배출권의 90%가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어 외부성이 거의 반영되고 있지 않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력 등을 감안하여 2030년 이전에 EU 수준의 외부성 비용이 반영됨을 가정하면 발전원가는 현재 대비 40원/kWh 이상 상승되어야 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20년 수준으로 회귀할지라도 전기요금은 멀지 않아 다시 150원/kWh 수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외부성을 반영하여 전기요금을 올리도록 압력을 가하는 이유는 가격 시그널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전기를 절약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신기술 개발과 미래지향적 사업구조 변화를 추구할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에너지 전환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방식이다. 또한 외부성 반영 이전의 원가 대비 높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부 투자, 한전의 누적 적자 감소, 높은 전기요금 하에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재원을 창출한다.

지난 4월에 발표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27년 사이 에너지전환을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예산은 90조 원 수준이다. 아직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으며, 요금 인상이 아니라면 별도 세수의 확보 또는 다른 재정사업의 삭감이 불가피하다. 과거 한국은 물가관리 차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매우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국제적 추세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고 유지될 수 없는 방식이다.

불확실성 제거 위한 전기요금 방향성 논의 필요
 

7월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이상의 고려사항들을 생각하면 외부성이 충분히 반영된 장기적으로 지향할 전기요금 수준을 추정하고(예를 들자면 150원/kWh), 현재의 요금 수준에서 장기 요금 수준을 잇는 직선상에서 요금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방식이 외부성을 고려하지 않은 원가를 추종하는 방식 대비 더 진정한 원가주의에 해당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특히 시장에서 전기요금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에너지 효율 사업, 재생에너지 투자, 전기 다소비 산업 등의 사업성은 전기요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기요금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황이다. 다음 분기의 전기요금 수준이 얼마가 될지를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되어 왔으며, 장기적인 전기요금 수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기요금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 경우 연관 산업들의 사업계획 수립은 물론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런 부작용들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전기요금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을 설정·제시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흡수하여 제거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과거에는 에너지 가격의 불확실성이 높지 않아 이런 문제가 간과되어 왔으나 향후 불확실성은 과거와는 비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추가로 전기요금의 변동성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당분간, 정부계획에 따르면 2026년까지 현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높은 요금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이후 외부성 반영 이전의 원가에서 전기요금을 책정할 경우 요금이 하락할 수 있으나 이후 외부성 비용을 반영한다면 전기요금은 곧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그 수준은 현재 요금 대비 높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요금을 낮추었다가 다시 올리는 것이 타당한가? 전기요금이 하락할 때에는 당연시 하다가도 요금이 오를 때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저항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높은 전기요금에 시민들이 적응해가는 상황에서 다시 요금 수준을 낮추고 올리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타당한 방식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외부성을 반영한 장기 전기요금 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향하여 전기요금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계획을 천명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간의 에너지 효율, 산업전환을 추동하고, 에너지 전환을 및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한 재원을 창출할 수 있다.

물론 높은 전기요금이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전환,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2021년 기준 1인당 주택용 전기요금 지출액이 1.5만 원/월이 채 안됨을 고려하면 그리 큰 부담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보완적인 정책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제안을 포함해 전기요금의 장기 방향에 대한 폭넓고 투명한 논의가 필수적인 때이다.

필자 소개: 전남대학교 경영학부에서 가격이론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연구·강의하고 있다. KAIST 경영공학과에서 학·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미시경제학(산업조직론)을 위주로 연구하였다.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산업, 배출권 거래, 지속가능마케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다수의 대중서들 출간하였으며, <마케팅 지배사회>, <실업과 양극화의 미래>, <ESG, 지속가능마케팅>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으로부터 '세종학술우수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대전환포럼의 상임운영위원, 넥스트브릿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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