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6 10:52최종 업데이트 24.02.16 10:52
  • 본문듣기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난해 5월 23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임금 대폭 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등을 촉구하는 기습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우리나라 노동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야, 노사, 좌우를 막론하고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의 원인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며, 그 해법도 매우 다르다.

먼저 노동시장제도와 노사관계의 유연화를 주장하는 입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동자의 문제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 견해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고임금과 고용안정성은 비정규직 근로자와 하청 노동자와 같은 2차 노동시장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해결방안의 방향성은 상대적으로 과보호 받고 있는 1차 노동시장에 대한 유연화이다. 즉 1차 노동시장의 내부자인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만 누릴 수 있는 연공적인 임금체계의 개편, 획일적인 근로시간제의 탄력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취업규칙 등 근로조건 변경에 관한 규제의 완화, 근로자파견제도의 활성화 등을 주장한다.

반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동력의 수요자, 즉 노동력을 사용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업에서 찾는 입장이 있다. 이 견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불공정한 원하청관계, 외주화 전략,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확대 등을 지적한다. 성장의 과실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시장 실패와 노동시장제도의 규제와 보호가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정책 실패의 결합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식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강력한 법적 개입을 주장한다.

정부 정책의 한계 : 노동조합 배제와 소극적인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이와 같은 상반된 인식은 그 주된 원인을 어디서 찾는지에 따른 것이지만, 양자의 인식이 완전히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의 적용, 원·하청 간의 불균형적인 분배 개선 등에 대해서는 양자가 어느 정도 인식의 공감대가 있다.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해결방안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2022년도에 있었던 대우해양조선의 하청 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는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상생협약의 핵심은 원청과 하청의 자발적인 협력을 통하여 원·하청 노동시장 내의 공정과 연대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없는 노사관계, 단체교섭 없는 노사관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사 간의 교섭 없이 원청 사업자와 하청 사업주, 그리고 이른바 전문가들이 모여서 원하청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는 접근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업별 교섭이 대부분이고 초기업적인 임금평준화 정책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이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업주들이 분배를 논할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초기업적 교섭의 활성화와 단체협약 적용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노동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법제도의 개선에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방대한 정책 패키지일 수밖에 없다. 노동력의 수요와 측면 공급 측면 모두에서 포괄적인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고, 지원과 촉진을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규제 및 보호 강화를 위한 정책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1차 노동시장 밖에 존재하는 2차 노동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주력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최저임금의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연장 근로시간의 상한 축소, 위험의 외주화 억제, 노무제공자에 대한 고용·산재보험을 확대하였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와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간의 격차는 그다지 줄지 않는 등 그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점에 유의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노사정 대화를 통해서 포괄적인 정책 패키지와 로드맵을 구축하여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 제안
 

국회 본회의장 ⓒ 남소연

 
여기에서는 지면의 한계상 원하청 노동관계를 중심으로 근로조건의 격차 해소를 위한 두 가지 법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사내 하도급 관계에서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간의 고용계약 성립 추정

2010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 이후 제조업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파견법 위반이 법원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인정되는 유형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도급관계인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대법원의 판단기준은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고 있어서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대법원 판결이 사내하청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상당히 축적했지만 진정도급과 위장도급 판단이 어려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장도급 문제는 근로자성 오분류 문제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진정도급과 위장도급을 효과적으로 판단하도록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이중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은 근로자파견관계의 추정과 증명책임전환이다. 이에 관해서는 최근 독일의 법률 개정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입법화에는 실패하였지만, 독일 좌파당(Die Linke)의 '도급남용방지 법안(2013)', 사민당(SPD)의 '근로자파견법 개정안(2013)', 브로스 교수와 슈렌 교수의 '외부인력 사용 시의 남용 방지와 파견근로지침의 시행에 관한 법률 규정 제안서(2014)'에는 모두 근로자파견을 추정하게 하는 개념 요소와 증명책임의 전환을 담고 있다.

이들 중 법안 중에서 특히 브로스 교수와 슈렌 교수의 제안이 가장 간명하다. 이 제안서는 노르트하임-베스트팔렌주 노동사회보건부의 의뢰로 작성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근로자가 제3자의 사업조직에서 취로하게 되는 경우 그 근로자는 제3자에게 파견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추정은, 해당 근로자가 제3자와의 도급계약 또는 위임계약의 틀 내에서 자신의 사용자에 의하여 사용된다는 점이 증명될 때 번복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다.

물론 사내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의 제안도 있지만 법제도적으로 수용하는 데 상당한 저항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로자파견을 추정하게 하는 표지와 그 충족 정도를 상당히 폭넓게 설정한다면, 위헌 시비를 줄이면서 간접고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급으로 처리되는 업무가 상시적·필수적인 업무인지, 도급인의 사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었는지 등과 같은 표지의 충족으로 근로자파견으로 추정하고 증명책임을 도급인에게 전환하는 것이다.

-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 적용

21대 국회에서는 종래 이 원칙에 유보적이었던 보수 성향의 국민의힘에서 이 원칙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법률안을 제출할 정도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이 고용의 일반적 원칙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21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 법률안은 총 3건으로 김형동 의원 대표발의안(2023. 5. 31. 의안번호 제2122418호),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안(2023. 7. 7. 의안번호 제2123159호), 김주영 의원 대표발의안(2023. 7. 11. 의안번호 제2123182호)이다.

이들 법률안 중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한정애의원대표발의안이다. 이 안에서는 하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안의 제6조의2 제5항에서는 "사업이 한 차례 이상의 도급에 따라 행하여지는 경우로서 하수급인(下受給人)(도급이 한 차례에 걸쳐 행하여진 경우에는 수급인을 말한다)이 직상(直上) 수급인(도급이 한 차례에 걸쳐 행하여진 경우에는 도급인을 말한다)의 귀책사유로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에게 동일가치노동에 따른 동일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그 직상 수급인은 그 하수급인과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 다만, 직상 수급인의 귀책사유가 그 상위 수급인의 귀책사유에 의하여 발생한 경우에는 그 상위 수급인도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한다.

또한 제6항에서는 "제5항에 따른 귀책사유는 직상 수급인 또는 상위 수급인이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하도급 관계에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법률안은 이미 제19대 국회에서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에서 제출한 바가 있다. 이한구의원 대표발의안(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2012. 5. 30)의 제7조 제1항에서는"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근로자임을 이유로 원사업주의 사업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고, 제2항에서 "사내하도급근로자는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었다.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안과 이한구 의원 대표발의안을 보면,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원청 사업주가 하청 근로자에 대해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이한구의원대표발의안은 "사내하도급"에 대해서 적용하고 있다. 사실 하청 사업주의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상의 사용자는 하청 사업주라는 점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에 따라서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지는 것도 근로계약상의 사용자인 하청 사업주이기 때문에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연대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 지배력이 있어서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따라서 하도급 근로자에 대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제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이 타당할 것이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6조에 상시적·필수적인 업무로서 도급인의 사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모든 근로자에 대하여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원칙의 적용된다는 것을 명문으로 규정한다. 둘째, 이 경우 도급인과 수급인은 수급인 근로자에 대해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원칙에 따른 임금 지급에 대해서 연대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셋째,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의 기준을 정하는 노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수급인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참여를 허용한다. 넷째, 수급인 근로자 및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에게 임금정보에 관한 자료제공요구권 등을 보장한다.

원하청 근로자 간의 근로조건 격차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상징과도 같다. 따라서 원하청 근로자 간의 불균형적인 임금 격차를 점차 개선할 수 있다면 그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한 장구한 여정의 성공적인 초석을 놓고 싶다면, 현재의 인식과 해법만을 고집하지 말고 포괄적이고 과감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하청 노동의 남용적 활용을 막고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원칙을 도입하기 위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그 첫걸음을 떼야 한다.

* 필자 소개: 정영훈은 헌법재판소와 국회미래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동법을 연구했고 현재는 국립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있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개별 노동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서 특별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