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1 15:58최종 업데이트 24.02.2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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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주거정책은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고, 아무도 믿지 않는 정책으로 전락했다. ⓒ 연합뉴스

 
시장은 인류의 역사 이래 언제나 존재했다. 인류에게 시장은 선물이었다. '시장'이 있었기에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시장이 '신자유주의'라는 옷을 입더니 인류를 짓누르는 괴물이 되었다. 현실 속 시장은 시장기능의 실패로 청년과 서민들에게 '위기와 불평등'만 나눠주었다.

20세기 후반, 큰 정부의 실패를 주장하며 영국의 대처 수상,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정치사회 영역에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 개개인의 계약, 국가 개입주의 입장의 큰 정부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절 기능이 인류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인구감소·지방소멸·불평등의 3대 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주의를 옹호했던 진보주의가 주장하고 실천했던 주거, 교육, 일자리 분야의 국가 책임을 시장의 책임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주의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을 살인적인 경쟁압력으로 내몰았고,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신화가 붕괴했다. 신자유주의 시장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위기를 낳았고, 강한 경쟁압력을 발생시켜 한국에 세 가지 위기를 불러왔다. 인구감소 위기, 지방소멸 위기, 불평등의 위기, 이 세 가지다. 언급한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인구감소의 위기부터 보자. 한국은 초저출산이 20년 이상 지속되어 인구구조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을 보면 전국 0.78명이고, 서울 0.59명이다. 세계 최하위 출생률이다. 이런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체감하는 높은 '경쟁압력'과 '일자리, 주거, 양육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다. 청년들은 결혼을 연기하고 출산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은 경쟁압력이 매우 높은 사회이다. 사회적으로 경쟁이 심한 환경에 사는 개인은 경쟁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피한다.

 

가임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 추이(자료출처 : World Bank ) ⓒ 이주원

 
2023년 11월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초저출산 및 고령화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에 따르면 ▲청년층의 고용률 높고, 실질 주택가격이 낮을수록 ▲도시의 인구집중이 낮고,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높을수록 ▲가족 관련 정부지출이 높고, 육아휴직의 실제 이용 기간이 길수록 출산율은 올라간다고 한다.

불평등의 위기를 보자.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지역, 소득, 자산, 교육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며, 그들의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산의 세대보다 좋아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주의는 지역과 교육, 소득과 자산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양극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3월 <리서치뷰>의 '청년세대 정치사회에 대한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불평등 문제에 대한 청년세대의 인식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청년세대는 지방소멸과 연동되는 지역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불평등(90.9%)이라고 답변했다.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하고 서울 등 대도시와 문화적 격차가 심한 지역 불평등은 청년인구를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한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서울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가부장적 문화가 남은 비수도권의 높은 유리천장과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여성 선호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거·일자리·양육, '국가책임제'로 패러다임 전환

살인적인 경쟁압력의 결과 한국은 초저출산 사회가 되었고, 인구절벽의 위기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주의는 파산했다. 이 방식으로는 한국에 닥친 인구감소 위기, 지방소멸 위기, 불평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위기들을 풀어가려면 주거, 일자리, 양육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살인적인 경쟁압력을 해소해야 한다. 즉, 일자리와 주거, 양육 불안과 경쟁압력을 낮추려면 국가가 책임 노동시장개혁, 혁신적인 주거정책, 지역 불평등을 해소하는 균형발전 정책, 가족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정책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난 1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결혼, 출산, 양육을 망라하는 정책 패키지를 동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모든 출생아의 기초 자산 형성을 국가가 직접 지원하고, 주거 지원 등 출산과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이에 '분할목돈지원 방식'을 포함하는 출생기본소득과 '여-야-정'과 '산학연'을 아우르는 '범국민 저출생 대화기구'를 제안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거, 일자리, 양육의 '국가책임제'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고비용 상품이자 필수재인 주거(주택)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의 주거정책은 시장과 가족 중심 정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택가격 변동에 따라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곤 했다. 시장에 맡겨진 서민 주거문제를 정부 개입주의를 넘어 국가책임제로 전환할 때 서민의 삶이 안정될 수 있다.

주택가격 중심의 오락가락 정책은 그만

보수와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주거정책은 주택가격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집값이 오르자, 규제 정책으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 대책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안정화'에 주력했다. 반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집값이 내리자, 규제 완화 정책으로 투기 수요까지 시장으로 불러들여서 '시장을 살리려' 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LTV(주택 담보 대출 비율), DTI(총부채 상환 비율)의 역대 정부별 규제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LTV, DTI 규제 변화( 출처 : 기본사회로 가는 저비용 도시, 2023, 이주원, 경계) ⓒ 이주원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주거정책은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고, 아무도 믿지 않는 정책으로 전락했다. 물론 주택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 정부가 썼던 정책이 다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주택 시장 변동에 대응할 필요 자체는 인정한다. 문제는 주택 시장의 변동성(가격의 급등락)에 따라 주거정책의 방향을 180도 바꾸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단기적인 정책 수단의 동원으로 인해 장기적인 도시계획 및 주택 공급 계획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주거정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진보와 보수 정부가 합작해서 만든 결과이다.

주택 시장의 변동성이나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주거정책 말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할 주거정책이란 과연 무엇일까? 상실한 주거정책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주거 국가책임제' 아래 정책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주거 국가책임제를 위한 네 가지 정책 방향을 제안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아이에게 집을!
- (신혼) 부부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주거 정책 전환. 주택 구매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
누구나 집을!
- (정상) 가족 중심에서 1인~2인 가구 중심으로 국가 주거 지원 정책을 전환하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 전세사기가 반복되지 않게 민간임대주택 정책을 정비하자.
주거약자에게 집을!
- 비주류 주거정책이었던 사회주택을 주류 국가 주거정책으로 전환하자.

필자 소개 : 이주원은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학 박사과정 수료를 하고 도시와 주택문제를 화두로 살아온 도시재생과 주택정책 전문가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 사)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과 탄탄주택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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