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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지난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쿠팡 물류센터 노조 "폭염에 휴식 보장하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지난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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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이라는 차별화된 배송시스템으로 유통시장의 강자가 된 쿠팡. 쿠팡의 빠른 배송 뒤에는 택배기사들의 땀방울이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배송하는 택배노동자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객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찾는 로켓배송, 그렇다면 쿠팡 택배기사들의 여름휴가는 며칠이나 갈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은 이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택배기사들 대부분이 특수고용노동자로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탓이다.

3년 전 코로나 유행 당시 택배량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한 적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아 노동시간의 규제가 없어, 장시간 과로 노동에 노출되기 쉽다. 20여 명의 택배기사가 과로로 쓰러졌고, 택배기사들의 이런 열악한 노동실태가 알려지면서 '택배없는 날'이 만들어졌다. 1년에 하루라도 택배기사들이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올해도 8월 14일은 택배없는 날로, 며칠 전부터 택배회사들은 택배 물량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쿠팡, 과로노동 말고 같이 쉬자"... 휴가 실태조사결과 보니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지난 7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의 여름휴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택배없는 날'에 쿠팡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 "쿠팡도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지난 7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의 여름휴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택배없는 날'에 쿠팡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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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쿠팡은 '택배없는 날'로부터 예외였다. 쿠팡은 택배회사도 아니었고 '쿠팡 친구'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정규직으로 주5일근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때 이것이 쿠팡의 자랑이기도 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쿠팡은 지난해부터 택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쿠팡친구'의 일부를 대리점 소속의 택배기사(특수고용직)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금 CLS에는 정규직 '쿠팡친구'와 대리점 소속의 쿠팡 택배기사가 같이 일하고 있다. 똑같이 쿠팡 물건을 배송하지만, 쿠팡 차량에 쿠팡 조끼를 입고 배송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인 '쿠팡 친구'이고, 쿠팡 로고가 없는 차량에 쿠팡 조끼도 입지 않았다면 대리점 소속의 쿠팡 택배기사일 가능성이 크다.

쿠팡도 택배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택배없는 날' 동참 요구에도 쿠팡은 쿠팡 택배기사는 언제든 쉴 수 있으며, 대리점에 3일간 순차적으로 쉴 수 있도록 협조공문을 보냈다며 '택배없는 날' 동참 요구를 외면하는 듯하다(관련 기사: "1년에 딱 하루인데... 쿠팡, '택배 없는 날' 함께 쉬자" https://omn.kr/24yl0).

물론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작은 대리점에서는 택배기사의 업무를 대신할 백업 기사를 두기 힘들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점과의 계약에서 배송지역의 수행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데 혼자서 해당 구역의 수행률을 맞추려면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수행률 걱정에 여름휴가는 꿈도 못 꾸고, 심지어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지난 7월 9일~20일 12일간 쿠팡 택배기사 187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에서도 쿠팡의 3일간 순차적으로 쉬라는 권고는 현실에서 지켜지지도 않고, 지켜질 수도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응답자 중 약 40%가 휴가 포기, 이유 뭐냐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쿠팡택배 설문조사 결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쿠팡택배 설문조사 결과
ⓒ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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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187명 중 73명(39.5%)은 올해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있었다. 1박 2일 26명(23.2%), 당일 나들이 4명(3.6%) 등 여름휴가를 짧게 계획하는 분들도 많았다. 휴가를 포기하거나, 짧게 다녀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첫 번째 이유가 수행률이 떨어질까 걱정되어서였고, 두 번째 이유가 자기 대신 대체 배송할 사람(백업 기사)을 구할 수 없어서였다. 사실상 같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쿠팡 택배 설문조사 결과2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쿠팡 택배 설문조사 결과2
ⓒ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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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택배 설문조사 결과3
 쿠팡 택배 설문조사 결과3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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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슴 아픈 것은 답변자 가운데 자녀가 있는 108명 중 42명(38.9%)도 여름 휴가를 계획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휴가 계획이 없는 73명 중 66명(90.4%)은 택배없는 날이 생기면 휴가를 계획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110명(59.5%)이 휴가가 주어진다면 최소 3일 정도의 휴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10분만 도로를 걸어 다녀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더운 여름에도 쉬지 않고 로켓배송으로 찾아오는 나의 행복만큼이나 택배기사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진 않을까? 설문에 응답한 108명 노동자들도 수행률 걱정 없이 며칠간 가족들과 쉴 수 있는 날이 필요하다.

쿠팡도 택배기사들의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길 바란다(다만, 쿠팡은 4일 자사 뉴스룸 보도자료를 통해 "쿠팡 퀵플렉서 배송기사님들은 1년 365일이 '택배없는 날'이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으니까"라고 알렸다-편집자 주). 만약 쿠팡이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고객들이 주문을 쉬는 것으로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쿠팡 택배없는 날 동참 캠페인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 택배없는 날 동참 캠페인 (전국택배노동조합)
ⓒ 전국택배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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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쿠팡, #택배, #택배없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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