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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다방면에 조예가 깊고 사교성이 넘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33세에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 역적의 꼬리표를 달고 일본에 망명하여 10여 년 힘겨운 생을 유지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서 암살당했다. 일화가 많고 비화도 많았다. 여기서는 일화 두 편을 소개한다.

잘 들게 생겼군

김옥균이 일본에 망명하였다. 하루는 이시이(石井信)란 자가 청해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이시이는 고또이와 후꾸자와의 심복이자 첩자이다.

장소는 쓰끼지의 요정이다. 술이 얼만큼 들자 이시이는 비수(匕首)를 김옥균의 목에 들이대면서 소리 질렀다.

"입으로만 비분강개를 하면 소용있어? 그대가 진실로 동양의 대세를 우려한다면 좀 더 태도가 달랐을 것이다. 우국(憂國) 개세(慨世)를 빙자하여 누를 일본에 끼친다면 단연코 죽여 버리겠다!"

태연자약하게 김옥균은 말했다.

"그 칼이 과연 잘 들게 생겼군!"

손을 들어 서서히 비수를 빼앗자 이시이는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떠 보자는 속셈이었으니 용서하라고. 이로부터 그는 김옥균을 신처럼 섬기며 대우하였다.

저 보검을 주게나

김옥균이 이홍장(李鴻章)을 만나기로 작정했다. 선물을 주어야겠는데 무엇이 좋을까? 도야마(頭山滿)의 집에서 김옥균은 안성마춤인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도야마의 집에서 대로 물려 내려오는, 일본서도 소문 난 보검(寶劍)이었다.

빼앗아 내기로 작정을 하고 김옥균은 도야마를 찾아갔다. 술이 어지간하자 김옥균이 작전을 짠대로 말을 꺼냈다.

"자네에게 청이 있어. 저 칼을 날 주게"

순간 도야마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안되겠나?"
"안된다기보다, 그것만 말고는 다 말하게. 무엇이건 들어줄테니…."
"그래? 난 자넬 꽤 걸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상당히 '게찌'로군!"


'게찌'란 인색하다는 말로 천하의 협객(俠客)임을 자처하는 도야마에게는 따라서 치명적인 말이다. 그 약점을 노리고 꾸민 김옥균의 작전계획이었다.

"게찌라, 게찌라?"

하고 한 동안 뇌까리더니 도야마가 이윽고 씹어 뱉었다.

"좋아! 그 칼을 그럼 내가 안보는 데서 훔쳐 가게!"

화장실에 간 사이에 슬쩍 하면서 김옥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석 21)

주석
21> 임종국 엮음,『동서일화집』, 18~19쪽, 동아일보사, 197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옥균, #김옥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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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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