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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사태로 여론이 뜨겁다. 연일 쏟아지는 많은 기사에는 극단적인 정치적 댓글과 지역비하 댓글이 넘쳐난다. 이번 잼버리 사태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잼버리 사태를 지켜보며 지난 2018년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된 논란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2011년 7월 6월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을 개최지로 결정하였다. 2018년 2월 개최 예정일까지는 약 6년 7개월가량이 남은 시점이었다.

개최지 선정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으며, 대회는 다음 대통령 임기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즉, 국정 농단과 탄핵 사태가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결국 탄핵 사태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는 그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인 대한민국에서 한 정권 임기 내에 국제행사의 개최지 선정부터 실제 개최까지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정권이 바뀌는 것과는 별개로 국제행사에 대한 책임감 있고 유기적인 연계는 필수다.

문재인 정부에 남은 기간 9개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공동입장이 이뤄진 가운데 남측 원윤종, 북측 황충금 선수가 한반도기를 들고 있다. 2018.2.9
▲ "평창은 평화" 남북공동입장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공동입장이 이뤄진 가운데 남측 원윤종, 북측 황충금 선수가 한반도기를 들고 있다. 2018.2.9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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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준비 당시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문제는 공식후원은행 즉 주거래은행 선정 문제였다. 올림픽에서 주거래은행은 올림픽 공식 파트너 중 최고등급인 티어1급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수신, 여신, 외화 및 송금 거래 등 모든 재정 부문을 담당하고, 입장권 판매, 라이선스 사업을 대행한다. 즉 올림픽 주거래 은행이 없으면 입장권 판매와 기념품 판매 사업이 불가능하고 경기장 공사 대금 등도 모두 주거래 은행을 통해 거래된다.

이처럼 대회 준비와 함께 가장 먼저 선정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올림픽주거래은행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좀처럼 정해지지 않았다. 2013년 9월에 처음 입찰을 시작해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이 참여했는데, 후원 금액에 대한 견해 차로 대회조직위원회가 난색을 표하면서 파행을 겪었다.

대회조직위원회에서는 당초 500~600억가량의 후원금을 요구했는데, 하계올림픽에 비해 주목도가 덜한 동계올림픽에 그런 거액을 쏟아부어야 하는 주거래은행 입찰에 선뜻 나서는 은행은 없었다. 결국 후원금액은 150~200억 원까지 낮췄으나 여전히 쉽게 입찰에 참여하는 은행은 없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올림픽 주거래은행 입찰은 2017년 2월에 다시 공개입찰을 통해 같은 해 4월 18일 KEB하나은행이 후원금액 110억 원 규모로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은행으로 지정되었다. 대회 개최까지 10개월도 채 남지않은 시점이었다.

국정농단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국정농단 관련자들의 평창동계올림픽 이권 개입 의혹이 이는 등 국정농단 사태는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그러는 사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5월 10일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는 문재인 정권으로 넘어갔다. 개최를 9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전 정권에서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이권 개입을 했든, 주거래은행 선정부터 많은 준비에 차질을 빚었든, 이제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는 문재인 정권이 남은 기간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다. 그리고 잼버리 사태가 벌어진 2023년 8월 현재 윤석열 정권이 발족한 지 1년 하고도 약 3개월이 더 지났다.

윤석열 정권은 대선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웠다. 이번 잼버리의 주관 부처 중 하나가 바로 여성가족부이다. 여성가족부라는 조직을 정말 폐지해야겠으면, 윤석열 정부는 잼버리 주관부처를 다른 부처로 이전시켜야 했다. 언제 폐지될지 모르는 조직에 국제 행사를 맡길 수 있는가.

반대로 세계 잼버리 대회 유치 및 개최 등 여성가족부의 다양한 역할로 폐지가 어렵게 되었다면 솔직하게 공약 실패를 인정하고 여성가족부가 일할 수 있도록 해야했다.

그런데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온 변명이라고는 전 정부 탓이 전부이다. 지금이 2022년 8월인가. 윤석열 정권은 취임한 지 3개월 정도밖에 안 돼서 대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인가. 아니다. 1년 3개월간 방치해둔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기 싫은 옹졸함일 뿐이다.

평창동계올림픽도 물론 완벽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회 운영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대회 도중 보이콧하는 국가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잼버리 정신은 무엇인가

잼버리 사태가 불거지자 염영선 전북도의원은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귀하게 자라 불평 불만이 많다"며 한국 참가자들을 비하해 물의를 빚었다. 염 의원은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 개인당 150만 원의 참가비를 내고 이국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가며 고생을 사서 하려는 고난 극복의 체험"이라고 주장했는데, 잼버리는 과연 '고생을 사서 하려는 고난 극복의 체험'인가.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전 세계적인 청소년 야영 축제 활동입니다. 전 세계 150여 개 회원국에서 수만 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들이 참가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눔으로써 청소년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세계 최대의 청소년 국제행사입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홈페이지 행사 소개)

공식적인 행사 소개 어디에도 '고난 극복의 체험'이라는 표현은 없다. 염 의원의 주장처럼 '고난 극복'을 체험하려면 굳이 세계 각국이 돌아가며 개최할 필요가 있겠는가. 고난을 극복하고 생존 능력을 키우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매회 아마존 정글에서 개최하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왜 잼버리는 세계 각국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것인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홈페이지 행사 소개에서 언급하는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눔으로써 청소년들이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잼버리의 핵심 가치이다. 텐트 치고 야영한다고 해서 '고난 극복 체험'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난 극복 생존 체험인가, 학대인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눔으로써 청소년들이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하게 그야말로 '고난 극복 생존 체험'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야영 기술, 매듭 짓기 등등 조난에 대비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난 당한 경우의 대처는 장소 선정부터 시작된다. 가령 산에서 조난 당한 경우 산짐승들로부터 몸을 피할 장소를 찾고, 비가 많이 올 때는 순식간에 물이 불어날 수 있는 계곡 바로 옆으로 피하는 식으로 안전하게 버틸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습득해 두었던 생존 기술을 활용해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런데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위에서 예를 든 조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정해진 대회장 내에서 일정을 진행하는 특성상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장소 선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사에서 제대로 된 나무 그늘도 없는 뙤약볕에 사람들을 내몬다는 것은 고난 극복이라기보다 학대 행위에 가깝다.

한국의 기후를 수십 년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한국인들 중 장마가 끝난 8월경에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온열질환은 '뇌가 익는 병'이라고도 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행사에서 그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여름 뙤약볕에 참가자들을 내몬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학대 행위이다.

잼버리 사태는 누구의 책임인가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리는 2023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이 주최측의 준비소홀과 태풍 ‘카눈’의 북상 등으로 인해 8일 야영지에서 전면 철수하는 가운데, 스위스 스카우트 대표단이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글로벌센터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리는 2023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이 주최측의 준비소홀과 태풍 ‘카눈’의 북상 등으로 인해 8일 야영지에서 전면 철수하는 가운데, 스위스 스카우트 대표단이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글로벌센터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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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관련 기사마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댓글 전쟁이 뜨겁다. 주관부처가 여성가족부라는 점을 들어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최지가 전라도라는 점을 들어 지역 비하도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가족부만 해체하면 이런 문제가 개선될 것인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공식 홈페이지에는 관련 기관으로 세계스카우트연맹, 한국스카우트연맹,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 부안군의 로고가 게시되어 있다. 거기에 조직위원회 소개란에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김윤덕 국회의원(지역구 전주), 김관영 집행위원장(전북지사)의 인사말이 각각 게재되어있다.

이같이 다양한 부처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더 철저하고 유기적인 연계와 협력이 필요한 행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거나 특정 지역이 문제라는 식의 해석은 그저 근본적인 문제를 쉬쉬하고 덮어버리려는 편협한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잼버리 대회와 관련된 중앙정부의 부처만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세 군데이다. 이들을 연계하고 조율할 콘트롤타워는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 마지막 날을 반납하고, 잼버리 사태의 콘트롤타워 역할에 매진한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여전히 콘트롤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콘트롤타워의 부재와 능력 부족이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다. 여전히 콘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지금 사태 해결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태그:#잼버리, #컨트롤타워, #국제행사, #세계스카우트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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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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