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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조직을 만듭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 '엔딩크레딧'이라는 이름은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5개 후보 중에서 직접 골라 결정한 것입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속에서 금방이라도 때려 치우고 싶다가도 엔딩크레딧에 올라가는 본인의 이름을 보며 버틴다는 사람들...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처럼 화려한 조명이 지나간 뒤에, 무대 위 모두들 떠나버린 뒤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건네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시작이 방송 비정규직 착취의 엔딩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9월 3일'은 방송의 날입니다. 한국방송협회는 방송의 날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고 우수한 프로그램과 방송인에게 상을 주는 한국방송대상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송을 만드는 대다수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은 방송의 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거나 함께 하지 못합니다. 정규직들이 쉬는 방송의 날에 출근했다가 불 꺼진 사무실을 마주했다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자주 회자됩니다. 정규직들에게는 휴일이지만 그것조차 듣지 못한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은 텅빈 사무실에 출근했던 것입니다.
  
방송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방송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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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현장의 비정규직·프리랜서는 얼마나 될까요? 애석하게도 단 한번도 공식적인 전수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방송사들은 자사의 비정규직 규모를 조사하거나 파악하지 않았고, 조사를 한다 해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한적이나마 몇몇 방송사나 특정 직군을 중심으로 한 조사들이 몇 차례 실시됐을 뿐입니다.

202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방송사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실태 - 공공부문 방송사 프리랜서 인력활용' 이슈페이퍼를 보면 불안정노동자의 비율이 약 42%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공공부문 방송사 비정규직은 18.9%(기간제 4.3%, 간접고용 14.5%)이고, 프리랜서는 15.9%(여성 71.2%, 작가 34.2%)였습니다.

또한 '방송산업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 2021'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KBS, MBC, SBS에서 시사교양국과 보도국 내 정규직 인원이 전체 고용 형태의 절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각 사 내 프리랜서 숫자는 정규직과 비등하거나 더 많았으며, 특히 SBS의 경우 프리랜서가 정규직의 1.8배에 달했습니다. 3사 인원을 합산해 보면, 시사교양·보도 분야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것으로 집계된 총 2711명 중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가 1125명(41.5%)으로 가장 많았는데, 정규직은 1078명(39.8%)으로 프리랜서보다 적은 숫자였습니다. 이어 파견직 300명(11.1%), 계약직 197명(7.3%), 외주업체 11곳(0.4%·업체 숫자) 순이었습니다.

드라마 현장의 경우, 스태프 100명중 정규직은 한두 명일 뿐입니다. 'CP'라고 부르는, 전체를 총괄하는 총감독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 비정규직 프리랜서입니다.

'엔딩크레딧'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방송 현장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이 비정규직 프리랜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우리가 주인공이자 주류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위계와 서열이 중요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인 멸시와 모욕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방송현장에서 용기있게 한 발 떼려면, 스스로가 주류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이 뭉치면 현장을 바꿔갈 어마어마한 힘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별로, 직군별로, 분야별로 점처럼 떨어져 있지만 차이를 넘어 계속 만나다 보면 선이 되고 면이 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요.
  
방송의 날을 맞아 9월 1일 (금) 5시 30분에 엔딩크레딧이 출범합니다
 방송의 날을 맞아 9월 1일 (금) 5시 30분에 엔딩크레딧이 출범합니다
ⓒ 엔딩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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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방송의 날을 맞아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이 출범합니다. '엔딩크레딧은'은 직군, 계약형태, 지역, 소속사업장을 넘어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이 함께 모여 방송현장을 바꾸기 위한 조직입니다. 개별 사업장이나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방송현장의 공통 의제를 찾아 해결하고 싸워나가려 합니다.

엔딩크레딧은 방송 미디어 프로그램 맨 마지막에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방송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차별이 공기처럼 흐르는 방송사에서 용기내어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모여서 만드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날에 출범하는 '엔딩크레딧'에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태그:#엔딩크레딧, #방송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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